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추가 긴축시계 늦춰지나…은행 채권손실 540조 '후폭풍'

권해영 2023. 10. 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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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공포 확산
SF 연은 총재 "추가 금리인상 필요성 줄어"
국채 가격 급락으로 기관 미실현손실 눈덩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미 국채금리 급등으로 이어진 가운데 Fed의 추가 긴축 시계가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가계·기업의 차입비용이 치솟아 이미 추가 긴축 효과가 나타난 데다, 연착륙 기대감도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채권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국채 가격 급락으로 은행·보험사·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미실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금융시장 붕괴를 초래할 제 2의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제기된다. 고금리 후폭풍의 폭탄이 어디서부터 터질지 여부를 지켜보는 시장의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가계·기업 차입비용 급등…SF 연은 총재 "추가 조치 필요성 줄어"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5일(현지시간) 뉴욕 이코노미 클럽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지난 90일 동안 금융상황은 상당히 긴축됐으며 이같은 빡빡한 상황이 이어지면 추가 금리인상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줄어들게 된다"고 밝혔다.

최근 국채 금리 급등으로 추가 긴축 효과가 나타나면서 Fed가 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게 데일리 총재의 견해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번주 4.8%를 돌파해 2007년 8월 이후 16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데일리 총재는 특히 9월 이후 채권 금리가 0.36%포인트 올랐으며 이는 Fed가 한 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금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해도 인플레이션·기대 인플레이션 하락으로 정책 효과는 점점 (금융) 제한적인 방향으로 커질 것"이라며 "그래서 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적극적인 정책 조치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시장 냉각이 지속되고 인플레이션이 우리의 목표치로 되돌아가면 금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며 "정책 효과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데일리 총재는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발언을 해왔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그레이터 피닉스 리더십 행사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우리의 임무를 진정으로 완수하기 위해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데일리 총재는 올해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투표권이 없지만 내년 투표권을 가진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

최근 미 국채 금리 상승은 Fed의 강력한 긴축에도 미 경제가 호조를 지속하면서 시장에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확산된 여파다. 고용시장은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견조하고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전년 동월 대비 3.7%로 하락했으나 Fed 목표치인 2% 보다는 높다. 하지만 최근 시장 금리 급등으로 기업의 조달금리, 가계의 대출금리가 뛰면서 연착륙 기대감은 경기 침체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 평균은 5일 연 7.49%로 지난주 7.31%보다 상승하며 2000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가 발표하는 금융상황지수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조달비용은 최근 1년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바클레이스의 마크 지아노니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채권 수익률이 우리가 봐 온 빠른 속도로 계속 오른다면 무언가 부숴지고 기능장애가 발생할 가능성도 함께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의 마이크 커드질 선임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채권 금리 상승은 Fed가 더 적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짚었다.

美 은행 장부상 손실 4000억 달러…제2 SVB 사태 오나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Fed의 추가 긴축 가능성은 낮추게 됐지만, 시장 금리 급등의 여파는 계속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고금리에 취약한 곳으로는 금융권이 꼽힌다. 최근 채권 가격 하락(=채권 금리 급등)으로 대규모 미 국채와 회사채를 보유한 은행, 보험사,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다. 이는 지난 3월 발생한 SVB 사태를 다시 촉발할 수 있다. 당시 SVB는 예금 반환을 위해 매입 당시보다 가격이 하락한 미 국채를 손절매하면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에 맞닥뜨렸다. 이는 미국 내 다른 중소형 은행 및 유럽 크레디스위스(CS) 파산 위기 등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전이됐다.

채권시장정보업체 트렙에 따르면 미국 은행의 채권 투자 관련 장부상 손실은 4000억달러(약 539조원)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 3월 SVB 파산 사태 당시 평가손실보다 10% 늘어난 수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당장 채권을 매각할 필요가 없는 은행들은 장부상 손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시장 상황이 악화할 경우 자금사정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형 은행은 SVB처럼 채권 손절매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우려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지역 은행인 웨스턴 얼라이언스 뱅코프의 주가는 8월 말 채권 수익률이 급등한 이후 20% 급락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감독을 받는 유럽 지역 104개 은행도 2월 채권 포트폴리오 기반으로 추산한 결과 730억유로(약 104조원)의 미실현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ECB가 은행들을 상대로 스트레스 테스트한 결과 중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채권 장부상 손실은 추가로 1550억유로(약 220조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지난 7월 발표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장부상 손실 규모는 더 커졌을 것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 외에도 채권 투자 큰 손인 보험사, 연기금, 사모펀드 등도 막대한 장부상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피델리티 자산운용사의 글로벌 거시경제 헤드는 "우리는 무언가 파괴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 외신은 "글로벌 채권시장 매도로 차입비용이 십수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국채, 회사채를 보유한 은행, 보험사, 연기금, 자산운용사에 잠재적으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게 됐다"며 "정책 당국자와 투자자들 모두 최근의 급격한 국채 금리 움직임이 금융 시스템의 여러 부분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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