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호,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첫 3연패 '신화'…한·일전 2-1 역전승 [항저우 현장리뷰]
(엑스포츠뉴스 중국 항저우, 나승우 기자) 황선홍호가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 축구가 역사적인 3연패를, 그것도 숙적 일본을 누르고 일궈냈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24세 이하(U-24) 남자축구 대표팀은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황룽스포츠스타디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전반 2분 만에 선제골을 내줬으나 전반 27분 정우영의 동점포, 후반 11분 조영욱의 역전 결승포를 묶어 2-1 뒤집기 승리를 거뒀다.
한국은 이날 우승으로 지난 2014년 인천 대회,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어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3회 연속 금메달 획득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이 종목 2회 연속 우승팀은 대만(1954·1958년), 미얀마(1966·1970년), 이란(1998·2002년) 등이 있었다. 하지만 3연패 위업을 만들어낸 팀은 없었는데 대한민국이 신화 같은 3회 연속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 축구는 이번 우승으로 역대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서 금6, 은3, 동3을 기록하며 최다 우승국으로의 지위를 공고히 다졌다. 1951년 한국 전쟁 중으로 불참했던 한국은 1954년 마닐라 대회와 1958년 도쿄 대회, 1962년 자카르타 대회에서 연달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1970년 방콕 대회에서 미얀마와 결승에서 비겨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만 해도 승부차기 제도 없이 금메달을 함께 목에 걸던 시대였다.
1974년 8강에서 충격 탈락했던 한국은 1978년 방콕 대회에서 북한과 0-0으로 비겨 다시 금메달을 같이 목에 걸었다. 1982년 대회에서 일본에 처음 지는 등 수모 끝에 다시 입상에 실패한 한국은 1986년 서울 대회에서 처음으로 단독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2-0으로 이기고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이후부턴 다소 부침을 겪었다. 1990년 베이징 대회 준결승에서 이란에 패해 동메달에 그쳤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선 준결승에서 소나기슛을 퍼붓고도 우즈베키스탄에 0-1로 진 뒤 3~4위전에서도 쿠웨이트에 패해 노메달 수모를 겪었다. 당시 황 감독이 핵심 공격수로 뛰었다. 1998년 방콕 대회에선 일본을 누르고도 8강에서 개최국 태국에 충격패를 당하며 4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는 이후 2002년 부산 대회에서 23세 이하 선수들만 참가하면서, 24세 초과 와일드카드를 3명 포함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부산 아시안게임에선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등 2002 월드컵 4강 멤버를 동원하고도 준결승에서 이란에 승부차기로 져 결국 동메달로 마쳤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도 4강에서 이라크에 패하며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펑펑 울어 화제가 됐던 한국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에 그치며 우승과 오랜 기간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홍콩과 일본, 태국을 토너먼트에서 연달아 누른 뒤 북한을 1-0으로 꺾고 28년 만에 우승에 성공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손흥민, 황희찬, 황의조, 이승우, 조현우 등 슈퍼스타들을 앞세워 결승에서 일본을 연장 혈투 끝에 2-1로 이기고 2연패를 일궈냈다. 그리고 이번 항저우 대회에서 역사적 3연패까지 내달렸다.
이번 대회에서 필드 플레이어 전원을 고루 기용하고도 균일된 전력으로 호평을 받았던 황선홍호는 일본전에서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4-4-2 포메이션을 꺼내든 황선홍 감독은 이번 대회 2실점만 내준 이광연에게 골문을 다시 한 번 맡겼다. 백4는 박규현, 박진섭, 이한범, 황재원으로 구성됐으며 중원엔 백승호, 정호연이 자리잡았다. 엄원상, 이강인이 양날개로 호흡을 맞췄다. 조영욱이 고영준과 전방 투톱을 이뤘다.
일본은 4-5-1로 맞섰다. 후지타 가즈키가 골문을 지키는 가운데 오쿠다 하야토, 요시다 마나토, 야마사키 다이치, 바바 세이야가 수비 라인을 형성했다. 마쓰오카 다이키, 시게미 마사토, 니시카와 준, 마쓰무라 유타, 사토 케인이 중원을 이뤘다. 우치노 고타로 홀로 최전방에 섰다.
