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없이 애를 가질 수 있다면? 이 영화가 던진 질문

김성호 2023. 10. 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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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60] <팟 제너레이션>

[김성호 기자]

SF의 미덕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오늘의 세상을 달리 보게 한다는 점이다. 발전한 기술이 가져온 달라진 미래의 이야기가 SF의 기본이다. 기술은 삶을 바꾸고 인간을 전과 다른 무엇으로 만든다. 도구적 인간은 도구를 활용할 뿐 아니라 도구에 의존한다. 불을 얻은 인간이 날것을 소화하는 능력을 잃어가듯 달라진 기술은 인간에게 발전과 퇴화를 동시에 가져오는 법이다.

오늘의 시선에서 미래의 달라진 삶을 상상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1000년 전 인간은 다이어트며 체형을 고민하는 오늘의 인간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인간은 1000년 전 인간의 주된 고민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구수 절벽에 직면한 한국의 청년들이 여전히 결혼과 임신을 꺼리는 모습 또한 과거의 인간은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혼자 살아가는 1인가구라거나 이웃과 교류 없이 지내는 수많은 도시인들의 삶 또한 과거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두가 달라진 삶의 양식 때문이며, 본래적이라기보다는 기술이 가져온 변화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기술이 변화한다면 미래의 삶 또한 크게 달라질 게 분명하다. 어느 순간 오늘의 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을 미래의 사람들은 기꺼이 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을 사는 이들 중 적잖은 수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가문을 위하여 평생을 희생하는 삶에 고개를 가로젓듯이 미래의 이들은 오늘의 삶을 한심하게 여길는지 모른다. 그저 몇 가지 기술의 도래가 인간의 삶과 취향, 판단까지를 완전히 바꿔낼 수도 있는 일이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이 그리는 미래가 바로 그렇다.
 
▲ 팟 제너레이션 포스터
ⓒ 왓챠
 
극단적 성과사회, 사라진 것에 주목한다

소피 바르트는 이 영화로부터 충분히 현실화가 가능한 미래사회를 섬세하며 섬뜩하게 그린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극단적인 성과위주의 사회상이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이 일찍이 <피로사회>에서 지적한 현대사회의 성과주의가 극대화된 사회가 바로 <팟 제너레이션> 속 일상이다.

그리 멀지 않은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엘비(추이텔 에지오포 분)와 레이첼(에밀리아 클라크 분) 부부의 이야기다. 식물학자이자 대학교 교수인 엘비와 테크회사의 인정받는 직원 레이첼은 금슬 좋은 부부다. 서로를 아끼는 부부의 삶은 그러나 여러 면에서 영 딴판이라 할 만하다. 엘비의 업은 어디서도 관심 받지 못하는 반면, 레이첼은 회사에서도 주변에서도 인정받는 잘 나가는 사회인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사는 시대엔 식물은 쓸모없고 마침내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자란 열매를 먹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공장에서 훨씬 영양이 좋은 음식들이 생산되며, 공기마저도 훨씬 쾌적하고 균형 잡힌 성분으로 제조돼 공급되는 세상이다. 식물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고, 도시는 가로수조차 관상용 홀로그램으로 대체해나간다. 자연을 아끼는 엘비의 마음은 그저 특이취향 쯤으로 무시될 뿐이다.
 
▲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
ⓒ 왓챠
   
모든 걸 평가하는 성과사회의 이면

레이첼의 삶은 정반대다. 출근해 컴퓨터 앞에 선 레이첼은 빈틈 없는 사람이다. 책상 아래엔 워킹머신이 설치돼 있고, 인공지능은 그녀의 기분이며 생산성을 즉각적으로 확인해 알려준다. 긍정적인 마음을 2%p쯤 올리기 위해 살짝 땀이 날 정도로 다리를 움직이고, 그러면 또 몇%p쯤 생산성이 올라가리란 걸 인공지능으로부터 보고받는 식이다. 촌각을 아끼며 생산성 있는 일에 몰두하는 레이첼과 집에서 식물을 기르고 바라보는 일을 즐기는 엘비의 삶을 이 시대는 전혀 다른 온도로 바라본다.

특히 레이첼이 제 삶을 그득 채워가는 모습은 성과주의 사회의 이상적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심박수나 수면의 질, 만보계 따위의 정보가 가득 들어찬 스마트워치를 보며 제 일상을 악착같이 발전적으로 살려 하는 소위 동기부여며 자기계발적 인간에게 레이첼이 사는 삶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것일 테다. 인공지능은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레이첼의 빈 시간을 악착같이 더 나은 무엇으로 만들겠다 제안하고, 생산성을 가능한 최선으로 끌어내려 조언한다. 레이첼은 그에 잘 부응하는 세련된 여성으로 그녀가 이 영화의 주요한 관심인 체외임신에 끌리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어느 날 레이첼의 회사 간부가 그녀에게 묻는다. 승진을 할 때가 되었는데 임신계획이 어떻게 되느냐고 말이다. 유능한 직원을 잃고 싶지 않은 회사의 이해를 언급하며, 자회사에서 막 출시한 '팟'을 이용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 팟은 알 형태의 기계로, 체외수정시킨 태아를 키워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한 도구다. 열 달을 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노화를 비롯한 신체적 변화를 겪어야 하는 여성이 사회생활에 충실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혹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일이다.
 
