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의 응원가를 부르다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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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비슷한 일만 반복되던 일상에서 '어느 날' 특별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생각을 하다 보니 롯데 자이언츠의 삼진송인 '어느 날'이 아주 상황에 적절한 응원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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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
야구장에 가면 응원가와 응원 동작을 흥겹게 따라 하는 재미가 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응원단이 하는 대로 따라 했는데, 조금 지나니 어떤 상황에 어떤 응원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올해 첫 직관을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응원가가 있었는데 중간에 '유후, 유후' 하는 추임새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직관 갔을 때 그 응원가가 나오길 기다렸는데 나오지 않았다. 실망스런 마음에 집에 오며 남편에게 물었다.
"그, 유후, 유후, 하는 응원가 있잖아. 그거 언제 나오는 거야? 나 오늘 그 노래하려고 기다렸는데 안 나왔어."
남편은 "그랬나?" 하더니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세 번째 직관에서야 그 응원가가 언제 나오는지 알게 되었는데 그 응원가는 롯데 전준우 선수의 등장곡이었다. 매 선수마다 응원가 외에 등장곡도 따로 있다는 사실을 세 번째 직관에 가서야 알았다(무척 둔한 편이다).
▲ 응원은 우리가 최고지! 열심히 응원하는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과 롯데 팬들. |
ⓒ 김지은 |
선수와 상관없이 상황에 따라 나오는 응원가도 있다. 이기고 있을 때나 지다가 기세가 올라왔을 때는 '어기야 디어차~' 하고 시작하는 뱃노래를 부른다. 이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공격일 때 주로 응원하지만 수비일 때 하는 응원도 있다.
'빰빰빰빠라빠라빠바밤' 하는 흥겨운 전주가 나오다가 '어느 날!'이라고 외친다. 그러고는 끝. 아니 '어느 날!'만 외치고 응원가가 끝나다니. 부르면서 가장 황당했던 응원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노래는 상대 타자를 삼진 아웃시켰을 때 나오는 삼진송이었다.
'어느 날'을 언제 부르는지 알게 되자 갑자기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인물 동화 원고를 쓸 때였다. 초고를 써서 보냈는데 4~7세 대상 연령에 맞게 쉽게 수정해달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기존 정보를 많이 덜어내다 보니 그제야 중복된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 말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24쪽으로 축약해야 하는 인물 그림책에서 '그러던 어느 날'처럼 매력적인 첫 마디가 어디 있을까. 매일 비슷한 일만 반복되던 일상에서 '어느 날' 특별한 사건이 발생한다.
조앤 롤링은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보내고 거절 편지만 받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의 원고가 마음에 든다는 편지를 받는다. 마틴 루터 킹은 학교에서 책을 많이 읽고 말 잘하는 아이로 유명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웅변 대회에 나가라는 제안을 받는다.
나에게도 '그러던 어느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러던 어느 날'은 갑자기 오는 게 아니다. 무언가가 쌓이고 쌓이고 쌓인 어느 날, 와르르 쏟아지는 것이다. 우선은 쌓여야 한다.
이 생각을 하다 보니 롯데 자이언츠의 삼진송인 '어느 날'이 아주 상황에 적절한 응원가처럼 느껴졌다. 투수가 타자를 삼진 아웃 시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얼마나 많은 연습이 쌓였을까. 연습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투수는 상대편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이 말을 수학 문제집을 풀며 아무리 해도 모르겠다는 아이에게 말해주면 도움이 될까. 외워도 외워도 까먹는다는 영어 단어를 외우며 짜증 내는 아이에게 말하면 도움이 될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이의 '어느 날'을 위해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먼저 나의 '어느 날'을 위해 노력해야지, 하고 다짐한다. 아이는 나를 보며 자란다. 사실 나도 잘 안 돼서 매일 새롭게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그 어느 날이 너무 먼 것 같아 자꾸 야구를 보며 성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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