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가사 노동자 도입, 세상 쓸모없는 정책
[배진경 ]
▲ 지난 7월 서울시가 주최한 외국인 가사(육아) 인력 도입 전문가 토론회 |
ⓒ 서울특별시 |
지난 7월 19일 서울시가 주최한 '외국인 가사(육아)인력 도입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보도자료는 토론회 전날 기자에게 배포되었고, 웹자보도 전날 오후가 되어서야 돌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지역 출장 일정을 미루고 부랴부랴 달려가야 했다.
9시 40분에 열리는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조금 이르게 9시에 시청에 도착하자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서울시청 공무원 대상의 안내였다. 토론회에 참석하는 이들에게 이를 교육시간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아직 방명록이 준비되지 않은 토론회장에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담당자라는 이가 다가와 공개토론회가 아닌데 어디서 오셨냐고 질문하였다. 이 토론회는 서울시청 공무원 교육용인 걸까?
토론회가 시작되자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이주가사노동자 도입이 몹시 시급하며 필요한 일이라며 입을 모았다. 토론회는 진행될수록 이해할 수 없게 이어졌다. 청중의 질문은 시간을 핑계로 받지 않았고, 준비된 발제와 토론자들의 일방적인 발표만으로 끝나버렸다.
고용노동부 역시 지난 7월 26일, 기습적으로 31일 공청회 개최를 공지하였다. 하반기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안을 발표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라 하였다. 덕분에 이날 여름휴가였던 나는 사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공청회 의견 개진을 위해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만 했다. 고용노동부는 5월 개최하였던 토론회보다 훨씬 구체화된 안을 들고 나타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애초에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조정훈 의원이 주장했던 최저임금 미만으로 이주 가사 노동자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은 아니었다. 당연히 그래야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 폐지협약(C105), 동일보수협약(C100), 고용과 직업상의 차별협약(C111)을 인지하고 있었다. 또 1990년부터 발효된 국제연합(UN)의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국내 가사노동 시장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장기적인 국가 돌봄의 큰 비전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도 없었다. 그저 최저임금에 맞추어 필리핀 이주 가사 노동자 100명을 하반기 중에 도입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사업주 변경이 불가능하여 강제노동이 뻔한 E-9비자로 진행하겠다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필리핀 이주 가사 노동자에게 가사와 육아, 영어 교육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이 공청회 토론자들은 사전에 고용노동부의 발표 내용을 전달받은 바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고용노동부는 8월부터 수요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3분기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E-9비자에 대한 가사 돌봄 업종 확대안을 제출하겠다는 계획이 먼저다. 결론을 정해 놓고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공청회 참석자들은 정책의 미비점과 의문점에 대해 무수히 많은 질문을 쏟아냈지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참으로 고압적이고 강압적인 졸속 정책이다. 누가 원하는지도 모른다. 기존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이나 시장과 사회에 미칠 파급력에 대한 면밀한 검토없는 정책을 선불로 받은 것마냥 허둥지둥 서두르고 있다.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부모들은 노동시간 단축이나 기존의 일·생활균형 정책의 현장 정착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했다. 육아는 비용이 아니라 신뢰의 영역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믿을 수 있는 양육자가 필요한 것이지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는 저비용의 가사돌봄노동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했다.
대체 이주 가사 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이 누구에게 왜 필요한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이미 1억 5천만 원을 추경으로 편성하였고, 서울시 조직도를 살펴보면 이미 담당자까지 배치되어 있다.
본 정책은 무수히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주' 가사노동자이기에 싼값으로 부릴 수 있다는 프레임은 인종, 국적 차별을 야기한다. 차별을 묵인하는 순간 그 다음 차별의 피해자는 바로 내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E-9 비자는 비전문취업비자로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농축산업, 어업 등에서 일하는 비자이다. 사업장 변경에 제한이 있는 비자로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정부는 개별 가정이 아닌 제공기관이 사업주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제공기관도 사업주이긴 마찬가지이다. 중간 착취가 심각할 수도 있고 일하는 가정의 변경 요구가 묵살당할 수도 있다. 결국 사업장 변경의 제한은 사업주의 부당한 요구에 대한 저항권을 무력화시킬 것이고 이는 명백한 인권침해를 야기할 것이다.
돌봄의 공공성 해체와 돌봄 양극화도 우려스러운 문제 중 하나다. 이주 가사 노동자 도입은 돌봄을 개별 가정에서 알아서 각자 해결하라는 정책이다. 이는 한국이 꾸준히 만들어온 돌봄의 공공성을 해체할 우려가 높다.
이주 가사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수당 외에 사회보험료, 중개수수료(기업이윤) 등을 고려할 때 초저임금의 착취가 아니고는 결국 지불 능력 있는 가정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돌봄의 양극화와 민영화, 나아가 사회적 갈등을 가속화시킬 것이 뻔하다.
정부는 최저임금에 맞추어진 이주 가사 노동자가 가사와 양육, 영어교육까지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허나 가사·돌봄노동은 전문성의 영역으로 발전되어 왔다. 특히 가사와 육아 서비스는 안전과 전문성의 요구로 인해 분업화하여 편재되어 있다. 이러한 돌봄노동을 최저 임금만 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헛된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이는 결국 전문화된 가사돌봄노동을 위협할 것이다. 낮은 임금이어도 괜찮다는 프레임은 가사돌봄 노동의 저평가에 국가가 앞장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정부는 가사노동자들이 감소하고 고령화되고 있다고 주장하나 이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해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확한 원인과 해법 없이 이주 가사 노동자를 확산하여 해결하겠다는 의지이다.
가사·돌봄노동의 노동 환경이 열악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이라는 현실에 대한 개선 방안은 도외시하고 있다. 이는 또한 노동시간 단축, 일·생활균형 제도 등의 근본적 해결책을 외면한 정책이다.
아이는 가장 친밀한 관계의 양육자가 직접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선행되고 일·생활균형을 위한 각종 제도가 현장에 잘 정착되어야 한다. 허나 이러한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 개별 가정에서 각자의 수준대로 돌봄을 외주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상 쓸모없는 백해무익한 정책이 고장 난 기관차처럼 미친 듯이 폭주하고 있다. 선로를 이탈해 큰 사고를 내기 전에 멈추어야만 한다. 이주 가사 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은 아무런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이주노동자 착취 계획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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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10월호 '女性여성女聲'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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