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의 간절한 호소, 안타까운 현실의 한국농구

이준목 2023. 10. 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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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 7위로 아쉬운 마무리

[이준목 기자]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 센터 김종규는 지난 6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일정에 마치고 개인 SNS에 장문의 소감을 남겼다.

김종규는 "대한민국 농구를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신 팬분들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스물한 살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자리가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항상 부담스럽고 힘든 자리였습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고 하기 싫다고 할 수 없는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혹시라도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정말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습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농구대표팀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7위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통산 5번째 금메달을 목표로 야심차게 출항했지만, 라이벌 일본-중국-이란에 줄줄이 연패하며 순위결정전으로 밀렸다. 그나마 마지막 경기였던 7, 8위전에서 일본을 다시 만나 설욕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기는 했지만, 기대에 못미친 초라한 성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김종규의 고백은 이번 대표팀의 고참 선수로서 팬들에게 전하는 사과와 반성이었다.

하지만 김종규는 한 가지 부탁도 덧붙였다. 한국농구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다짐과 함께, 농구대표팀에 대한 지원을 당부하는 호소였다.

김종규는 "염치없지만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농구는 지금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반성해야 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대한농구협회는 후배들을 위해 조금 더 도와주세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조금 더 신경 써주시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다음은 우리 선수단이 하겠습니다. 죄송하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라고 호소하며 글을 마쳤다.

김종규는 경희대 재학 시절이던 2011년부터 성인 국가대표에서 12년 넘게 활약한 베테랑이다. 한국농구 마지막 영광의 순간으로 꼽히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이기도 하다. 2010년대 이후 한국농구 영욕의 순간 대부분에는 항상 김종규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대표는 김종규에게 고난과 상처의 시간이기도 했다. 장신 빅맨이 부족한 한국농구의 사정상, 비시즌마다 항상 쉴 틈도 없이 국가대표에 차출되어야 했지만 제대로 인정받은 적은 드물었다. 김종규는 서장훈-김주성-오세근 등 역대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선배 엘리트 빅맨들과 늘 비교되며 저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더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농구가 국제무대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김종규도 덩달아 비판받은 순간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규는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농구가 부진한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김종규는 고군분투했다. 9년 전에 비하면 현 대표팀 빅맨 4인방 중 라건아-이승현-하윤기에 비해 적은 출전시간을 부여받는 백업요원으로 위상이 내려갔음에도 출전시간마다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골밑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사실 김종규는 그동안 경기외적으로 특별히 목소리를 내는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표팀이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안팎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고참 선수로서 책임을 지고 입장표명을 하게 됐다. 먼저 사과와 자기 반성에 이어 대표팀의 문제점과 변화를 촉구하는 김종규의 진솔한 고백은, 국가대표 선수로서 태도와 소통의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최근 대표팀이 최악의 부진을 보이면서 몇몇 선수들의 감정적인 언행과 SNS 논란 등은 오히려 팬들의 눈살을 더욱 찌푸리게 했다. 김종규는 섣불리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남탓을 하지도 않았다. 대신 선수로서 자신들이 해야할 일과, 대표팀이 앞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각각 명확하게 거론하며 변화를 촉구했다. 많은 팬들도 김종규의 호소에 공감한 이유다.

김종규는 말대로 농구는 이번 아시안게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농구는 이번 대회를 통하여 아시아에서도 경쟁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구조적이고 대대적인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무엇보다 김종규가 '농구협회의 지원 부족'을 지적한 대목은 깊이 새겨야할 부분이다. 사실 김종규의 이야기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농구협회가 대표팀을 향한 투자와 지원이 열악하다는 사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국제대회 기간마다 반복되어온 이야기다.

농구협회도 알고 있지만 속수무책인 이유는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평가전 상대를 섭외할 수도 없고, 장기적인 기획을 가지고 대표팀 운영 시스템을 구축할 여력이 없다. 또한 국제적으로 명성과 영향력있는 농구인도 전혀 없다보니 외교적으로 고립되면서 FIBA(국제농구연맹)에서도 찬밥 신세로 무시당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재정적인 면보다도 더 큰 문제는,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변화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KBL과 협력구조를 더 강화하거나 혹은 외부에서 스폰서를 끌어오려는 노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대표팀 운영과 지원에 대한 문제는 10년이 넘도록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한편으로 한국농구의 방향성에 대한 깊이있는 '담론'이 부재하다는 것도 뼈아픈 부분이다. 축구나 야구는 해외진출 선수들과 외국인 감독의 영입 등으로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스포츠 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발전이 이어져왔다. 이른바 축구의 티키타카(빌드업)과 게긴프레싱(공간압박) 논쟁과 VAR 도입이라든지, 야구의 스트라이크존 확대와 투구수 제한, 경기시간 단축처럼, 선진 스포츠에서는 해당 종목의 현대화와 수준 향상을 위한 다양한 담론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농구 역시 스페이싱과 3점슛, 포지션 파괴 등으로 과거 농구에 비하여 트렌드가 크게 바뀌었고, 그 영향에 따라 아시아농구의 수준도 상향평준화됐다.

그런데 수십 년째 섬처럼 고립된 한국농구는 여전히 철지난 투빅전술과 포스트업, 2대 2게임, 지역방어 등 올드한 '한국식 농구'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국내 프로리그에서 명장 대접을 받는 농구인들은 많지만, 정작 한국농구가 나아가야할 철학을 제시할만한 '혁신적 전술가'나 '혁신적 행정가'는 전무하다. 현역 선수 중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거나, 수준높은 상위 해외리그로 진출한만한 스타도 없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한국농구는 중대한 변화의 시기를 앞두고 있다. 기존 추일승 감독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귀화선수 라건아도 태극마크를 내려놓을 가능성이 높다. 파리올림픽 출전이 좌절되면서 당분간 대표팀을 소집할만한 국제대회도 없다.

어쩌면 어영부영하다가 또다시 이번 항저우 참사의 기억은 흐지부지 잊혀지고 대표팀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높다. 김종규의 간절한 호소가 또다시 허무한 공염불로 끝나버리고 말지, 앞으로 농구협회와 농구계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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