한국과 일본은 72년 전통을 자랑하는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종목에서도 많은 명승부를 남기곤 했다. 1962년 자카르타 대회 조별리그에서 한국이 1-0으로 이기며 한일전을 시작한 두 팀은 1970년 방콕 대회에선 4강에서 만나 한국이 연장전 끝에 2-1로 이겼다. 1978년 방콕 대회 조별리그에서도 한국이 3-1로 쾌승했다.
1982년 뉴델리 대회에선 한국이 1-2로 지면서 일본에 처음 지는 기록을 남겼다. 12년 뒤인 1994년에도 갚았다. 적지인 히로시마로 들어가 8강에서 3-2로 이겼다. 당시 이탈리아 세리에A 제노아에서 활약하던 미우라 가즈요시가 골을 넣고 '가즈 댄스'를 춰 환호했으나 별세한 유상철 전 인천 감독이 동점포를 터트리고 황선홍 현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이 2골을 넣으면서 이겼다. 지금도 회자되는 명승부로 남아 있다. 한국은 4년 뒤 방콕 아시안게임에선 2라운드에서 붙어 최용수의 멀티골 앞세워 한국이 2-0으로 완승했다.
2002년부터 아시안게임 참가 연령이 23세 이하(U-23)로 위주에 24세 초과 3명 참가로 제한된 뒤 두 번 붙었다. 2014년 인천 대회에선 8강에서 만나 홈팀 한국이 1-0으로 이겼다.
그리고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선 결승에서 격돌해 한국이 이승우의 선제골, 황희찬의 결승포를 묶어 지금은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서 뛰는 우에다 하야세의 만회골로 추격한 일본을 2-1로 누르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이 역대 전적 6승 1패의 절대 우위를 드러낸 가운데 운명의 90분이 황룽스포츠센터 경기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은 전열을 정비할 새도 없이 한 방 얻어맞았다.
일본의 첫 공격에서 사토가 왼쪽 측면을 파고 들어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반대편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이를 이광연이 쳐냈으나 볼이 시게미 앞으로 떨어졌다. 시게미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으로 밀어준 볼을 우치노가 한 번 잡은 뒤 오른발로 침착하게 차 넣었다.
일본 벤치는 일제히 뛰쳐나와 기뻐했다. 한국은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사상 첫 3연패를 노크했으나 일단 한 골 내주고 시작하는 상황을 맞았다.
기세를 탄 일본은 계속 한국을 몰아쳤다. 전반 15분 선제골 주인공 우치노가 한국 수비진 뒤로 침투하면서 슈팅을 시도했고, 이를 이광연이 안전하게 잡아냈다. 이후 부심이 깃발을 들면서 오프사이드가 선언됐지만, 주심은 그 전 한국의 반칙을 선언하면서 일본에 프리킥을 줬다. 다행히 프리킥 상황에서도 일본이 오프사이드를 범하면서 한국은 상대 공세를 차단했다.
한국도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반격에 나섰다. 전반 18분 이강인이 오른쪽 측면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로 좋은 공격 기회를 만들었다. 공을 잡은 이강인은 수비수를 제친 뒤 왼발 크로스를 올렸고, 이를 박스 안에 있던 조영욱이 수비수와의 경합에서 승리해 헤더 슈팅으로 연결했으나 골문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러던 한국은 전반 27분 드디어 웃었다. 백승호가 페널티지역 오른쪽 외곽에서 올린 크로스가 상대 수비에 막힌 뒤 이를 이번 대회에서 맹활약 중인 황재원이 오른발로 감아 올렸다. 이를 정우영이 상대 수비 뒤에서 훌쩍 뛰어올라 헤더골로 완성했다.
정우영은 이번 대회 8호골을 작렬시키며 득점왕을 사실상 예약했다. 정우영은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해트트릭, 우즈베키스탄과의 준결승 멀티골 등 이번 대회에서 황선홍호 황태자로 진가를 톡톡히 발휘했다. 윙어임에도 적극적인 공격으로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슈투트가르트에서 주전으로 뛰는 클래스를 여지 없이 발휘하고 있다.
