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이 유야 감독이 '달'을 통해 사회의 암흑을 보는 법 [28th BIFF]
이시이 유야 감독이 9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행복한 사전'으로 2013년 일본 아카데미 8관왕을 석권하고,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이별까지 7일', '마치다군의 세계',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 등 섬세한 감수성을 통해 일본의 젊은 거장이라고 불린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신작 '달'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지석 섹션에 초청돼, 이 곳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됐다. '달'은 일본에서 일어난 요양원 장애인 살인 사건을 다룬 헨미 요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어려서부터 헨미 요 작가의 책을 읽어왔어요. 이 사회에 존재하는 기만과 거짓을 소설을 통해 언급해 온 작가죠. 그 중 사람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기만이 가장 크게 다가온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영화에서 요코(미야자와 리에 분)는 동일본대지진을 취재해서 쓴 소설로 명성을 얻은 소설가지만 지금은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감독 지망생이고, 가족의 생계는 요코가 책임지고 있다. 요양원에 취직한 요코는 그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는 노인과 장애인을 목격한다.
이 영화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폭로하고, 인간의 존엄에 대해 질문하는 동시에 문제의 본질을 덮어버리는 시스템도 함께 고발한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누워만 있는 장애인의 1인칭 시선으로 쓰인 원작을 대담하게 각색했다.
"원작 소설은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소설 자체가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라 영화란 틀 안에 가져오기 위해 여러 가지를 각색했습니다. 실제 사건으로 쓰인 소설이기 때문에 개인의 사고 방식이나 그런 것들이 사실은 우리 사회 안에 굉장히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란 걸 가장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했죠. 그리고 실제 사건, 내가 보고 느낀 걸 말하려 했습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살해 사건은 정상과 비정상, 우등과 열등,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의 해체와 도처에 존재하는 악의 평범성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영화 역시 적나라한 시선으로 집요하게 따라간다.
"당시 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특이했고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들이 이 사건에 대해 고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던 거죠."
미야자와 리에, 오다기리 조, 이소무라 하야토, 니카이도 후미 등 일본의 톱 배우들이 출연했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영화를 제작할 당시, 일본의 어두운 사회를 들춰내는 영화를 목표로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주변의 만류와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 준 배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다는 것 자체가 일본에서는 굉장히 리스크가 큰 제작이었는데요. 실제 사건이 아무래도 금기시 되는 부분이 있어요. 장애인 시설이 한국에도 비슷한 장애인 시설이 있잖아요. 일본에는 시설을 만들어 장애인을 수용하고 있는데, 어두운 면이 드러나면 사회와 접점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란 전제가 깔려있는 거예요. 그 사건은 우리가 장애인을 도심에서 혹은 우리 생활 가까이서 볼 수 없고, 그들을 위한 복지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틈새를 노린 사건이에요. 이 영화는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것들, 곤란한 것들을 정확하게 노출시켜버린 거죠. 그래서 배우들이 굳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이 영화에 출연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표면적으로 리스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도전하려는 배우, 도전 정신이 용감한 배우가 필요했어요. 아마 일본에서는 그런 배우가 많지 않은데 이번 배우들은 다 그런 면들이 있었죠."
범인 사토(이소무라 하야토 분)는 성실한 직원이다. 청각장애인 여자친구가 있고 누구보다 요양원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그가 드러내는 섬뜩한 악은 영화의 틈새마다 흘러나온다. 특히 사토가 장애인들 앞에서 악취가 나는 땅을 파게 만든 강아지가 할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를 해맑게 이야기 한다.
"구연 동화는 실제 일본 옛날 이야기입니다. 나쁜 할아버지가 하얀색 강아지한테 금괴를 찾으라고 명령했더니 더러운 게 나오고, 반대로 착한 할아버지가 땅을 팠더니 금괴가 나왔다는 내용이죠. 더러운 것은 나쁜 것이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구연동화에서도 쓰이고 있어요. 그런 현실 자체가 이런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토라는 남자가 본질을 알든 모르든 놀랍게도 구연 동화로 돈이 정의라는 식으로 들려주잖아요."
요코와 사토는 자신의 어두운 면과도 마주한다. 이는 이시이 유야 감독이 캐릭터와 관객들의 몰입감을 일체 시키려는 연출이었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라는 니체의 말을 생각했어요. 눈 앞에 어둠을 바라보면 빨려들어갈 것 같잖아요. 실제로 그런 상황을 영화에서 많이 사용하려고 했어요. 타인의 이야기만이 아닌, 내가 겪는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도록이요."
이시이 유야 감독은 요양원 안에서 살해 당한 장애인의 비극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비단 장애인 시설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죠. 사회에서도 똑같이 힘이 없는 사람을 고백할 수 없어요. 일정한 조건만 갖춰지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죠."
이시이 유야 감독은 최근 일본의 한 시상식에서 "신인 감독들한테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걸 만들자는 마인드로 그냥 계속 밀고 가면 된다"라고 조언한 바 있다. 이시이 유야 감독이 요즘 관심을 갖는 건 사회 문제다.
"아무래도 나이도 좀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 세상을 바라봤던 관점과 지금은 많이 다르죠. 그리고 다른게 굉장히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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