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K2전차, 유럽 단결해 거부를" 독일 방산CEO 노골적 견제 [Focus 인사이드]

방종관 2023. 10. 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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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유럽 방산 업체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무기를 생산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보도했다. 유럽과 우크라이나간 의향서 체결이나 합작공장 설립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서방은 직접적인 무기지원을 줄이고, 우크라이나는 자체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보일 수 있다.

지난해 12월 6일(현지시간) K9 자주포 24문과 K2 전차 10대 등 1차 폴란드 수출 물량이 거디니어항에 도착했다. 화물선에서 크레인으로 내려지는 K9. 사진 폴란드 국방부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서유럽의 방산강국들이 동유럽 방산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특히, 동유럽에 방산수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한국은 이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각국의 최근 동향과 그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영국 : 방위산업 위상하락을 계기로 정책 변화를 시도하다.

세계 방산시장에서 영국의 점유율은 2013∼2017년 4.7%(6위), 2018∼2022년 3.2%(7위)이다. 순위가 1단계 하락했고, 점유율은 32% 감소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영국은 우주항공 등 첨단 분야에서 기술우위를 추구하되, 일반분야는 국내외에 개방해 경쟁 입찰ㆍ구매하는 정책을 추진했었다. 지난 6월 “영국의 대구경 포신(전차ㆍ자주포용) 제조능력이 사라졌다”는 BAE Systems 발표가 이러한 정책의 후유증을 보여주고 있다.

스웨덴의 차륜형 자주포 아처. 스웨덴이 개발했지만, 제조사는 영국계인 BAE Systems다. AFP=연합


최근, 이러한 정책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영국은 노후 AS-90 자주포 32문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으며, 2032년까지 최신 자주포 116문(약 1조 2000억원)을 확보하고자 했다. 한국은 K-9A2로 경쟁에 참여했다. 지난 3월, 영국은 계획을 변경해 자주포 전력의 공백을 메운다는 명분으로 스웨덴산 아처(Archer) 14문을 계약했다. 영국의 BAE Systems이 아처의 차체를 생산하기 때문에 자국 방위산업을 우선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또한, BAE Systems는 우크라이나에 사무소를 열고, 자국산 105㎜ 견인포(L-119)의 현지 생산에 합의했다. 스웨덴 소재 자회사에서 생산하는 CV-90 보병전투차도 생산ㆍ정비에 대한 의향서를 체결한 바 있다. 세계 7위, 항공ㆍ우주ㆍ전투함정ㆍ지휘통제통신 등 첨단 분야에 집중하던 글로벌 방산기업이 재래식 포병ㆍ장갑차 등에 관심을 갖고 현지 생산에 뛰어든 것은 의미심장하다.


독일 : 국방예산을 대폭 늘려 재무장과 방위사업 재건에 나서다.

독일의 방위산업도 위상이 하락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2013∼2017년 6.1%(5위), 2018∼2022년 4.2%(5위)였다. 순위 변동은 없지만, 점유율이 31% 감소한 것이다. 근본 원인은 국방예산의 감축이었으며, 엄격한 무기수출 승인절차로 가중됐다. GDP 대비 국방예산 비중은 1980년대 2.4%에서 2010년대 1.2%로 반감했고, 레오파르트(Leopard) 2 전차의 생산라인은 16분의1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노르웨이가 한국의 K2 전차 대신 선택한 독일의 레오파르트 2A7. AFP=연합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후 독일 정부는 특별방위기금(1000억 유로ㆍ약 140조원)을 편성하고 재무장과 방위산업 재건에 나서고 있다. 최근, 전차를 생산하는 KMW의 최고경영자(CEO) 랄프 케첼은 한국 방위산업의 유럽 진출에 대해 노골적인 경계심을 드러낸 바 있다. “유럽이 K-2 전차를 받아들이면, F-35 전투기 사례처럼 유럽 방위산업이 불리한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유럽이 단결하여 독일ㆍ프랑스가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전차’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레오파르트 2A7 전차의 노르웨이 진출도 독일 방위산업계의 이러한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지난 8월, 독일은 한국에 대한 무기수출 승인 절차를 ‘사전 승인’에서 ‘수출 후 보고’로 완화했다. 이를, 한국만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순진한 판단이다. 근본적인 목적은 전체적인 승인절차를 완화해 방위산업을 재건하는 것이며, 한국은 그 일부로 포함되었을 뿐이다.


프랑스 : 세계 방산시장의 변곡점을 활용하여 위상을 강화하다.

국제 방산시장에서 프랑스는 영국ㆍ독일과 반대로 점유율이 증가하고 있다. 2013∼2017년 7.1%(세계 3위), 2018∼2022년 11%(3위)이다. 순위 변동은 없지만, 점유율은 55%나 급증했다. 특히, 2021년부터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2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의 무기 수출이 경제 제재 등으로 주춤하는 사이, 프랑스가 그 공백을 파고들어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부 장관이 회담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AP=연합


프랑스는 정부가 주요 방산 업체의 주식을 일부 보유하고 있다. 에어버스(Airbus) 11%, 탈레스 그룹(Thales Group) 26%, 네이벌 그룹(Naval Group) 62.5%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는 영국ㆍ독일의 방위산업과 다른 특징이다. 덕분에, 냉전이후 무기체계의 수요가 감소하는 어려운 시기에도 일정 수준의 생산라인을 유지하며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이다.

2023년 9월, 프랑스 국방장관이 방산 업체 관계자 20여명을 대동하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기동장비 생산업체 아르쿠스(Arquus)는 우크라이나와 장갑차 생산 공장 설립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했다. 자주포를 생산하는 넥스터(Nexter)도 현지 합작공장 건설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도 한국의 폴란드 진출을 참고해 현지생산과 기술이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금부터, 2∼3년이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유럽의 기존 강국들은 한국 방위산업의 급격한 도약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를 대규모로 구매한 것은 영국ㆍ독일ㆍ프랑스 등이 변화한 방위산업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시점에 성사된 측면이 있다. 본격적인 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를 위한 전략수립에 참고할 만한 3가지 시사점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경상남도 창원시 현대로템 공장에서 폴란드로 수출할 K2 전차의 최종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중앙포토


첫째, 시간이 중요하다. 최근, 유럽 강국들이 방위산업 재건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에 대한 견제 움직임도 심화할 것이다. 시장 상황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한국에게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적시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이밍(Timing)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적 특성이다. 유럽 방산 강국들은 서유럽 시장에 장벽을 강화하고, 동유럽 시장을 되찾고자 할 것이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동유럽에 교두보를 확대해야만 이를 기반으로 서유럽이나 미국까지 진출이 가능하다. 최근, 서유럽 방산 강국들의 우크라이나 진출과 한국의 폴란드 2차 이행계약 및 루마니아 진출 노력 등도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셋째, 경쟁과 협력이다. 에어버스 D&S의 CEO 쉴 호른은 “한국항공우주(KAI)에 FA-50 경공격기의 공동 유럽 진출을 제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화 에어로스페이스는 영국 자주포 시장에 도전하면서 록히드마틴 UK를 포함한 다수의 현지 업체들과 ‘팀 선더(Team Thunder)’을 구성하기도 했다. 한국 방산이 첨단 기술, NATO(나토ㆍ북대서양조약기구) 결속력 등을 구비한 서유럽 방산 업체와 사안별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지금부터 2∼3년이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한 여객기는 안정고도를 향해 상승한다. 안정고도는 비행의 안전성과 효율성, 지속성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안정고도에 도달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단계이다. 따라서 그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유럽 방산강국의 최근 동향에 보다 진지한 자세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방종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ㆍ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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