분위기를 탄 한국은 내친 김에 역전골까지 노리며 공세를 강화했다. 전반 29분 동점골 주인공 정우영이 오른쪽 측면에서 돌파에 성공한 뒤 크로스를 올렸고, 이를 조영욱이 좋은 움직임으로 머리에 맞춰 역전골을 노렸지만 후지타 골키퍼 선방에 가로막혔다.
전반 32분엔 수비수 박진섭이 머리에 출혈이 발생해 잠시 터치라인 밖으로 나가는 상황이 펼쳐졌다. 교체 가능성도 있었지만 머리에 붕대를 감고 다시 그라운드로 들어오면서 우승을 위한 '붕대 투혼'을 감행했다.
전반 37분엔 대표팀 에이스 이강인이 일본이 공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는 틈을 노려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지만, 주발인 왼발이 아닌 오른발에 맞아 부정확한 슈팅이 되면서 골대를 크게 벗어났다.
이강인은 계속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공격에 활기를 더했다. 전반 41분 오른쪽 측면에서 화려한 움직임으로 일본 수비수를 제친 뒤 오른발 낮은 크로스를 시도했다. 이강인의 크로스는 아쉽게도 일본 수비수 야마사키 발에 걸리면서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전반 42분엔 정우영이 거리가 있음에도 박스 밖에 크로스가 아닌 오른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고, 정우영 슈팅은 골키퍼 정면으로 향하면서 후지타 골키퍼가 무리 없이 잡아냈다. 결국 이후에도 두 팀은 득점 없이 전반전을 1-1로 마쳤다.
1-1로 전반전을 마친 한국은 후반 초반 조영욱의 역전포가 터지면서 환호했다. 황재원이 하프라인부터 드리블하다가 전방에 배달했고 이 때 정우영이 상대 수비와 몸싸움 끝에 볼을 페널티지역 가운데로 흘려줬다. 이를 조영욱이 어려운 상황에서 잡았으나 기어코 차기 좋은 위치로 만든 뒤 오른발로 차 넣어 2-1을 만들었다.
현역 군인으로 지난 1일 상병 진급을 한 조영욱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조기 전역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전역골'을 조영욱이 넣은 것이다.
황선홍 감독은 이후 정우영, 조영욱, 이강인, 고영준 등 이날 골 넣은 선수 등 공격 자원들을 대거 뺀 뒤 엄원상, 안재준, 홍현석, 송민규 등을 투입했다. 교체로 들어가는 선수들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굉장한 화력을 갖춘 선수들이다. 일본 골문에 3번째 골을 넣겠다는 의지였다.
한국은 안재준이 후반 37분 페널티지역 외곽 왼쪽에서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슛을 쏴 상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일본은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넣어 승부수를 걸었는데 태극전사들은 이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맞불을 놨다.
1분 뒤 후반 38분엔 엄원상이 묵직한 오른발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후지타가 간신히 쳐내 땅을 쳤다. 다급한 일본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교체로 들어간 아유카와 슌이 홍현석을 미는 등 다급한 마음울 숨기지 않았다.
이후 일본은 공격에 무게를 더 두면서 한국의 양 측면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하지만 일본은 지친 듯 선수간 호흡이 맞지 않으면서 공격이 자주끊어졌다.
일본은 결국 추가시간 6분에도 별다른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한국이 종료 휘슬이 울리면서 환호했다.
그야말로 퍼펙트 우승이었다. 황선홍호는 조별리그 첫 경기 쿠웨이트전 9-0 대승을 시작으로 태국을 4-0, 바레인을 3-0으로 완파하면서 조별리그에서 '넘사벽' 공격력을 선보였다. 키르기스스탄과의 16강에서 처음 실점했으나 역시 소나기 골을 퍼부어 5-1로 대승했다.
