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미국 잠수함도 놀래킨 딱총새우 굉음…소리에 숨겨진 진화

채인택 2023. 10. 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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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환경문제라고 하면 흔히 지구온난화 등을 부르는 대기 변화, 생명과 생태계를 해치는 화학물질 오염, 그리고 종 다양성을 위협하는 멸종 등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미국 테네시주 스와니의 사우스대 생물학 교수인 지은이는 여기에 더해 동물의 소리가 전 세계에서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생물 서식처 파괴와 인공소음의 확대 때문이다.

코스타리카 산호세 외곽 보호림의 개구리. [AP=연합뉴스]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소리는 동물들을 서로 연결해줄 뿐 아니라 다채로운 강약‧장단,‧높낮이‧음색으로 미묘한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혁신적인 소통수단이 됐다. 이러한 소리는 지난 4억 년의 진화 과정에서 실로 다양하고도 경이롭게 발전했다.

따뜻한 바다에 사는 손가락 반절 크기의 딱총새우를 보자. 집게발로 물을 앞으로 뿜으면 제트류가 지나간 자리에 기포가 생겼다가 ‘빵’하고 터지는 소리가 난다. 이 딱총소리를 이용해 소형 갑각류‧벌레‧어류를 잡아먹고 영역을 나타내며 다른 개체와 힘을 겨룬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 앞바다에 잠입한 미국 잠수함은 새우 떼의 딱총 소리 때문에 수중음파탐지기가 교란돼 낭패를 겪기도 했다.

소리를 내는 방법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척추동물의 경우 육상동물은 후두(가운데에 성대가 있다), 새는 가슴의 울음통, 어류는 부레 등을 이용한다.

올 여름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숲에 있는 고목나무에 둥지를 튼 호반새가 새끼들에게 먹잇감을 물어다주는 모습. [뉴스1]


소리를 듣는 방법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지은이가 ‘듣는다’라는 말은 동물이 소리와 진동을 감각하는 숱한 방식을 지나치게 두루뭉수리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예로 딱총새우는 앞다리 관절이나 집게발의 뱡향 감지 털을 통해 좁은 주파수의 소리와 진동을 인식한다. 어류인 대서양조기는 몸통 옆줄에 있는 섬모로 저주파음을 감지한다.

나방의 일종인 박각시는 고막이 없지만 촉수(더듬이)로 청각‧촉각 등을 종합적으로 느낀다. 자신을 노리는 박쥐의 접근을 알아차리기에 충분하다. 새는 체온이 높아서 청각 주의력이 예민하다. 하지만 달팽이관이 뭉툭하고 밋밋해서 소리의 높낮이 지각 범위는 인간보다 좁다. 지은이는 진화와 창조가 이처럼 수천 가지의 감각을 생명의 세계에 만들어놨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경우 귀의 가장 안쪽에 있는 속귀(내이)에 청각을 담당하는 달팽이관과 신체 움직임과 평형감각을 맡는 전정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에게 음악과 춤, 그리고 말과 몸짓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해부학적인 이유다. 지은이는 이를 진화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책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의 저자인 미국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사진 에이도스]


문제는 인간의 청각 진화 속도가 인류 문명의 변화 속도와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인간의 귀와 뇌가 소리를 감각하고 인지하는 수준이 산업 시대 이전의 고요한 소리에 맞춰져 있다고 소개한다. 조용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시끄러우면 불쾌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주목할 점은 인간에겐 다른 사람이나 일부 동물의 소리는 잘 듣지만 곤충이나 파도, 산업기기의 소음 등은 실제 크기보다 축소해서 느끼는, ‘지각 편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생존에 유리하도록 먹잇감과 포식자의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바람이 식물을 스치는 소리 등 중간주파수를 잘 알아듣도록 귀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를 “인간의 뇌가 자신에게 유익한 ‘감각 질서’를 형성하려고 실제 감각을 왜곡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동물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 범위가 종별로 서로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달팽이관은 기껏해야 20~2만 헤르츠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고래와 코끼리는 최저 14헤르츠까지, 비둘기는 최저 0.5헤르츠까지 각각 청취가 가능하다. 쇠돌고래는 최고 14만 헤르츠, 일부 박쥐는 최고 20만 헤르츠까지 각각 감지한다. 생쥐‧쥐는 인간이 알아채지 못하는 최고 9만 헤르츠의 소리로 재잘거린다. 인간이 제아무리 조용히 다가가도 비둘기가 미리 달아나고, 쥐가 근처에 숨어 살아도 인간이 알아차리기 힘든 이유가 아닐까.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지역의 코끼리. [신화=연합뉴스]


이처럼 수억 년 동안 진화를 거쳐 형성되고 자리 잡은 다양한 동물의 감각은 최근 들어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진동에 방해를 받고 있다. 지은이가 수중청음기를 수면 아래에 내리고 헤드폰으로 물고기와 새우의 소리를 듣고 있다가 겪은 경험이 이를 잘 요약한다.

갑자기 ‘부르릉’하며 선박 모터의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리고 스크루가 돌아가는 굉음과 물을 밀어내는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그러자 새우는 비명을 지르고, 대서양조기는 맥박 뛰듯 퍼덕거리며, 굴두꺼비고기는 소리내기를 중지한다. 인간의 소음에 생명체들이 집단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이다.

지은이는 인간이 내는 소음이 다른 생명체의 소리를 억누르면 지구가 생기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야생의 소리가 다양하게 유지되지 못한다면 생태계는 조화를 상실하고 인간 세상은 창조력과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진화의 결과인 소리의 다양성이 위협받는 것은 곧 생명과 생태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원제 Sounds Wild and Broken.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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