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나노서 TSMC 역전했던 삼성…왜 밀렸을까 [테크토크]

임주형 2023. 10. 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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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 2016년 세계 최초 10㎚ 양산
애플-TSMC 밀월관계에 격차 벌어져
올해부터 기술 원점…삼전·인텔 분발
1위 예상할 수 없는 각축전 펼칠 수도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2005년 설립됐습니다. 이후 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1위인 대만 TSMC와 점유율, 나노미터(㎚)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 왔지요.

통상 TSMC가 삼전보다 기술적으로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실 삼전도 과거 한 차례 미세 공정에서 TSMC를 역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두 기업 사이의 점유율 차이는 오히려 더 벌어졌지요.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TSMC 1년 앞섰던 삼전, '애플 효과'로 무효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이미지출처=삼성전자]

때는 2016년, 삼전은 세계 최초의 10㎚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가동하며 일명 '선단공정'이라 불리는 시대를 열게 됩니다. TSMC는 삼전보다 1년 늦은 2017년에야 10㎚를 가동했습니다.

당시 반도체 생산업계는 기술적 장벽에 부딪힌 상태였습니다. 10㎚를 달성하려면 ASML의 새로운 EUV 노광장비가 필요했는데, 워낙 복잡한 기계인 터라 납품 일정이 뒤로 밀렸던 탓입니다.

삼성전자와 TSMC는 나노미터(nm) 미세 공정 주도권을 둘러싸고 기술 경쟁을 벌여왔다.

이때 삼전은 구식 장비인 DUV 노광장비를 극한으로 다루는 '트리플 패터닝' 기술로 TSMC를 추월합니다. 이전엔 TSMC는 14~15㎚, 삼전은 20㎚대 공정에 머물러 있었는데, 삼전이 '퀀텀 점프'를 실현한 셈입니다.

그러나 두 기업 사이의 점유율 격차는 줄지 않았습니다. 사실, 2010년대 후반 파운드리 시장을 뒤바꾼 가장 중요한 사건은 삼전의 세계 최초 10㎚ 공정이 아닙니다. 애플-TSMC 동맹의 탄생이 훨씬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애플 파트너십, TSMC의 초격차 완성

애플 아이폰 15 [이미지출처=애플]

애플은 2017년 생산된 자체 설계 반도체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A10'의 위탁생산 전량을 TSMC 10㎚에 맡겼습니다. 이전까진 애플은 TSMC와 삼전을 함께 이용하며 수주 물량의 균형을 맞춰 왔는데, 이 시점부터 애플과 TSMC의 밀월관계가 형성된 셈입니다.

애플은 수많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중 하나이지만, 애플의 주문량은 시장의 무게중심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거대합니다. 지난해 기준 애플은 혼자서 TSMC 매출(720억달러)의 23%인 165억달러를 차지했습니다.

같은 해 삼전 파운드리 매출(208억달러)의 80%에 육박합니다. 애플을 잃는 것 하나만으로도 TSMC와 삼전의 격차가 아득히 벌어지는 겁니다.

나노미터보다는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핵심

트랜지스터 집적도는 반도체 성능을 가늠하는 핵심 기준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왜 애플은 삼성보다 한발 늦은 TSMC와 전격 파트너십을 맺었을까요? 다양한 물밑 계산이 있었을 겁니다. 우선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경쟁 중이던 삼전의 계열사에 자사 핵심 디자인을 공유하길 원치 않았겠지요.

하지만 성능 측면에서도 삼전과 TSMC 사이에는 엄연한 격차가 있었습니다. 사실, 최신 반도체의 기술 수준을 가늠할 때 각 제조사가 공개하는 ㎚ 숫자는 그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동일한 ㎚이라도 제조사의 숙련 수준에 따라 반도체 성능의 근간이 되는 '트랜지스터 집적도'(단위 다이 면적당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개수)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2019년 필립 웡 TSMC 연구부문 부사장은 "(㎚ 숫자는) 자동차 모델명 같은 숫자일 뿐, 실제 내용과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삼전은 집적도에서 TSMC보다 다소 뒤처져 왔습니다. 일례로 삼전과 TSMC의 5㎚ 반도체를 보면, 삼전 5㎚인 5LPE 공정은 다이 1제곱밀리미터당 1억2600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합니다. 반면 TSMC 5㎚인 N5 공정에선 1억7300만개로 약 37%나 차이 납니다.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높다는 건 그만큼 반도체의 속도가 빨라지고 전력 효율성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설령 삼전과 TSMC가 같은 설계도를 받아 칩을 만들더라도 성능상의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다시 원점 돌아간 기술 우위…파운드리 각축전 될까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인텔의 18A 웨이퍼를 공개하는 모습. [이미지출처=인텔 유튜브]

반도체 산업의 특징은 기술 트렌드의 빠른 변화입니다. 즉, 업계 1위가 영원히 기술 최강자일 보장은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 3㎚칩 양산 경쟁에서 삼전은 다시 한번 TSMC보다 앞서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 삼전은 차세대 트랜지스터 GAA(게이트-올-어라운드)를 TSMC보다 조기 도입하는 쾌거도 달성했습니다. TSMC는 3㎚까지는 기존 핀펫(FinFet) 트랜지스터를 쓰다가 2㎚ 공정부터 GAA 기술을 적용할 방침입니다. 삼전 입장에선 지금이 새 고객사를 유치할 적기인 셈이지요.

기술 트렌드가 빠르다는 건, TSMC-삼전의 2파전 형세도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텔 또한 최근 '이노베이션 2023' 행사에서 내년 2㎚(인텔명 20A) 공정을 적용한 칩을 생산하겠다고 '깜짝' 발표했습니다. 오는 2025년엔 더욱 진보한 공정인 18A(1.8㎚)도 선보입니다.

현재 인텔의 파운드리 서비스는 '인텔 4(과거 7㎚)'라고 불리는 공정까지 진입한 상태입니다. ㎚ 기준으로 보면 삼전, TSMC보다 훨씬 뒤처지는 듯하지만, 트랜지스터 집적도로는 이미 TSMC의 5㎚와도 견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인텔이 이번에 발표한 로드맵을 실현한다면, 처음으로 삼전-TSMC의 기술 우위가 깨지는 셈입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 미국의 기술 제재를 뚫고 자체 7㎚ 공정을 성공한 중국 SMIC 등을 포함하면, 향후 위탁생산 업계는 형세를 쉽게 읽을 수 없는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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