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쇼크웨이브](34)中, 손정의 'ARM 드림' 파괴자
매출 25% 차지하는 中 늪에 빠져
손, ARM차이나 지배 지분 매각 결정
중국 증시 상장 기대했지만 오히려 기술 유출 가능성
실적도 확인 못해 상장 앞두고 전전긍긍
편집자주 - [애플 쇼크웨이브]는 애플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며 벌어진 격변의 현장을 살펴보는 콘텐츠입니다. 애플이 웬 반도체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애플은 이제 단순히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고 스티브 잡스 창업자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노력 끝에 애플은 모바일 기기에 사용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설계해 냈습니다. PC 시대에 인텔이 있었다면, 애플은 모바일 시대 반도체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망 위기와 대규모 반도체 생산라인 설비 투자가 이뤄지는 지금, 애플 실리콘이 불러온 반도체 시장의 격변과 전망을 꼼꼼히 살펴 독자 여러분의 혜안을 넓혀 드리겠습니다. 애플 쇼크웨이브는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40회 이상 연재 후에는 책으로 출간합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아이폰의 등장과 성장을 지켜보며 ARM 인수를 10년간이나 구상해왔다. 손 회장은 아이폰에 사용되는 A시리즈 칩의 근간인 ARM을 손에 넣고 싶어 했다. 그리고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손 회장은 2016년 튀르키예로 날아가 ARM 경영진과 만나 전격적으로 인수를 제안했고 성사시켰다.
손 회장은 ARM 주가에 43%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주식을 모두 인수했다. 무려 234억 파운드(당시 약 35조원)의 현금이 투입됐다. 시가 대비 40%나 비싼 값을 쳐주겠다는데 반대할 주주가 있을까. ARM 경영진들도 손 회장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손 회장이 인수하기 전 ARM은 런던과 뉴욕 증시에 상장해있었다. 애플 쇼크웨이브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해 회사를 다시 일으키는데 사용된 종잣돈이 ARM 상장 직후 보유 지분을 매각한 것이었음을 전한 바 있다.
손 회장은 ARM 주식 상장을 폐지했다. 더이상 ARM 주주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상장 폐지는 소액주주의 간섭 없이 대주주가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조처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상장기업들은 인수한 이들이 흔히 이런 선택을 한다. 향후 엑시트를 위한 조치일 것이다.
스스로 기술과 금융 전문가로 설명한 손 회장의 계획은 현실이 됐을까. 결론은 NO. ARM을 약 310억달러에 인수해 겨우 410억달러에 엔비디아에 매각하려다 실패했다.
ARM이 최근 간신히 미 증시에 상장했지만, 손 회장이 손에 쥔 금액은 많지 않다. ARM 주가도 상장 첫날 호주를 보인 후 이후 연일 내리막길이다. 잠시나마 주가가 공모가를 하회하기도 했다.
ARM은 화려한 기대 속에 상장했지만, 전체 유통주식의 8%에 달하는 공매도가 쏟아지며 주가를 압박하고 있다.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ARM 주식에 대해 매도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왜 이런 결과가 벌어졌을까. 일각에서는 손 회장이 기대했던 사물 인터넷 시장의 확산이 기대에 못 미친 데다 인수합병에 대한 정부 규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중국이다. 그렇다. ARM은 중국이라는 늪에 빠졌다.
중국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꼼수'가 소프트뱅크와 ARM을 겨냥한 칼날로 돌아왔다. ARM을 좌지우지할 만큼 커진 중국을 통해 또 다른 이득을 얻으려던 욕심은 '급체'를 일으켰다.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발판만 깔아준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은 손 회장이 투자로 대박을 낼 수 있었던 기반이다. 그가 일본 포털 사이트 '야후 재팬', 핀란드 게임 업체 '슈퍼셀'에도 투자해 큰 성과를 냈지만 진정한 성공의 근원은 알리바바로 대변되는 중국이다.
