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덕질이 만들어낸 '숭고한' 뮤직비디오

김형욱 2023. 10. 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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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김형욱 기자]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포스터.?
ⓒ 시네마달
 
JTBC의 간판 음악 예능 <싱어게인: 무명가수전>은 재야의 실력자, 비운의 가수 등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시즌 1이 크게 날아올랐는데 63호 이무진, 33호 유미, 29호 정홍일 등이 유명세를 떨친 한편 30호 이승윤이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이무진과 함께 '찐 무명' 조의 반란이었다.

그렇다, 이승윤은 <싱어게인>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기 전에는 무명이었다. '듣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음악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와 함께 뮤직비디오 작업을 했던 이들이 있다. 권하정, 김아현, 그리고 구은하가 그들이다. 그들은 누구이고 왜 이승윤의 음악에 감명받아 어떻게 뮤직비디오까지 찍게 되었을까? 그 좌충우돌 작업기가 다큐멘터리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18년, 권하정은 마음이 아파 방구석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영화과를 졸업하고 슬럼프에 빠졌던 것이다. 그녀는 학교 후배 김아현의 단편영화 상영회로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선다. 그리고 우연찮게 가수 이승윤을 만나고 그의 음악에 깊이 위로받는다. 하정은 승윤과 함께 뭐든 작업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곧 실현시킨다.

듣보인간들이 모여 뭘 하려고?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에서 '듣보인간'은 작품의 두 감독이자 주연 김아현과 권하정,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구은하다. 나아가 소위 '뜨기 전'의 이승윤도 듣보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듣보인간들이 한데 모여 '나 아직 살아 있어'라며 생존신고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아현, 하정, 은하는 큰 변화 없이 비슷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승윤은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게 키포인트겠다.

그런가 하면 세 친구가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것도 키포인트다. 보통의 우리에게 더 와닿는다. 그들은 승윤과 우연찮게 만났고 하정의 바람으로 한데 뭉쳐 급하게 <무명성 지구인> 뮤비를 제작한다. 집 안에서 미니어처를 이용해 만들었고, 파일을 usb에 담아 손편지와 함께 승윤에게 전달한다.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처럼 긴 듯 짧은 시간이 흐른 후 승윤에게서 장문의 메일이 도착한다. 무조건 함께하고 싶다고 말이다.

세상을 품은 듯한 기쁨도 잠시, 그들은 곧 현실을 자각한다. 앨범 발매에 맞춰 뮤비를 찍기로 했는데, 영화는 찍어 봤지만 뮤비는 생전 처음이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편 승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앨범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세 친구가 구상한 시일보다 훨씬 빠르게 앨범을 내려한다. 승윤은 뮤비는 늦게 나와도 된다고 하지만 세 친구는 무조건 앨범 발매에 맞추겠다고 한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그들만의 작업.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타오르게 했을까

이 영화는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는데 매진 행렬 끝에 관객상을 타고 이후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당시 박광수 예심위원이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추려 보면 "이 영화의 위대함은 팬질이나 덕질이 인생에 가장 큰 재미를 선사하고 전 우주의 행복 총량 증가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임을 보여 준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들이 만들기로 결정한 뮤비의 노래는 이승윤의 <영웅 수집가>다. 영웅 수집도 소위 팬질이나 덕질에 해당하는 행위일 테니 결이 맞다. 세 친구는 따로 또 같이 전 재산을 털다시피 해서 밤샘을 밥 먹듯이 해 가며 그야말로 미친 듯이 작업에 매달린다. 생애 단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꽃을 타오르게 하려는 듯이 말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타오르게 했을까.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고 부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 자극을 받아 내적 동기에 의해 자발적으로 행동에 옮겼으니 쉽게 사그라들 리가 만무했다. 내 안 저 깊숙이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른 충만한 열정을 모두 소진시켜야만 했다. 하정은 영화 말미의 막간 인터뷰에서 오히려 '팬질'이나 '덕질'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그저 그 시절에 이승윤의 노래가 거대한 위로를 건넸고 보답으로 함께해야 했던 거라고. 솔직히 '이승윤'이라는 사람 자체가 중요하진 않았다고 말이다.

우연들이 모여 운명이 되었지만 달라진 건 없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는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향해 넘치는 관심과 사랑을 보내는 '덕질'에 더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도전'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운명' 또는 '우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정이 아현의 단편영화 영화제에 가지 않았다면? 이후 간이 콘서트에서 이승윤의 노래를 듣지 않았다면? 하정의 제안을 친구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못했다면? 이승윤이 뮤비 제작을 거절하거나 무시했다면? 등 연속되는 우연들이 모여 운명이 되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누구나의 인생이 우연의 연속이고 운명의 장난일 것이다. 뭔가를 행동에 옮기려 할 때 세상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 친구는 이승윤의 <영웅 수집가> 뮤비를 나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다. 작업 도중 갈수록 스케일이 커져, 이승윤이 이 정도로 스케일이 클 줄은 몰랐다며 놀랄 정도가 되었는데 결국 해낸 것이다. 엎어질 뻔한 위기도 찾아왔지만 이겨 냈다.

이승윤은 당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운명처럼 다가온 세 친구의 뮤비 제안과 완성까지도 최선을 다해 함께했다. 이후 <싱어게인> 우승으로 무명에서 완전히 벗어나 유명 가수로 훨훨 날았다. 그렇다면 세 친구는? 훨훨 날았을까? 그렇다고도 또 아니라고도 할 수 없을 테다. 영화인으로서 누구나 알 만한 이름을 완성시키지 못했지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인정받고 있으니까. 누구나의 인생이 그렇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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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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