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아 영입' 페퍼, 이제 '만년 꼴찌'는 없다
[양형석 기자]
프로스포츠에서 뒤늦게 창단한 신생구단이 고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KBO리그의 10번째 구단 kt 위즈는 2013년 창단 후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5년부터 1군에 참가했지만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1998년에 창단한 메이저리그의 막내구단 템파베이 레이스도 지금은 5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강 팀이 됐지만 창단 후 10년 동안에는 9번이나 지구 최하위에 머물렀다.
지난 2021년에 창단해 2021-2022 시즌부터 V리그에 참가한 여자부의 일곱 번째 구단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도 지난 두 시즌 동안 '신생구단의 비애'를 온 몸으로 느꼈다. 창단 첫 시즌 코로나19로 조기 종료됐음에도 31경기에서 단 3승을 올리는데 그친 페퍼저축은행은 2022-2023 시즌에도 36경기에서 5승을 따내는 데 머물렀다. 점점 발전했다고 위안할 수 있겠지만 냉정하게 말해 지난 두 시즌 동안 페퍼저축은행은 기존 구단들의 '승점자판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지난 두 시즌 동안 선배 구단들을 상대로 혹독한 수업료를 냈던 페퍼저축은행은 이번 시즌을 통해 '투자의 결실'을 보려 한다. 페퍼저축은행은 이번 FA시장을 통해 5번의 챔프전 우승 경력을 가진 대표팀의 주장 박정아와 아웃사이드히터와 리베로가 가능한 '살림꾼' 채선아를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다. 과연 페퍼저축은행은 창단 3번째 시즌을 맞는 2023-2024 시즌 리그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을까.
▲ 지난 시즌까지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었던 야스민은 이번 시즌 페퍼저축은행 소속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
ⓒ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
IBK기업은행 알토스가 창단 당시 기존 구단으로부터 경험 있는 선수들을 영입하며 전력을 꾸렸던 것과 달리 페퍼저축은행은 신생구단특별지명 등 전력강화 기회에서 유망주들을 데려오며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렸다. 당장 성적을 내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착실하게 수집한 유망주들이 팀의 주축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맞춰 강 팀으로 도약하겠다는 초대 사령탑 김형실 감독의 구상이 엿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창단 첫 시즌 소박하게(?) 5승을 목표로 잡은 페퍼저축은행은 시즌이 조기종료될 때까지 31경기에서 3승28패를 기록했다. 페퍼저축은행이 아무리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신생팀이라지만 6위를 기록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가 10승을 올렸음을 고려하면 창단 첫 시즌 페퍼저축은행의 부진은 매우 심각했다. 결국 페퍼저축은행은 작년 FA 시장에서 9억9000만 원을 투자해 팀 내 최고 약점으로 꼽히던 세터 자리에 경험 많은 이고은 세터를 수혈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이고은 세터에 이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니아 리드를 지명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창단 첫 시즌보다 5경기를 더 치르고도 단 2승이 많아진 시즌 5승에 그치고 말았다. 시즌 전부터 아웃사이드히터 지민경과 미들블로커 하혜진이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면서 완벽한 전력을 꾸리지 못했고 1순위 외국인 선수 리드 역시 타 구단의 외국인 선수들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문슬기로 어렵게 리베로 자리를 유지하던 페퍼저축은행은 작년 12월 GS칼텍스 KIXX에 2024-2025 시즌 1라운드 지명권을 내주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주전 리베로로 활약했던 베테랑 오지영 리베로를 영입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오지영이 출전한 16경기에서 3승13패를 기록하며 눈에 보이는 반전을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페퍼저축은행에서 경험 많은 베테랑 오지영의 존재는 큰 힘이 됐다.
외국인 선수 니아 리드가 대마 성분이 포함된 젤리를 소지한 것이 발각되면서 시즌을 완주하지 못하고 한국을 떠난 가운데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주장 이한비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이한비는 페퍼저축은행이 치른 정규리그 36경기에 모두 출전해 439득점을 올리며 득점 11위, 국내 선수 중 7위에 이름을 올렸다. 2021-2022 시즌 이한비가 31경기에 출전해 262득점을 기록했음을 고려하면 1년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뤄낸 셈이다.
▲ V리그 여자부 연봉 공동 1위 '클러치박' 박정아는 이번 시즌 페퍼저축은행의 도약을 이끌 중책을 맡았다. |
ⓒ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
페퍼저축은행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FA시장의 '큰 손'을 자처했다. 먼저 주장 이한비와 3년 최대 10억6000만원, 팀 내 맏언니 오지영 리베로와 3년 최대 10억 원에 FA계약을 체결했고 외부에서는 박정아를 7억7500만 원에, 채선아를 1억 원에 영입했다. 다만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가 보상선수로 이고은 세터를 지명하면서 이고은을 재영입하는 과정에서 최가은과 김세빈 지명권을 도로공사에 내준 것은 페퍼저축은행의 큰 실책이었다.
외국인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2순위로 지난 두 시즌 동안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서 활약했던 192cm의 거포 야스민 베다르트를 지명했다. 야스민은 지난 시즌 초반까지 최고의 활약을 펼치다가 허리 디스크에 시달리며 개점 휴업했고 독주하던 현대건설이 시즌을 망치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하지만 부상이 완쾌된다면 V리그에서 야스민 만큼 위력적인 공격수를 찾기도 쉽지 않다. 페퍼저축은행은 2021-2022 시즌의 야스민을 기대하며 모험을 걸었다.
기업은행에서 챔프전 우승 세 차례, 도로공사에서 챔프전 우승 두 차례를 경험했던 박정아는 분명 페퍼저축은행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수다. 하지만 박정아는 도로공사 시절 임명옥과 문정원이라는 '수비 귀재'들의 도움을 받아 서브 리시브를 면제 받았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에서 박정아가 리시브를 면제 받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과연 상대의 목적타 서브를 받아내면서도 공격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페퍼 박정아'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이다.
지난 시즌 주전 미들블로커 최가은과 1순위 신인 김세빈 지명권을 도로공사에 내주면서 미들블로커 전력이 약해진 것도 이번 시즌 페퍼저축은행의 커다란 불안요소다. 어깨부상으로 지난 시즌을 통째로 쉬었던 하혜진이 복귀한 것은 다행이지만 하혜진은 아직 컵대회에서 100%의 몸 상태를 보여주지 못했다. 페퍼저축은행이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미들블로커 MJ 필립스를 지명한 것도 약점으로 지적되는 중앙을 보강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6월 아헨 킴 감독이 개인사정으로 자진사퇴한 페퍼저축은행은 미국 여자대표팀 상비군을 지휘했던 조 트린지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아직 선수들과의 호흡 등에서 얼마나 팀에 잘 녹아 들지는 알 수 없지만 페퍼저축은행은 새 감독 영입을 통해 혼란을 최소화하고 팀을 빠르게 정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단 3번째 시즌을 맞는 페퍼저축은행은 이번 시즌 기존 구단들의 '승점자판기'를 벗어나 리그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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