중국에서의 성과에 대한 맹신이었을까. 손 회장은 ARM 인수 직후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ARM 중국 법인 지분 매각이었다.
ARM은 해외 지사 설립 시 100% 자체 출자했다. 중국도 100% 지분을 보유했다. 2002년 ARM의 결산 보고서는 중국 지사에 1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당시 한국 지사 근무 인원이 6명인 데 비하면 중국의 비중이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일본, 한국 지사장을 사장(president)으로 표기했지만, 중국 책임자는 상하이에 소재한 ARM컨설팅 이사(Director)로 표현했다.
ARM이 소프트뱅크로 매각되기 직전인 2015년 결산자료를 보자. ARM은 인도를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324명의 직원이 있다고 공개했다. 이중 상당수가 중국 지사 직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ARM은 중국 법인의 역할을 RISC 기반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그래픽 지적재산에 대한 마케팅, 연구, 개발로 규정했다. 반면 삼성전자를 담당할 한국법인은 마케팅 조직으로 규정했다. 유럽과 미국을 제외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연구 개발 조직이라고 표현된 곳은 대만과 중국, 인도뿐이었다. 심지어 일본 법인조차도 마케팅만 담당했다.
ARM이 중국을 특별히 대우한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제조2025' 계획을 통해 '반도체 굴기'를 추진했다. 화웨이와 같은 대형 기업이 탄생하면서 중국이 ARM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급격히 커졌다. 전체 매출의 25%가량을 중국이 책임졌다.
손, 전체 매출 25% 담당하는 중국 자회사 지배권 포기‥미 언론도 의문 제기2018년 6월 소프트뱅크는 전략적으로 ARM이 보유하고 있던 ARM 차이나 지분을 현지 투자자에게 매각하고 47.33%의 지분만을 남겼다. 매각 대금은 6억3720만파운드였다. 이제 ARM차이나의 신분은 자회사에서 조인트벤처(joint venture)로 전환됐다.
ARM의 2019년 결산 자료에는 ARM차이나를 관계기업이라고 설명하고 5억9480만 파운드의 재평가 이익을 반영했다. 아울러 중국 조인트 벤처에 대해 중국 시장에서 성장을 가속하기 위한 (소프트뱅크) 그룹 전략의 일부라고 부연했다.
ARM이 미국 기업이었거나 미국 증시 상장사였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ARM차이나 지분 매각은 미국 외국인 투자 위원회(CFIUS)의 승인 대상이 아니었다. CFIUS는 싱가포르 자본에 인수된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이 미국 통신 칩 업체인 퀄컴을 인수하는 것을 차단한 바 있다. CFIUS가 중국에 퀄컴의 기술이 넘어갈 것을 우려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미 언론들도 소프트뱅크의 ARM차이나 매각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ARM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ARM차이나 지분 매각 가격이 소프트뱅크의 ARM 인수 대금의 약 5%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 정당한 가격평가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투자분석가의 의견을 보도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국 기술분이냐에 정통한 인사를 인용, "이번 거래로 인해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구축하기 위한 칩 설계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고 전하며 향후 10년간 엄청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중국에서는 손 회장과 소프트뱅크가 ARM 매출의 25% 차지할 정도로 급격히 성장한 ARM차이나를 중국 증시에 상장시키려 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ARM과는 별도로 ARM차이나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던 전략인 셈이다.
손 회장은 ARM차이나의 독자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앨런 우 ARM차이나 최고경영자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고 한다. 손 회장의 계획대로였다면 ARM차이나와 ARM 쌍두마차는 세계 반도체 업계를 호령했을 것이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마침 불거진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ARM차이나는 자체적으로 운영되며 ARM 본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엘런 우 ARM차이나 CEO는 독자 기술 개발을 강화했다. 그는 ARM 기술에 대해 이해 상충으로 이어질 수 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2020년 ARM 본사가 그를 해고했지만,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텼다.
