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최면을 걸어, 난 억울하다" 핏빛 가족의 진실
[이준목 기자]
존속살해(尊屬殺害)는 본인 또는 법률상 배우자의 직계가족을 살해하는 행위를 의미하여, 인간이 저지르는 살인죄중에서도 죄질이 나쁜 패륜 범죄로 인식된다. 하지만 의외로 오늘날 현실에서도 해마다 몇십건의 존속살해사건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여기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의 혈육을 계획살해하고 인생을 망친 한 남자의 충격적인 실화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10월 5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아래 '꼬꼬무')에서는 '형사 수첩 속 가족사진 - 아들의 기묘한 여정' 편을 통하여 2013년 인천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조명했다.
2013년 8월 16일, 인천의 한 경찰 지구대에 한 50대 여성 김씨의 실종신고가 접수된다. 한 남성이 어머니가 사라졌다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실종된 어머니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고, 신고자는 바로 그녀의 20대 차남이었다.
어머니는 6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두 아들을 잘 키워내 장가까지 보냈다. 억척스러운 생활력으로 현재는 3층짜리 빌라의 건물주가 되어서 여유롭고 부유한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최근 지인들에게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아", "날 죽일 지도 몰라" 같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고 현관 비밀번호도 바꿨다는 증언이 나왔다. 신고자인 차남은 어머니의 행방을 걱정하는 자신과 달리, 30대 장남인 형의 태도가 수상했다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장남의 소유 차량이 어머니가 실종된 다음 날 강원도와 경북 일대를 장거리 주행한 사실을 포착했다. 집 근처에서 해당 차량이 발견되었으나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는 모두 제거되어 있었다. 경찰은 장남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어머니에 이어 그마저도 행방이 묘연했다. 경찰은 실종자의 집에서 수상한 흔적들이 발견되며 이 사건이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님을 직감했다.
일주일 뒤 마침내 용의자가 체포된다. 그런데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포된 용의자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실종 신고를 했던 차남이었다. 더구나 그가 체포된 이유는 바로 '존속 살해 및 살인 혐의'였다.
사실 경찰은 실종 신고 때부터 차남에게서 수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차남은 실종 신고를 하러오면서 형의 차량을 운전해서 왔고, 주거지가 인천에 있음에도 굳이 어머니 집에서 이틀 동안 머무르다가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차남이 어머니의 실종과 관련하여 형인 장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과는 달리, 정작 장남의 생활 반응은 이미 그보다 며칠전부터 끊겨져 있었다. 또한 장남의 차량에서 발견된 고속도로 통행권에는 차남의 지문이 검출되어 경찰은 일찌감치 차남이 범인이라 확신한 상태였다.
담당 형사는 "형의 범행인 것으로 몰아가야겠다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에 실종자들이 앞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신고하러 온 동생이 범인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지켜봤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용의자인 차남은 결백을 주장하며 묵비권을 행사했고, 증거 불충분으로 인하여 일단 풀려났다. 경찰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탐문 수사를 통해 차남이 그동안 어머니의 집에 허락없이 들어가 거액의 돈을 요구한 것이나, 사건 당일날 실종자의 집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실종된 어머니가 몹시 두려워하면서 "아들의 눈빛이 무섭다.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지목했던 대상도 장남이 아닌 차남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경찰은 장남의 차량이 찍힌 주유소 CCTV 화면에서, 차 트렁크에 무언가 실린 듯 차체가 내려앉은 모습을 포착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어머니와 장남을 살해하고 차 트렁크에 두 사람의 시신을 운반하여 유기했을 가능성에 주목하며 수사를 이어갔다.
한편으로 실종자들이 발견되지 못한 상황에서 경찰들은 현재 용의자의 유일한 가족이 된 아내에 주목했다. 처음엔 아내는 경찰이 죄없는 남편을 살인자로 몰았다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경찰은 아내를 다독여가며 조사하다가 수상한 점을 잇달아 발견했다.
집안은 쓰레기장처럼 너저분했고, 유일하게 정리되어있던 공간인 한쪽 책장에는 범죄 관련 서적들로 가득했다. 또한 프로파일러가 꿈이라는 아내는 사전에 준비된 것처럼 범행시간대로 추정되던 며칠간의 행적에 대한 진술을 일목요연하게 늘어놓기도 했다.
이에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하여 아내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이진숙 당시 인천경찰청 프로파일러는 아내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조금씩 진실에 접근해갔다. 프로파일러가 파악한 차남 부부의 특징은 두 사람 다 실종된 어머니와 형의 행방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배우자가 서로 범행과 관련이 없다고 감싸기에 바빴다. 이진숙 프로파일러는 차남부부간의 연결고리가 굉장히 끈끈하다는 것을 깨닫고, "피해자들을 찾기 위하여 이 부부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경찰은 투트랙으로 차남 부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집에서 부부가 같이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경찰에서 면담할 때는 절대 두 사람을 함께 부르지 않고 사소한 접촉까지 철저히 차단했다.
경찰 조사 결과, 부부가 범행도구로 예상되는 물품들을 마트에서 함께 대량구매했다는 것, 압수수색된 부부의 컴퓨터와 휴대폰, 메신저 등이 모두 포맷된 것 등 수상한 정황들을 잇달아 포착했다. 경찰은 디지털 포렌식을 통하여 부부의 메신저 대화를 복원한 결과, 놀랍게도 시체 처리와 유산 처분, 경찰의 수사에 대한 대응 등 범행을 함께 모의한 정황이 있는 내용들을 찾아냈다.
