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 소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조영준 2023. 10. 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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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09]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조영준 기자]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1.
예술단 학생들의 화려한 육고무 무대와 피를 흘리며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한 여성의 모습이 교차된다. 무대 위에 오른 학생은 딸 인영(이레 분)이고, 방금 엄마를 잃었다. 오늘 무대를 위해 챙겨뒀던 슈즈를 챙겨주지 않았다고 속상한 마음을 힘껏 쏟아낸 통화 직후의 일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무대에 임하고 있지만 이 공연이 끝나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를 갑작스레 떠나보내게 된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내게 될 터다.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를 공동 연출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김혜영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연출작이다. 엄마를 잃고 홀로 세상에 남겨진 소녀가 밝고 단단하게 자신의 세상을 지켜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감독 특유의 말맛이 여러 상황 속 대사를 통해 이번 작품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고, 개성 있는 캐릭터로 인해 인물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는 감정들까지도 세밀하게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다가온다.

02.
이 영화는 중심인물인 인영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두 개의 큰 축에 의해 지지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뒤에 그 삶을 버텨내는 개인의 서사가 하나이고, 그녀가 소속되어 있는 예술단의 일원으로서 내부의 갈등을 경험하고 화해로 나아가는 집단의 서사가 또 다른 하나다. 개인의 서사에서 기인되는 부모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인물의 배경이 예술단의 이야기 속에서도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두 서사가 완전히 별개의 것은 아니다. 다만 또래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인영의 내면과 다른 어른과의 관계에서 보이는 인물의 모습에 차이가 있고, 이 차이가 그녀의 심리를 형성하는 두 가지 측면이라는 점에서 따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극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서도 설화(진서연 분)는 같은 맥락에서 인영과 같은 위치에 둘 수 있는 유이(有二)한 인물이다. 인영의 서사 양쪽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녀가 온전히 괜찮을 수 있을 때까지 책임을 지는 존재여서다. 그 시작은 밀린 집세 때문에 쫓겨나 예술단 연습실에서 숨어 살다 들키게 된 이후부터다. 인영의 상황을 모두 알게 된 설화는 그녀를 자신의 집에서 머물게 한다. 완벽하지만 차갑고 깐깐한 인물과 실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밝고 씩씩한 인물의 동거로부터 무섭고 어렵기만 했던 선생님에서 보호자로의 이양이 조금씩 시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설화라는 인물이 일방적으로 인영을 성장시키는 역할만 부여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영과 설화 두 사람 사이에서는 일종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설화가 인영이 포기하려고 했던 꿈을 붙잡고 용기를 북돋아주며 환경적인 여건을 마련해 주는 인물이라면, 인영은 설화에게 삶의 다양한 즐거움과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인영을 만나기 전까지 설화는 열심히 하는 게 부족한 실력에 대한 평가가 될 수는 없다는 강박을 갖고 자신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유지하기 위해 애쓰던 인물에 불과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비록 가진 것도 없고 실력도 부족하지만 어디 내놓아도 살아남을 것 같은 기세로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기에 인영은 앞서 이야기했던 양쪽 서사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설화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교환했던 것처럼 무용단 내의 또래와의 관계 속에서도 그녀는 제 몫을 단단히 해낸다. 비록 혼자 따돌림을 당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롭힘과 시기에 시달리는 상황 속에 놓여있다고 해도 말이다. 집단의 서사에 해당하는 예술단 내에서는 후반부에 이르러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로 인해 균열이 가기 시작한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영은 자신의 약점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또래와의 관계에서와 달리, 개인의 서사 속 기댈 수 있는 어른들 앞에서는 조금 더 투명한 모습을 보인다. 아니, 조금 더 제 나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는 쪽이 더 적합한 표현이겠다. 영화는 소녀가 홀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일을 단단하고 대견한 모습으로 바라보지만, 실제로 개인이 겪는 실제적이고 감정적인 어려움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동네 약사 동욱(손석구 분)의 앞에서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함께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직전까지 참고 인내하며 쌓아왔던 인영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04.
김혜영 감독은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두 '금쪽이'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중심이 되는 두 소녀 인영과 나리(정수빈 분)는 물론, 설화 역시 포함된다. 의도적으로 세 인물 모두를 성장시키고자 했음을, 이 작품의 기저에 성장을 위한 내러티브적 메타포가 갖춰져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한국 무용, 군무가 위치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이유일지 모른다. 춤을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 인내해야 하는 많은 시간이, 각자의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모여 군무를 완성해 가는 과정의 노력이, 그리고 시작과 함께 미소를 짓고 유지해야 하는 연기적 요소까지 이 모두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져서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구조에 전형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전형성을 깨뜨리는 장치들이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손석구라는 배우를 활용하는 모습도 그 가운데 하나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전형성이라는 틀을 어떻게 활용하면 되는지 이 작품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의 고정된 역할에 가둬놓기보다 각각의 인물이 서로 다른 양면의 모습을 모두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의 표현법은 영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만든다.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결국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게 삶이고 또 사람을 통해 상처를 받고 아픔을 느끼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다시 걸을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내일에 대한 꿈과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놓이는 몇 차례의 군무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렇게 군무가 완성되고 나면, 모두 함께 진정한 의미의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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