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배낭에서 나온 소설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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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던가! 날씨가 좋아 책 읽기 좋은 계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독서 인구가 점점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책을 몇 권 쓴 작가이기는 해도 대단한 필력이 있는 사람은 아닌지라 대부분은 원고 읽기를 사양한다.
젊은 나이에 무작정 시작한 헌책방을 10년 넘도록 유지할 수 있는 것이나 일하는 틈틈이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었던 것 모두 돌아보면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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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던가! 날씨가 좋아 책 읽기 좋은 계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좋은 계절은 읽는 사람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자주 잊고 살지만, 책을 읽으려면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가을은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시기다. 그중에서도 아직 자기 책을 펴내지 못한 예비 작가에게는 하루하루가 금쪽같이 귀하다. 여러 잡지와 신문사에서 모집하는 신인상 원고의 마감이 바로 이즈음이기 때문이다.
독서 인구가 점점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는 것 같다. 헌책방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분위기를 자주 실감한다. 자신이 쓴 원고를 읽어 달라며 내게 가져오는 손님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책을 몇 권 쓴 작가이기는 해도 대단한 필력이 있는 사람은 아닌지라 대부분은 원고 읽기를 사양한다. 게다가 요즘은 응모 작품을 원고지 형태로 받는 곳이 거의 없음에도 손글씨로 쓴 원고를 가져오는 분이 많으니 내 처지에서도 곤란한 게 당연하다.
잠깐이라도 괜찮으니 읽어봐 달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원고를 살펴보면 내용이 허접한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 분명 공들여서 썼을 게 분명한데 대놓고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기도 뭣해서 대개는 “내용이 개성 있네요” 같은 말로 얼버무린다. 하지만 때때로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잘 쓴 원고를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런 분도 아직 작가가 되지 못했는데 나는 버젓이 책을 쓰고 있다니…’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한번은 등산용 배낭을 메고 들어온 손님이 오랫동안 쓴 소설이라며 내게 원고를 보여준 일이 있다. 그건 원고지도 아니고 스프링노트에 연필로 쓴 글이었는데, 촘촘한 글씨로 두꺼운 노트 6권을 빼곡하게 채운 상태였다. 모르긴 해도 200자 원고지로 수천장 분량은 돼 보였다. 앞부분을 대강 읽어보니 내용은 아마도 자전적 이야기인 듯한데, 문장을 쓰는 솜씨가 프로 작가 못지않게 훌륭해서 깜짝 놀랐다. 어째서 이런 분이 아직 작가가 아닌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 손님은 이미 여러 번 신문사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수상과는 인연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아직 운이 맞지 않은 게지요”라는 것이다.
손님 말이 옳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아 이런 삶을 누리는 게 아닐까. 젊은 나이에 무작정 시작한 헌책방을 10년 넘도록 유지할 수 있는 것이나 일하는 틈틈이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었던 것 모두 돌아보면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업을 할 만한 깜냥이 아니고 글쓰기 또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저 책이 좋아서 읽고 쓰기를 즐겼을 뿐이다. 운이 아니라면 이건 분명 신의 은총이리라.
그 일이 있은 뒤로 원고를 가져오는 분에게 나는 “꾸준히 쓰라”는 조언만 한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그게 운이든 실력이든 자기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야 찾아온 기회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다. 꾸준함은 모든 재능을 이기는 가장 선한 힘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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