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 신화' 이호준 "금메달 넘어 아시아 신기록 도전했고 해냈다" [AG 단독인터뷰①]
(엑스포츠뉴스 최원영 기자) 거센 물살에 자꾸 뒤로 밀리는 듯했다. 오랜 웅크림 끝에 다시 기지개를 켰다. 정상으로 헤엄쳤다.
한국 수영 경영 국가대표 이호준(22·대구광역시청)은 과거 박태환의 뒤를 이을 유망주로 손꼽혔다. 그러나 슬럼프에 발목 잡혔다. 올해 탈출에 성공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완벽한 전환점이 됐다.
수영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메달 22개를 수확했다. 한국 수영 경영 단일 아시안게임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2014년 인천 대회서 '노골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서 금메달 1개(김서영)에 그쳤던 것과 달리 금메달만 6개를 거머쥐었다. 은메달 6개, 동메달 10개를 보탰다.
이호준은 그 중 4개의 메달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수영 사상 단체전 첫 금메달이었던 남자 계영 800m에서 2번 영자로 나서 2위였던 순위를 1위로 끌어올리고 김우민(강원도청)에게 넘겨줬다. 한국 우승의 서곡을 이호준이 울린 셈이다. 남자 계영 400m와 남자 혼계영 400m에선 수영 강국 일본을 연이어 제치고 은메달을 따내는 데 기여했다. 개인전인 남자 200m 자유형에선 황선우(강원도청)와 판잔러(중국)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귀국한 이호준은 6일 엑스포츠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그게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대표팀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서로 의지하고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주려 했다. 결과로 이어진 듯하다"고 평했다.
이호준은 양재훈(강원도청), 김우민, 황선우와 남자 계영 800m 결승에 출전해 7분01초73을 기록, 한국 수영 사상 첫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챙겼다. 우승을 넘어 아시아 신기록까지 갈아치웠다. '수영복 도핑'으로 불렸던 전신 수영복 시대에 일본이 세운 7분02초26(2009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을 14년 만에 갈아치우며 깜짝 기록까지 냈다.
뒷이야기가 있었다. 아시아 신기록은 그냥 이뤄지지 않았다. 이호준은 "지난해부터 성적이 좋았고, 올해 후쿠오카 세계선수권에서 선수들이 100%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훈련하면 방심할 수 있어 선수들 모두 '우린 아직 부족하다. 꼭 아시아 신기록을 세워야 한다'는 각오로 훈련했다. 그만큼 열심히 했고 진심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호준 말대로 중국도 7분03초40으로 자국 신기록을 세우는 등 잘 달렸지만 '더 잘한' 한국에 패했다. 당시 중국 선수들은 한국에 지고는 침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남자 계영 400m 결승에선 지유찬(대구광역시청), 김지훈(대전광역시체육회), 황선우와 함께 3분12초96을 기록했다. 은메달을 따냈다. 이번 대회 전까지 한국 수영은 해당 종목서 동메달만 3개(2002년 부산·2006년 도하·2010년 광저우)를 챙겼으나 항저우에선 일본을 누르고 은빛 물살을 가르는 데 성공했다.
이호준은 "(황)선우는 원래 100m에 강했고 나도 올해 들어 100m 기록을 계속 단축 중이었다. (지)유찬이가 50m에서 좋은 모습(금메달)을 보여줘 우리도 잘했던 것 같다"며 "마지막 (김)지훈이 형도 자극을 받아 더 잘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린 덕분이다"고 미소를 머금었다.
생애 첫 아시안게임 개인 종목 메달도 품었다. 자유형 200m에서 1분45초56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종전 개인 최고 기록인 1분45초70을 넘어섰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서 1분48초10으로 7위에 머물렀던 아쉬움을 털어냈다.
금메달은 황선우(1분44초40), 은메달은 판잔러(1분45초28)가 차지했다. 이호준은 황선우와 나란히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 수영이 아시안게임 남자 경영 단일 종목에서 동시에 2명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것은 2002년 부산 대회 남자 자유형 1500m 조성모(은메달), 한규철(동메달) 이후 21년 만이었다.
이호준은 "경기 전에는 선우와 같이 입상하는 것만을 꿈꿨다.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솔직히 마지막 터치할 때까지 내가 2위인 줄 알았다. 150m까지 판잔러에 앞섰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쉬웠다"고 언급했다. 그는 "1분44초대를 노렸는데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계속 내 한계를 뛰어넘고 발전하는 듯해 만족스러웠다"고 강조했다.
자유형 100m에선 48초68로 4위를 기록했다. 메달권에 들지 못했으나 개인 최고 기록(종전 48초76)을 새로 썼다. 남자 혼계영 400m 예선에선 마지막 주자로 자유형을 책임졌다. 동료들과 3분38초96을 완성하며 전체 3위에 올랐다. 결승엔 출전하지 않고 황선우에게 자유형을 맡겼다. 한국은 결승에서 2위를 차지했고, 대회 규정에 따라 예선 참가자 이호준도 은메달을 바로 받았다. 예선 당시 이호준은 "우리 역할은 결승에 나설 선수들이 집중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호준은 "결승에 뛸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컨디션으로 나설 수 있게 돕는 게 당연하다"며 "개인전에선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 경쟁하지만, 단체전에선 더 잘하는 선수가 출전하는 게 맞다. 경쟁력을 높여야 메달을 딸 수 있기 때문"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항저우에서 총 세 차례 시상대에 올랐고 자랑스러운 태극기와 마주했다. 이호준은 "아시안게임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보는 게 처음이었다. 이게 나한테 일어난 일 맞나 싶었다"며 "몇 차례 시상대에 올라가 보니 조금 적응이 됐는지 그제야 주위가 보였다. 더 자주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미소 지었다.
가족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특히 수영 선수의 길을 뒤따르고 있는 여동생의 감정은 특별했다. 중학교 1학년, 14세 이서연 양이다. 이호준은 "메달 따는 걸 보고 동생이 무척 많이 울었다고 한다. 내가 고생한 걸 지켜봐서 그런 것 같다. 속상하더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동생도 나처럼 운동을 열심히 한다. 내년에 같이 파리올림픽에 가자고 하더라"며 "나 역시 동생을 많이 응원하고 있다. 특히 멘털 관련된 것들을 잘 가르쳐주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것이 많다. 이호준은 "무엇보다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 면에서 여유가 많이 생겼다. 긴장을 완화해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며 "하지만 아직 아쉬운 기록들이 많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고 밝혔다. 그는 "5년 동안 준비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성장한 것 같아 무척 뿌듯하다. 좋은 팀원들과 함께 잘할 수 있어 좋았다"고 전했다.
수영 '황금세대'의 일원이라는 자부심도 가슴에 새겼다. 이호준은 "대표팀 선배 (김)서영이 누나에게 '이렇게 역사적인 순간에 내가 있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행복했다"며 "최대한 그 순간을 만끽하려 했다. 선수들 모두 나이가 어리니 내년 파리올림픽과 다음 아시안게임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눈을 반짝였다.
사진=고아라 기자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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