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암과 싸우면서도 “난 주님 사랑에 빚진 자”

박효진 2023. 10. 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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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하는 선배 사모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교회 부목사 사모가 자궁암 진단을 받았는데, 교인들에게 알려질까 봐 아직은 쉬쉬하는 분위기야. 아직 아이들도 너무 어린데 너도 꼭 함께 중보해다오.”

며칠 전 어머니를 통해 중보기도를 요청받았다. 딸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비슷한 또래 사모의 암 진단이 어머니에게는 큰 슬픔으로 다가온 듯했다.

‘교인에게 알려질까 봐 쉬쉬’하는 그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교역자 가정에 아픈 사모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에 대해 불편함과 목회 사역에 짐이 된다는 부담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내 주위에도 암 투병 중인 선배 사모가 있다. 사모님은 2014년 갑상샘암에 이어 지난해에는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사모님은 오세아니아에 있는 파푸아뉴기니에서 경비행기로 2시간을 더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고산지대에서 남편, 소수민족과 함께 생활하며 890여개 부족의 문법을 해석해 성경 번역을 돕는 사역을 했다.

카페에서 만난 사모님은 “암에 걸렸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더 늦기 전에 발견돼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나님 왜 하필 저입니까”라는 원망과 분노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앞에 앉아있는 후배 사모를 의식한 체면치레의 말이 아니었다. 표정에 여유와 평안함이 넘쳤다.

이유를 묻자 사모님은 “파푸아뉴기니에서 사역해 보니 한국인으로 태어나 40여 년간 좋은 환경을 누리고 산 것만으로도 그분의 축복을 이미 다 받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모님의 사역 현장은 곧 생존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식수는 빗물을 받아 사용해야 했고, 지푸라기와 진흙으로 지어진 집에는 이와 벼룩이 가득했다고 했다. 옛날 재래식 화장실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화장실에서 휴지가 아닌 코코넛 열매 껍데기로 뒤처리를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을 듣고 나니 사모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때론 “사모님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암에 걸리셨나요”라고 묻는 일부 성도들의 질문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고난이 성도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눈물겹다. 사모님은 큰 수술을 앞두고 많이 망설였다. 아픈 사모가 된 것도 미안한데 성도들이 피땀으로 모은 헌금을 자신의 치료비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 했다. “내 목숨값은 성도들의 헌금보다 귀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사모님을 보며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를 향한 사랑의 빚진 마음이 느껴졌다.

다행히도 사모님은 가족과 주변 동역자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 앞에 “아프니까 이제 그만할게요”라며 핑계 댈 법도 한데, 사모님은 연말에 검진 결과를 기다리며 다시 파푸아뉴기니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살아온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이 너무 커서 그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한 가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치유와 생명 연장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바로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기도였다. ‘선교사로 헌신한 엄마에게 하나님은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시는가’라는 아들의 질문에 사모님은 이렇게 기도한다고 했다.

“하나님을 향한 제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저로 인해 사랑하는 아들이 시험 들지 않게 해주세요. 혹시나 제가 선교지에서 죽더라도 아들의 마음을 붙잡아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아들이 되게 해주세요.”

사모님의 고난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통이나 상처가 아닌 은혜의 증거가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묻어났다.

사모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쌀쌀한 바람이 완연한 가을을 느끼게 했다. 각자의 상황과 모습이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주의 사랑에 빚을 진 자로 이 땅을 살아간다. 축복의 말과 손길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계절이 되길 소망한다. 고난 중에 주를 향한 소망으로 인내하는 모든 백성에게 주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길 기도해 본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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