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 신화' 이호준 "자유형 400m 다시 도전…파리올림픽서도 응원해 주실거죠?" [AG 단독인터뷰②]
(엑스포츠뉴스 최원영 기자) 그때 그 '수영 신동', 멋지게 돌아왔다.
10년 전, 화계초 6학년 이호준(22·대구광역시청)은 '수영 천재', '수영 신동'으로 불렸다. 박태환의 초등학생 시절 기록을 뛰어넘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사대부중 1학년이던 2014년 12월에는 호주 국제수영대회 3관왕에 올랐다. 수영계가 주목한 촉망받는 기대주였다. 몇 살 아래 후배들에겐 우상 같은 존재였다.
처음 물에 뛰어든 것은 2학년 때였다. 당시 통통했던 이호준을 두고 가족들이 머리를 맞댔다. 마침 학교에 수영장이 있어 수영을 해보기로 했다. 단지 살을 빼기 위해 시작했다. 이후 몸무게가 20㎏가량 줄었고, 키는 15㎝ 정도 컸다.
계속해서 물살을 가르다 6학년 4월, 동아수영대회 남자 초등부 자유형 200m 결선에서 1분57초83을 찍었다. 1990년 우철의 대회 기록(2분5초90)을 무려 23년 만에, 8초 넘게 단축했다. '제2의 박태환'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이호준도 그때 수영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마침 박태환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휩쓸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 2개를 거머쥔 이후였다. 이호준은 "'나도 국가대표 선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태환이 형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어느 날, 슬럼프가 찾아왔다. 2019년부터 지난해 중순까지 4년간 터널 속에 머물렀다. 아무리 훈련해도 제자리걸음뿐이었다. 기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호준은 "그때는 수영장 물에 들어가는 것도 싫었다. '이제 뭘 해도 의미 없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며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언론의 관심과 각종 수식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아니었다. 이호준은 "어릴 때 해야 했던 것들을 놓친 듯하다. 기본기에 더 신경 쓰고 부족한 점은 고쳤어야 했다"며 "기록만 너무 신경 썼다. 계속해서 기록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작 해야 할 일들은 뒤로 미뤘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가족들의 응원이 그를 지탱했다. 이호준의 부친은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 이성환 씨다. 운동선수로서 고충을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존재다. 이성환 씨는 이호준에게 "너 열심히 하는 거 안다. 그래서 믿는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건 상관없는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누구보다 큰 힘을 실었다.
이호준의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는 "어쨌든 '열심히'는 하고 있으니 다음 대회에 더 좋아질 것이란 생각으로 임했다. 긍정적으로 지내려 했다. 사실 수영을 안 하면 할 게 없었다"며 웃은 뒤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 다른 시련들이 찾아왔을 때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꼭 극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돌이켜보면 정말 힘들었는데 어떻게 지나왔나 싶다. 그래도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좋은 날들도 생긴 듯하다"고 덧붙였다.
동료들의 존재가 도움이 됐다. 2020~2021년부터 황선우, 김우민(이상 강원도청)과 함께 훈련했다. 이호준은 "두 선수가 수영을 대하는 방식이 나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둘은 수영 자체를 즐기는 듯했다"며 "결과가 안 좋은 날에도 '뭐, 내일 잘하면 되지' 하고 가볍게 넘길 줄 알더라. 그런 것들을 많이 배우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월드클래스 축구선수 손흥민(토트넘)의 영향도 받았다. 평소 독서를 즐기는 이호준은 지난해 손흥민의 자서전('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을 읽었다. 그는 "이 정도로 노력해야 그 위치에 오를 수 있구나 싶었다. 재밌게 봤다"며 "같은 상황이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겨도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넘기려 한다. 그래서 평소에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고 미소 지었다.
기술적인 접근법도 달라졌다. 이호준은 "그동안 수영이 안 될 땐 과거 잘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운동했다. 그러나 예전의 수영 방식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며 "내 몸을 완벽히 활용해 더 잘할 수 있는 방법, 나에게 더 잘 맞는 수영을 찾으려 이것저것 시도했다. 여전히 100%는 아니지만 점차 가까워지는 듯하다"고 밝혔다.
올해 마침내 어둠 속을 헤치고 나왔다.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지난 3월 열린 KB금융 코리아 스위밍 챔피언십(2023 경영 국가대표 선발대회)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1분45초70으로 2위에 올랐다. 1위 황선우의 1분45초36과 불과 0.34초 차이였다.
지난 7월 열린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황선우와 함께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 진출했다. 사상 최초로 '한국 선수 동시 결승 진출'을 이뤘다. 이호준은 1분46초04로 6위를 기록했다. 남자 계영 800m에선 유일한 아시아 국가로 결승에 올랐다. 황선우, 김우민, 양재훈(강원도청)과 함께 7분04초07을 합작했다. 6위로 입상엔 실패했지만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다. 화려하게 부활을 알렸다.
이호준은 "국가대표 선발전 때 정말 좋은 기록을 올렸다. 세계선수권 때 다시 한 번 그 기록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며 "세계선수권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아시안게임은 다른 방법으로 준비하자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마음을 편히 내려놓으려 했다. 이호준은 "예전엔 국제대회에 나가면 걱정이 많았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욕심도 부렸던 것 같다"며 "항저우에선 달랐다. 훈련에 충실히 임했으니 결과에 매달리기보다는 과정 자체를 즐기려 했다"고 말했다.
결국 아시안게임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돌아왔다. 남자 계영 800m 금메달, 남자 계영 400m 은메달, 남자 혼계영 400m 은메달, 남자 자유형 200m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차례다. 오는 13일 전국체육대회가 개막한다. 이호준은 "소속팀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책임감을 갖고 훈련 중이다"며 "하루도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운동하는 게 내 목표다"고 밝혔다.
내년 2월엔 도하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예정돼있다. 이호준은 "개인 기록은 항상 1분44초대를 원한다. 단체전의 경우 우리도 메달권에서 경쟁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팀원들과 계속해서 대회를 잘 치러 나가겠다"며 "개인적으론 400m를 안 한 지 조금 됐다. 기준기록을 충족해 400m에도 출전해보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이호준은 당장 이달 중순 전국체전에서부터 자유형 400m에 출전한다.
내년 7월엔 대망의 2024 파리올림픽이 열린다. 이호준은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딴다면 올림픽까지 흐름이 이어질 듯하다. 올림픽 개인전에서도 아시안게임처럼 (황)선우와 같이 시상대에 올라갈 수 있도록 성장하고 싶다"며 "단체전에서도 메달을 꼭 따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도전할 목표가 많다는 게 참 좋은 것 같다"고 싱긋 웃었다.
마지막으로 이호준은 "성장하기 위해 항상 연구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도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힘줘 말했다.
사진=고아라 기자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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