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3100명 인사 올스톱 되나…"판사들 반발 어마어마할 것" [이균용 부결]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6일 오후 국회에서 부결됐다.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지명한 정기승 후보자 이후 35년만이고, 대법원장 공석사태가 빚어진 건 1993년 김덕주 대법원장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이후 30년 만이다. 지난달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 만료 이후 25일부터 시작된 안철상 권한대행 체제는 상당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후보자는 임명동의안 부결 후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팀 사무실을 나서며 “빨리 사법부가 안정을 찾아야 국민들이 재판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결에 대한 입장과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엔 “제가 뭐라 말씀드릴 게 없다”고 답했다.
대법원 11인 체제 되나…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안철상 대법관과 민유숙 대법관의 임기도 내년 1월로 종료된다. 최악의 경우 대법원장 포함 14명이 정원인 대법원이 11인 체제를 맞게될 수도 있다. 대법관 후보자 지명부터 임명까지 아무리 짧아도 한 달이 소요되는 걸 고려하면 11월에는 두 사람의 후임자가 지명돼야 한다. 신임 대법원장이 11월 전에 임명돼야 대법관 연쇄 공석 사태를 피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역사상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는 5차례 있었다. 2대 조용순 대법원장과 3대 조진만 대법원장 사이에 있었던 배정현 권한대행 체제가 약 11개월로 가장 길었고 가장 최근인 1993년 김덕주 대법원장 사퇴 후 최재호 권한대행 체제는 14일로 마무리됐다.
물론 한 차례 검증해둔 후보군이 있고, 이 후보자의 낙마 가능성이 청문회 직후부터 거론돼 온 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미리 생각해둔 후보자를 일찍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다음주 후보자를 발표한다 해도 국회 일정이 변수다. 당장 10일부터 27일까지 국정감사 기간이다. 인사청문위원회를 꾸리는 것도, 인사청문회 일정을 잡는 것도 녹록치 않을 수 있다. 물론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국감 중간에 시간을 쪼개 인사청문회 일정을 잡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는 ‘10월 초 후보자 발표→10월 중 인사청문회→10월 말~11월 초 임명’이다. 이미 한 차례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점을 감안해 윤 대통령이 여·야가 모두 동의할만한 무난한 인물을 지명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일정이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두 번 부결은 야당에도 큰 부담일 것”이라면서도 “만약 윤 대통령이 다시 이념 성향을 중시해 후보자를 정한다면 야당이 다시 부결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 인사 행정, 전원합의체 올스톱
대법원장 공석 사태로 당장 빨간 불이 켜진 건 법관 인사다. 해마다 2월 20일 전후로 발령이 나는 승진‧전보 인사 작업을 통상 12월 초에 시작하는데, 인사 원칙 등을 대법원장이 승인해야 그 기준에 맞춰 인사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정상적이라면 11월 전에 인사 원칙이 정해져야 하고, 11월 내에 새 대법원장이 취임하지 못한다면 전국 법관 3100여명의 인사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수도권 한 고법판사는 “진짜로 인사를 못 하거나 밀리는 상황이 오면, 일단 고법판사 선발이나 부장 승진이 달린 기수의 법관들 반발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전국으로 옮겨 다니는 모든 법관들이 2월 인사에 맞춰서 전세 계약·자녀 전학 등 일정을 짜놓는데, 이 일정에 변수가 생기면 법원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권한대행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별다른 규정이 없지만 광폭 인사를 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법원 내 기획 업무 경험이 있는 한 법관은 “대법원장이 새로 임명되면 행정처 참모진 구성을 비롯해 다양한 인사요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는 최소화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대법원장 없이는 전원합의체 선고를 진행할 수 없다. 현재 전원합의체에서 논의 중인 사건은 총 5건으로, 이 중 1건이 1월 퇴임 예정인 민유숙 대법관 주심 사건이다. 고참 대법관이 주심을 맡았던 전원합의체 사건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떠나 새 주심이 사건을 넘겨받을 경우 그만큼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행정 업무를 떠안게 된 안철상 대법관의 소부 사건들도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안 대법관은 6일“(대법원장) 재임명이 되지 않으면 당장 재판을 못 하게 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판받을 권리에 공백이 있어선 안 되고, 어려운 사태가 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술렁이는 법조계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산신고 등을 이유로 낙마한 사례는 많지 않은데, 진짜 부적절한 인물이라 부결했다기보단 여·야가 법원을 정치공방의 볼모로 삼은 것”이라며 “법관들의 사기에도 영향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은 “야당이 윤 정부와 힘겨루기의 결과로 사법부를 혼란에 빠뜨린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두 번째 후보자도 낙마시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내다봤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농담처럼 말하던 상황이 현실이 되니 너무 황당하다”며 “다음 후보자는 좀 빨리 통과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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