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없다면, 주윤발도 없었다" 50년차 배우의 고백

조영준 2023. 10. 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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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th BIFF]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주윤발 기자회견

[조영준 기자]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배우 주윤발 기자회견
ⓒ 부산국제영화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홍콩 배우 주윤발 기자회견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렸다. 올해로 배우를 시작한 지 딱 50년이 된다는 그는 영화 <영웅본색> <와호장룡> 등을 통해 홍콩 누아르의 부흥을 이끈 장본인이다. 지난 7월 중국 매체 시나연예의 보도를 통해 건강 이상설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전날(4일) 열린 개막식에서 아내 진화련과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레드카펫을 걸으며 루머를 불식시켰던 것처럼 이날 역시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앤소니 펀 감독의 <원 모어 찬스>를 통해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돌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더불어 '주윤발의 영웅본색'이라는 특별기회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대표작들 역시 함께 만나볼 수 있다.

하나의 갑자(甲子)는 60년. 이제 한 갑자를 지나 7살을 지나고 있다는 배우 주윤발. 기자회견을 통해 나눈 그와의 대화를 간략히 전달한다.

- 50년이 되는 해에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시게 되었는데요. 어떤 기분이신가요?
"우선 부산은 매우 아릅답습니다. 사실 제가 한국에 도착해서 이틀 연속 달리기를 하러 나갔었는데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매우 반가워해줘서 덩달아 같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음식도 굉장히 잘 맞는데요. 조금 있다가 낙지를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정말 기대가 됩니다."

- 그동안 많은 작품들이 사랑을 받았는데요. 그중에서도 <영웅본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작품마다에 대한 애정도는 다 다릅니다. 하지만 <영웅본색> 같은 경우에는 그때 당시 제가 방송국을 떠나 처음 만난 작품이기에 조금 더 임팩트가 크게 다가왔지 않을까 싶고요. 영화가 짧다는 부분도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2시간 밖에 안 되는데 그 시간 동안 긴 이야기를 전부 하기가 어렵거든요. 이전에 드라마를 찍었을 때에는 100회 차까지도 찍었던 것에 비하면 영화의 힘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 어제 개막식(4일)에서 아시아영화인상 수상도 하시는 동안 배우님을 추억하는 영상이 스크린에 오랫동안 나왔는데요. 지난 50년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지 않으셨을까 싶은데요. 그 영상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중국에는 환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모든 게 다 환상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 진짜다. 라는 말이 있는데요.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앉아 있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후에 기자회견이 끝나고 제가 뒤쪽으로 퇴장을 하고 나면 여러분 앞에 있던 저는 이미 지나간 사실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지금만 생각합니다. '현재에 살아라'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고요. 매 순간 지금 앞에서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배우 주윤발 기자회견
ⓒ 부산국제영화제
- 배우님께서는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보내셨고, 지금 세계적으로 홍콩 영화의 뒤를 이어 한국 영화가 주목받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지금 한국 영화가 어떤 이유 때문에 사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배우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지역마다 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 업계의 인사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게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사실 한 지역과 업계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하고 있을 때 다른 지역이 그것을 이어서 더 먼 곳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한국 영화계가 지금처럼 이렇게 크게 부상할 수 있어서 저도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 영화가 홍콩의 영화를 이어 더 멀리 나아가는 일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셨는데요. 배우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 영화의 가장 큰 경쟁력은 저는 자유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작품의 특성상 소재가 굉장히 넓고 창작에 대한 자유도도 굉장히 넓기 때문에 저는 그 점에 대해 높이 삽니다. 가끔씩 보면 '이런 이야기까지 다룰 수 있다고?'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저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 어제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실 때(4일) 무대에서 홍콩의 방송국과 영화계에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렇게 특별히 기억하시고 언급하실 때는 큰 의미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홍콩 영화계와 드라마계가 배우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1973년에 배우 훈련반에 들어갔을 때, 당시의 수업은 모두 1년제였습니다. 그때 그 수업이 없었다, 방송국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저를 알릴 기회가 전혀 없었을 테고, 그렇게 보면 방송국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알려진 바에 의하면 8,100억 원이라는 기부금을 내셨다고 하는데요. 다른 어떤 스타들도 이 정도의 기부를 하는 일은 흔치 않은데 그 배경과 속내가 궁금합니다.
"사실 제가 기부한 게 아니라 제 아내가 기부한 것입니다. (웃음) 저는 기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웃음) 제가 힘들게 번 돈입니다. 저는 이제 용돈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정확히 얼마나 기부를 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근데 어차피 제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안 갖고 왔기 때문에 갈 때도 아무것도 안 갖고 가도 사실 상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루에 흰쌀밥 두 그릇이면 충분합니다. 근데 지금은 당뇨가 있어서 가끔씩 하루에 한 그릇만 먹기도 합니다."

- 자신에게 배우란 어떤 의미이며, 연기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실 홍콩에 있는 작은 바다 마을에서 태어나서 10살 때 도시로 나아갔거든요. 그리고 18살에 배우 훈련반에 들어가서 연기자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저한테 영화는 많은 지식을 가져다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부를 많이 못했기 때문에 영화를 찍으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고, 저한테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세상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작품을 찍는 동안에 제가 연기하는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짧은 두 시간에 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은 제게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영화가 없으면 주윤발이 없다고 생각하셔도 좋다는 뜻입니다."

주윤발 배우는 1시간 남짓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부드러운 농담을 던지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꼿꼿한 태도로 좌중을 압도했다. 대중이 자신을 슈퍼스타라 부르고 인식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우리들과 같은 하나의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의 인생관. 어쩌면 그의 그런 태도 때문에 오랜 시간 많은 팬들이 그를 사랑하고 또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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