ARM 차이나에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시점도 묘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직후다. 이 사안이 단순한 경영 분쟁이기보다는 우 CEO가 중국 측에 ARM의 기술을 빼돌리려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우 전 CEO는 ARM 본사와의 갈등이 불거진 후 자체 기술 개발을 더욱 독려하기도 했다. 심지어 ARM 차이나 직원들은 공개 성명을 통해 국가 전략자산인 ARM차이나를 보호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기까지 했다.
중국 정부도 ARM 상장의 발목을 잡았다. 중국은 엘런 우를 대신한 새로운 소프트뱅크 경영진의 선임에 대한 서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분히 우의 배경에 ARM의 기술을 빼돌리려는 중국 정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ARM의 독백 "ARM차이나는 위험 요인"
ARM차이나의 리스크는 ARM 재무제표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ARM의 지적재산권을 중국에서 판매하는 기업에 대해 ARM은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미 상장기업은 자회사와 투자사에 대한 경영실적을 공시해야 한다. ARM차이나는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회계적인 정리가 필요했다. 묘안이 나왔다. 소프트뱅크는 ARM이 가지고 있던 ARM차이나 지분을 산하 펀드로 옮겼다.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은 소프트뱅크가 ARM과 ARM차이나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고 우려를 표명해왔다. ARM은 또다시 중국 달래기에 나서야 했다.
ARM이 미 증시 상장을 위해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신고서는 ARM차이나를 위험 요인으로 규정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ARM차이나는 당사의 단일 최대 고객이다. 당사가 10%의 무의결권 지분을 가지고 있는 소프트뱅크 자회사 아세톤 리미티드가 ARM차이나 지분 48%를 소유하고 있다."ARM차이나는 ARM의 관계사에서 고객으로 신분을 전환했다. 신고서는 더 나아가 ARM차이나가 ARM에 지불할 비용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아예 지불하지 않을 수 있는 위험요인이 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ARM의 중국 내 라이선스 사업권을 가진 ARM차이나가 거래중단을 선언할 경우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자체 IP까지 개발하고 있는 ARM 차이나가 ARM의 설계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릴 경우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양사가 독점 공급계약을 맺은 만큼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이런 저간의 사정은 ARM이 중국에 종속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ARM은 ARM차이나가 자사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 지급을 지연해 애를 태우기도 했다. 수수료 지급을 위한 실적 역시 중국 측이 보여주는 것을 믿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ARM은 ARM차이나 경영정보 공개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고 했지만 언제든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어렵게 정리된 ARM차이나 경영권 문제의 불씨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ARM 차이나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거부했던 앨런 우가 제기한 소송은 일단은 ARM차이나 쪽에 유리하게 전개됐지만, 우가 항소해 향후 ARM차이나에 불리한 판결이 나올 경우 상황은 다시 악화할 수 있다.
심지어 ARM차이나가 ARM의 경쟁사로 둔갑할 수도 있다. ARM은 ARM차이나가 자체적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개발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이런 약속이 지켜질지는 확답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이 규제한 ARM의 최신 코어 설계(예 NEOVERSE)를 제외하고는 중국이 ARM IP를 바탕으로 자체 개발한 새로운 설계를 만들어 내는 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ARM차이나는 이미 중국 쪽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후 인공지능, CPU, 정보보안, 멀티미디어 처리 등 4대 핵심 연구개발 분야를 핵심 연구분야로 규정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일부 성과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경영진들도 신제품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ARM은 여전히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는 상장 직후 중국에 대한 지원을 지속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는 ARM이 상장 기업이 된 후에도 ARM차이나와 협력하는 전략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과거와 동일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하스 CEO는 상장에 앞서 지난 6월에는 중국을 방문해 당국자와 만나 중국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도 약속해야 했다. 중국은 ARM의 목줄을 쥐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이런 저간의 스토리는 중국의 늪에 빠진 ARM의 상황을 보여준다. 아무리 손 회장이라도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울 정도다. 엔비디아가 ARM을 포기한 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ARM을 인수했더라도 어땠을까. 아마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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