▲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
ⓒ 왓챠
 
남성성 거세된 미래사회가 주는 이질적 폭력

재정적 부담까지 크게 완화해준 회사의 제안에 레이첼은 마음이 동한다. 다만 순리에 따른 삶을 선호하는 남편을 설득할 길이 막막할 뿐이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레이첼은 마침내 남편에게 일을 털어놓는다. 약간의 의견충돌이 있지만, 논리로는 레이첼을 당해낼 수 없는 일이다. 임신이란 여성이 제 몸으로 아이를 품는 일이고, 거의 전적으로 엄마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 여성이 직접 임신을 하지 않겠다는데 누가 나서 강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시대는 오늘보다 여성성이 훨씬 더 존중받는 미래상이다. 꿈틀대는 정자들을 향하여 내뱉어지는 테크회사 직원의 모욕적인 대사는 난자에 대한 존중어린 말과 맞물려 영화의 의도를 선명하게 내보인다. 그뿐인가. 남편과 함께 업체를 찾은 레이첼 앞에서 딸을 낳기 위해선 y유전자가 필요치 않으니 남편 없는 임신을 고려해도 좋다고 말하는 업체 직원의 말 앞에 엘리는 이렇다 할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할 뿐이다.

업무적으로도, 남성적으로도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엘리의 상황은 보는 이에게 일종의 공포감까지 불러일으킨다. 마초이즘이며 남성성은 발전된 사회에선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강력한 페미니즘은 마초이즘이 비운 자리를 차지하고 얼마 남지 않은 남성성마저 짓누른다. 남성성이 거세된 안전하고 쾌적한 사회가 도리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억누르는 역설적 광경이 보는 남성 관객에게 지적 흥미와 내적 불편을 동시에 자아낸다.

영화는 결국 설득된 엘리가 레이첼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진전된다. 둘의 아이가 팟에서 자라나고, 이들의 일상은 완전히 뒤바뀐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다. 영화는 아이가 엄마의 몸에서 키워지지 않는 상황으로부터 모성의 주도권을 레이첼이 아닌 엘리가 차지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팟을 더욱 소중히 돌보기 시작하는 엘리에게 레이첼은 어딘지 불편함을 느낀다. 다른 남편들과 달리 팟을 엄마처럼 앞으로 매는 모습과 이를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는 레이첼의 모습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팟을 더욱 가까이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엘리의 모습은 모성의 상당부분은 생물적 본능이 아닌 사회적 요구며 심리적 변화에 기인한 것이란 연구와 맥을 같이한다.

영화는 아이가 점차 커나가며 테크업체의 방식에 문제를 느끼는 부부의 모습을 충실하게 포착한다. 국가가 배제된 의료의 영역에서 업체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믿어지는 원칙들을 아무렇지 않게 포기한다. 누군가 팟에서 태어난 아이는 꿈을 꾸지 못한다고 말하면, 꿈 정도는 별 문제가 없다고 외면하는 식이다. 아이에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한 규제탈피에 정부는 그저 무력할 뿐이다. 스웨덴에서 견학 온 예비부부의 물음에 답하는 업체 직원의 모습은 마치 비급여의료의 무분별한 상업화를 비판하는 이에게 흔히 주어지는 의료계의 시선과 다르지 않다.
 
▲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
ⓒ 왓챠
 
실현 가능한 기술과 윤리적 질문

업체는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는다. 갈수록 늘어나는 수요에 팟을 빨리 회수하려는 업체는 태아에게 분만유도제를 써서 조기출산을 할 계획임을 밝힌다. 엘리와 레이첼이 특단의 수단을 꺼내든 건 그래서다.

성과 일변도의 성과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체제가 맞물릴 때 사회는 인간의 삶을 진심으로 돌아보지 않는다. 더 나은 삶을 향하여 질주하는 인간들을 향하여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스스로를 노예 삼아 채찍질하는 광경이라고 지적한다. 스스로의 선택인 양 제 신체의 온갖 정보를 인공지능을 통해 전달받고, 자연을 거닐며 사색할 시간 없이 도시의 효율성에 몸을 맡기며, 마침내 임신과 같은 역할조차 기계에게, 사기업에게 내맡기는 미래의 사회상은 인간이 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저 스스로를 해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실제로 체외임신은 현대 과학이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실현가능한 기술이다. 문제라면 오로지 윤리적 문제가 될 것인데, 다른 많은 영역에서 그러했듯 치명적 부작용만 없다면 마침내 허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논리적으로만 바라보면 자연출산의 의학적 위험성과 갈수록 노산이 늘어나는 현실, 인구절벽,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 기업의 이해 등과 맞물려 정부가 무작정 막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화가 바로 이 기술을 선택하여 관객 앞에 미래를 펼쳐낸 이유가 여기에 있을 테다.

부부나 애인끼리 함께 보면 재미가 배가될 작품이다. 지적 불편을 즐길 줄 아는 이, 조만간 닥쳐올 첨단산업의 윤리적 딜레마를 미리 겪어보고 싶으신 이, 토론을 즐기는 이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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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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