중국의 5만 홈관중을 잠재운 8강전은 압권이었다. 심판의 편파 판정, 상대의 격투 축구 등에 따른 여러 우려 등이 불거졌으나 전반에 연달아 터진 홍현석의 왼발 프리킥 선제골과 송민규의 축구 본능이 빛나는 추가골을 묶어 2-0 완승을 거뒀다. 홍현석이 "득점 뒤 도서관에 온 것 같았다"고 표현할 만큼 중국의 대관중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4강전에서도 한국 축구의 저력이 빛났다. 이번 대회 들어 슈팅만 하면 들어가는 폭발적인 골결정력을 선보이고 있는 정우영이 선제골과 결승포를 쓸어담으면서 2-1로 이기고 일본과 결승에서 붙었다. 일본전에서도 멀티골로 웃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총 27골을 넣어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 중국이 기록한 26골을 넘어서는 역대 아시안게임 단일 대회 최다 골을 넣은 팀이 됐다.
황선홍호는 1994년 우즈베키스탄, 2014년 한국에 이어 역대 3번째 7전 전승으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서 우승하는 팀도 됐다.
한국 축구는 올해 숙원이었던 하계 아시안게임 우승을, 그 것도 7번 전승에 한일전 결승 승리로 일궈내면서 향후 한국 축구의 10년을 책임질 자원들이 병역 특례를 받아 보다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프랑스 최고 명문 파리 생제르맹(PSG)과 5년 계약을 체결한 이강인은 커리어 중단에 대한 우려 없이 PSG에서 마음 놓고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게 됐다.
조별리그 첫 경기 쿠웨이트전에서 해트트릭을 폭발하는 등 이번 대회 황선홍호의 득점 기계로 거듭난 정우영 역시 독일 분데스리가 슈투트가르트에서 꿰찬 주전 입지를 계속 살려 보다 큰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과 8강전에서 그림 같은 왼발 프리킥 선제 결승포를 터트려 축구팬을 사로잡은 홍현 석은 현 소속팀인 벨기에 명문 헨트에서 더 큰 빅리그로 이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김천 상무에서 뛰는 조영욱은 지난 1일 상병을 달았으나 이번 금메달 획득으로 인해 조기 전역, 어느 누구보다 큰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 이들 외에도 김천에서 제대한 골키퍼 김정훈을 제외한 21명이 군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신의 축구 인생을 더 넓게 열어젖힐 수 있게 됐다.
황선홍 감독 역시 이번 금메달의 수혜자가 됐다. 황 감독은 지난 2013년 포항 스틸러스를 맡아 한국 축구 최초로 K리그1과 FA컵을 한 해에 동시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2016년엔 FC서울 감독으로 K리그1 을 다시 제패했으나 이후 부침을 겪었다. 2018년 서울 감독직에서 물러난 그는 이듬 해 중국 옌볜을 맡았으나 팀이 갑자기 해체되는 돌발 상황을 맞았다. 이후 2020시즌 하나은행이 인수한 대전 하나시티즌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했으나 그해 9월 사임하면서 지도자 인생에 큰 시련을 맞았다.
황 감독은 그냥 주저 앉지 않았다. 2021년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뒤 지난해 U-23 아시안컵 8강에서 일본에 0-3으로 참패하는 등 계속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번 대회에서 완벽한 우승을 이끌어내며 화려하게 날아오른 것이다.
포항에서 더블을 이루고 딱 10년 만에 자신의 별명인 황새처럼 멋있게 비상했다. 상대의 밀집 수비에서 다양한 공격 패턴과 적재 적소의 선수 기용 등은 황선홍이란 축구인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한편, 앞서 열린 3~4위전에선 한국과의 준결승에서 '깡패 축구'를 펼치고도 1-2로 패한 우즈베키스탄이 홍콩을 4-0으로 대파하고 지난 1994년 금메달 획득 이후 29년 만에 입상했다. 과거 북한 대표팀과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를 지휘했던 예른 안데르센 감독이 이끄는 홍콩은 8강에서 강호 이란을 1-0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종목을 4강으로 마쳤다.
사진=중국 항저우, 김한준 기자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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