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라는 '나는 솔로', 우리 자신을 본 건 아닐까 [양민영의 한 솔로]

양민영 2023. 10. 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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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영의 한 솔로] 한 솔로가 본 <나는 솔로>

[양민영 기자]

 <나는 솔로>
ⓒ ENA, SBS Plus
"남의 연애를 뭐하러 보고 있어?" 데이팅 프로그램을 함께 보자는 영업을 한 마디로 물리치곤 했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나는 솔로>(ENA, SBS 플러스)의 에피소드를 축약한 클립을 본 게 실수였다. '올 타임 레전드'라고 칭송받는 <나는 솔로> 16기의 커플 되기 대장정에 나도 모르게 스며들고 만 것이다.

커플을 선택한 지난 4일 방송분의 순간 시청률이 7.9%까지 치솟았다. 출연자를 향한 시청자의 관심이 과열되면서 마구잡이 신상 털기와 악성 댓글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찮지만 단연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나에게 영업 당하면서 마지막 회를 함께 시청하고 유튜브 라이브 방송(자정이 훌쩍 넘는 시간임에도 무려 22만 명이 함께했다)까지 이어서 보던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데이팅 프로그램에 무관심했던 게 역설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빠져들게 만든 원인'이라고. 나와 친구에겐 타인의 욕망을 훔쳐보는 관음증적인 쾌락에 대항할 면역이 없었던 거다.

<나는 솔로> 팬 중에는 데이팅 프로그램에 관심조차 없었다는 이들이 많다. 데이팅 프로그램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이들까지 대거 유입돼 출근길 전동차나 추석을 맞은 역사와 터미널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나는 솔로>를 지켜보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인기의 원인이 뭘까? 먼저 이혼이 신의 한 수였음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솔로> 16기는 <솔로지옥>이나 <환승연애>와 다르게 '출연자 전원이 이혼 경력 있음'이라는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콘텐츠와 세계관 설정이라니, 언뜻 보기에는 어불성설인 것 같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요즘 뜬다고 하는 콘텐츠에서 빠지지 않는 세계관 설정이 여기서도 유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 필수조건은 바로 감정이입이다. 내가 처음 유튜브 클립을 본 것도 영상 아래에 천 개도 넘게 달려 있던 댓글 때문이었다. 이 진지하고 분석적인 댓글들이야말로 대중이 '이상한 솔로 나라'라는 세계관에 감정이입했다는 명확한 증거다.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감정이입을 끌어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욕망의 보편성이 확보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나는 솔로>는 정확히 이 부분을 공략한다. 비록 한 차례 실패했을지라도 다시 사랑받음으로써 실패를 만회하고픈 욕망은 거의 모든 인간에게 내재해 있다.

그러나 이 보편적인 욕망이 예측 불가한 상황과 변수를 낳고 출연자를 더 큰 고통으로 몰아간다. 쉽게 말해서 '나도 보란 듯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한 이들의 재도전은 애초에 난이도가 너무 높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과 별개로, 사랑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사람임을 감안할 때 시작부터가 비극이다.

그런데도 출연자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감정의 지뢰밭, 무엇을 시도해도 망하기 쉬운 척박한 세계에서 각자의 전략대로 바쁘게 움직인다. 가능성이 있는 모든 상대에게 플러팅을 시도하고(상철), 이미 자신이 꼭짓점인 삼각관계를 구축했음에도 더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자 하며(현숙), 마치 안전 자산처럼 자신에게만 직진하는 상대가 있어도 사랑의 지속성을 두고 고민한다(정숙).

'일종의 사회 실험'이라는 촌평
 
 <나는 솔로>
ⓒ ENA
자신만의 매력으로 상대를 유혹하고 확실한 갑의 위치를 점하고 현실적인 요건까지 충족하는 사람을 찾는 게 고작 5박 6일의 시간, 6명의 이성이라는 조건에서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출연자들이 불가능한 미션으로 인해 고통받을수록 시청자의 즐거움은 커지는 게 이 프로그램의 기본 구조다.

또 분명 데이트 위주의 프로그램인데, 진정한 성공 요인이 러브 라인에 있지 않다는 점도 흥미롭다. <나는 솔로> 16기가 최고의 길티플레저로 등극할 수 있었던 원인은 팬들이 '일종의 사회 실험'이라고 촌평할 정도로 한국적인 인간관계의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 데에 있다.

일단 이 프로그램은 데이트와 연애가 중심임에도 조금도 로맨틱하지 않다. 오히려 회사 동료들이 '커플이 된다'는 목표 아래 워크숍을 떠난 것 같이 무척이나 사무적이고 건조한, 한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시간에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고 데이트도 매우 압축적으로 이뤄지며 상벌의 규칙에 따라서 데이트의 기회를 얻거나 공포의 짜장면을 먹는다. 밤에는 한곳에 모여 술을 마시고 출연자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인터뷰는 새벽까지 진행된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피로한 일정을 소화하는 중에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오가고 그로 인해 오해가 쌓이고 주관이 불확실한 사람이 휘둘리고 해괴한 루머가 탄생하고 오해로 인한 갈등이 폭발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광경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못해서 친숙하다. 감정이입을 위한 별도의 장치도 필요 없다.

경쟁으로 인한 피로도가 높고 자살률마저 높은 사회에서 한국인은 쉽게 불행해졌고 그 결과 우리는 뒷담화라는 아편을 선택했다. 뒷담화라는 게 마치 야식처럼 순간의 즐거움만 주고, 장기적으로는 나와 타인을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자기 파괴적인 행위임을 모르지 않지만 도무지 끊을 수 없다.

행복이란 게 너무 멀리, 아득하게 멀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을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고 가까운 이들도 적당히 불행하기를 바란다. 그럴 때 우리는 내가 커플이 되는 일보다 누가 누구와 감정을 나누는지, 남의 일에 더 몰두하고(영자) 또 불안해하는 동료에게 정답을 주겠다는 주제넘은 오지랖을 발휘한다(영숙, 영철). <나는 솔로>는 한국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뒷담화가 얼마나 큰 파문을 불러오는지 날 것 그대로 보여주었다.

시청자 댓글을 보면 뒷담화 사건이 일종의 거울 치료(역지사지를 뜻하는 인터넷 은어) 효과를 낳아서 자기 행동을 돌아봤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출연자를 과하게 비난하고 사과를 종용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흔하게 불행하고 평범하게 악랄하고 그로 인해서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본 건 아닐까? 그로 인한 과도한 거부 반응이 비난과 악성 댓글로 표출된 게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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