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겐 기회"…北, 우크라전 판도 바꿀 '큰손' 급부상

강태화 2023. 10. 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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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의 자중지란으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동력이 급격하게 약화된 사이 북한이 전쟁의 판도를 바꿀 ‘큰손’으로 부상할 조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탄약 부족에 직면한 상태에서 북한산 무기가 러시아로 본격적으로 공급되는 정황이 확인되면서다.

지난달 13일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될 무기를 지원하고, 러시아로부터 첨단 기술 등을 이전 받는 내용으로 추정되는 논의를 진행했다. AP=연합뉴스

“北 대포, 러시아 이전 개시”

미국 CBS는 5일(현지시간) 익명의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북한이 러시아에 대포를 이전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CBS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군사협력을 논의했고, 그 협력이 이번주부터 형태를 갖춰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주요 군수공장들을 시찰하고 ″전쟁준비의 질적수준은 군수산업발전에 달려있다″며 무기 생산능력의 제고를 독려했다. 연합뉴스

매체는 다만 북한의 무기 이전이 새로운 장기 공급의 차원인지, 북한이 무기 공급의 대가로 무엇을 받았는지 등은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미 국방부는 “과거 입장 외에 추가할 내용이 없다”며 추가 언급을 자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까지 북ㆍ러의 무기 거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위반”으로 규정하고 “분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북한의 무기 공급은 미국의 경고를 무시한 우크라이나 침공 지원에 해당돼 파장이 예상된다.


“北, 현시점을 기회로 인식”

특히 탄약 부족 사태에 직면한 전쟁의 분수령에 무기가 공급된다는 점에서 북한산 무기는 향후 전쟁 양상에 주요한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동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러시아가 빠르게 탄약고를 채우게 됐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6일 방북한 러시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군사대표단과 함께 '무장장비전시회장'을 찾았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김정은이 '화성17형', '화성-18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앞에서 쇼이구 장관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뉴스1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6일 통화에서 “북한산 무기는 러시아 무기체계와 그대로 호환되기 때문에 대규모 물량전 양상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대대적인 공세로 전환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북한이 서방의 물량 투입 동력이 떨어진 시점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기회로 인식하고 무기 지원을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최소 100만톤 이상의 탄약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대대적 물량 지원에 대응하기 위해선 미국 등 서방의 맞대응이 필요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소수 강경파의 ‘협상 도구’ 된 우크라 지원

지난해 4월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경찰이 부차에서 살해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시신을 안치소로 이송하기 전 신원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여명에 불과한 미국 공화당 내 소수 강경파 ‘프리덤 코커스’의 주도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셧다운(정부 폐쇄)을 막기 위한 45일짜리 임시예산안에서도 빠졌다. 프리덤 코커스는 이어 우크라이나 지원을 이어온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자당 출신의 하위의장마저 물러나게 하는 등 ‘실력’을 입증했다.

미국 정가에선 이들이 셧다운을 볼모로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사실상의 정치적 협상의 도구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와 관련 “우크라이나 지원이 우파에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며 “최근 하원에서 펼쳐진 드라마를 보면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겠다는 공화당의 의지가 급감했다는 점이 부각된다”고 지적했다.

차기 하원의장 선거 역시 우크라이나 지원에 찬성하는 스티브 스칼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와 강한 반대를 표명해온 짐 조던 법사위원장이 경쟁하게 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은 사실상 공화당 내 ‘파워 게임’에 따라 결정되는 구도가 됐다. 이런 와중에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올라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조던 위원장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 AP=연합뉴스


이에 대해 영국의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하원이 결국 우크라이나에 돈을 내주긴 하겠지만, 거대 예산안이 편성되는 올해 말이나 돼야 할 것”이라며 “불필요한 지체 때문에 미국의 신용이 손상되고 푸틴은 고무되며 우크라이나인들은 죽어 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EU “유럽은 미국을 대체할 수 없다”

미국의 추가 지원이 차질을 빚을 위기에서 자국을 공격할 북한산 무기가 대규모로 러시아로 투입되는 상황에 처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은 강력한 민주주의를 가진 강한 사람들”이라며 미국의 지원을 재차 호소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우크라이나 대통령 관저 계단을 내려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그는 5일(현지시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제3차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서 “서방의 지원이 끊길 경우 러시아가 5년 내 군사력을 재건해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며 러시아가 유럽의 다른 국가로 전쟁을 확대할 가능성을 경고하며 반복해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같은 주장에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지원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유럽이 미국의 공백을 메울 수 있겠느냐. 확실히 유럽은 미국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지원 없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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