유력한 범행의 동기는 역시 '돈'이었다. 부부는 자동차와 가방과 구두 등을 구매하며 사치를 일삼고, 함께 카지노를 출입하면서 거액의 도박을 즐기며 수천만원의 빚을 진 신용불량자 상태였다. 결혼할 때 어머니가 장만해 준 신혼집도 결혼 1년 만에 처분해버렸다. 부부가 어머니의 돈이 필요했던 유력한 이유였다. 사실 어머니는 두 사람의 결혼을 처음부터 반대했고 며느리와 고부관계도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두 사람의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실종자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필요한 건 용의자인 차남 부부의 진술이었다. 그래서 경찰은 오랜 시간 치밀한 심리전을 펼쳐야 했다.
경찰은 오랜 조사 끝에 마침내 CCTV를 통하여 실종된 장남의 차량에 차남 부부가 함께 동승했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포착해냈다. 이는 남편과 동행했다는 아내의 알리바이가 거짓이었음을 의미했다. 이에 아내는 그 무렵 남편과 다퉜는데 갑자기 화해 여행을 가자고 해서 따라간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런데 아내의 진술은 여기서 또다른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다. 아내는 수면제를 먹고 자서 기억나는 게 없고, 잠깐 깼을 때는 남편이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는 걸 봤다고 주장했다. 이는 형의 차를 탄 적 없다고 실종일관 주장해 온 차남의 진술을 무너뜨리는 자승자박이었다.
차남의 아내는 이때부터 태도가 서서히 바뀌면서 남편의 행적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아내는 남편이 모든 범행을 벌였음을 암시하며 자신은 무관하다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발을 빼려고 했다. 그래도 최소한 차남의 범행만이라도 입증하기에는 충분했다.
당시 윤정기 형사과장은 "이건 빠져나갈수 없는 게 아내의 진술이 있으니까. 남편의 차를 타고 갔는데 남편이 트렁크에서 뭔가를 내려서 끌고 올라갔다. 이미 끝난 것"이라고 회상했다. 결국 결정적인 증거와 진술 덕에 차남은 다시 체포되었다. 부부가 완전히 분리되어 더 이상 말을 맞출 수가 없게 되면서 두 사람의 견고한 심리적 연대를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다.
이진숙 프로파일러는 차남의 죄가 인정되어 재산 상속권이 발탁되면, 모든 유산은 차남의 아내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논리로 아내를 설득했다. 이에 솔깃한 아내는 남편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고, 결국 시신이 유기된 강원도 정선의 한 야산에 유기했다는 사실까지 털어놨다.
아내가 그려준 약도에 따라 현장으로 향한 경찰은 마침내 실종된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불에 둘러싸인 시신은 얼굴이 참혹하게 망가졌고 이미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지만, 시신의 치아 모양과 실종된 어머니의 치아를 비교한 결과 두 개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낸 후 담당인 김 형사는 끝까지 뻔뻔하게 범행을 부인하던 차남을 찾아가 "너는 사형이다. 네가 나쁜 건 엄마와 형을 죽인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반성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는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침을 날렸다. 그제서야 기가 꺾인 차남은 결국 자신의 범행을 시인하고 형의 시신을 유기한 곳도 자백했다.
장남의 시신은 경북 울진에서 발견됐다. 부부가 메신저에서 모의한 내용 그대로 시신은 신원파악을 어렵게 하기 위하여 불에 태워져 훼손까지 되어 있었다. 차남은 명백한 살인사건의 용의자 신분으로 전환했고 아내 역시 공범인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됐다. 차남 역시 더 이상 아내를 감싸지 않고 범행을 함께 모의한 사실을 털어놨다.
하지만 경찰조사를 앞두고, 돌연 아내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운명을 달리했다. 아내는 유서에서 결백을 주장하며 자신은 사건과 관련이 없고, 나중에 알고 나서 남편을 설득하려 했다고 변명했다. 이에 이진숙 프로파일러는 아내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함께, 한편으로는 더 많은 진실을 알아낼 수 있었던 기회가 아내의 자살로 사라져버린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런데 사후 복원된 아내의 휴대폰에서는 의미심장한 내용의 메모 하나가 발견됐다. "이제부터 자기최면을 걸어. 난 억울하다 난 억울하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그녀는 무엇이 억울해야만 했고, 자기최면까지 걸어야했 던 것일까.
차남은 존속살해,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가졌다. 사망한 아내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진 1심에서 9명의 배심원 중 8명이 사형 의견을 냈고, 재판부도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차남은 항소했고 2심에서는 무기징역으로 감경되어 형이 최종확정이었다.
당시 판결문의 내용은 이렇다. "이 사건은 피고인과 피고인의 처가 자신들의 낭비와 도박으로 인하여 생활고를 겪게 되자 재산상속을 목적으로 공모하여 피고인의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하여 그들의 사체를 손괴하고 은닉한 것으로서 그 결과의 중대성은 물론이고 범행의 동기와 내용면에서도 너무나 참혹하고 반인륜적인 범행임은 분명하다. 원심이 피고인에 대하여 선고한 사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할 것이어서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범인에게 가족의 의미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목표했던 재산도 얻지 못했고, 어머니, 형, 아내까지 소중한 가족은 모두 비극적으로 운명을 달리했으며 오직 본인만 남았다. 그마저도 남은 인생은 평생 감옥에서 지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대한민국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존속 살해는 2017년 25건, 2018년 44건, 2019년 35건으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존속 폭행은 해마다 무려 1500~2000여 건까지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다. 범행 특수성상 초범이 많지만 그 잔혹함은 오히려 다른 살인사건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쌓인 감정' 때문에 원한에 의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늘 가까이있고 서로에 대하여 너무나 잘알고 있어서, 동시에 가장 큰 상처를 줄 수도,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는 가족의 비극적 양면성을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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