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새로 오실 문체부장관님께 부탁합니다

2023. 10. 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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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피디로 입사하면서 라디오 부문을 지원할 때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다.

TV 전성시대에 라디오는 곧 없어질 텐데 왜 하필 라디오 피디가 되려고 하냐고.

여전히 파릇파릇한 지망생들이 라디오 피디가 되겠다고 몰려든다.

라디오 피디가 되기 몇 년 전에 요즘은 잘 쓰지도 않는 표현인 '등단'을 했을 때도 비슷한 말을 참 자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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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대세만 좇지 말고
묵묵히 곁을 지켜온 문화인들
놓치지 않고 들여다봤으면...

방송국 피디로 입사하면서 라디오 부문을 지원할 때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다. TV 전성시대에 라디오는 곧 없어질 텐데 왜 하필 라디오 피디가 되려고 하냐고. 21세기가 막 시작되었던 즈음의 일인데, 그 뒤로 22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라디오 업계는 성업 중이다. 여전히 파릇파릇한 지망생들이 라디오 피디가 되겠다고 몰려든다. 이제 라디오가 사라질 거라는 장담을 하는 사람은 없다. TV도 마찬가지. 인터넷, 스마트폰, 유튜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등 TV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쟁자들이 줄지어 등장했고 많은 영토를 내준 것도 사실이지만 TV는 여전히 자기만의 성을 지키고 있다.

방송매체보다 훨씬 더 먼저 생존의 위기를 맞은 건 소설이다. 라디오 피디가 되기 몇 년 전에 요즘은 잘 쓰지도 않는 표현인 ‘등단’을 했을 때도 비슷한 말을 참 자주 들었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밥 굶기 딱 좋은데 왜 하필 소설을 쓰냐고. 그때는 그랬던 것도 같다. 하지만 웹소설이 자리 잡은 지금, 그 어떤 시대보다 많은 소설가가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단언컨대 요즘처럼 사람들이 열심히 소설을 읽는 시대는 없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핸드폰으로 웹소설을 보는 사람은 유튜브를 보는 사람처럼 흔해졌다. 웹소설은 소설이 아니라는 주장은 가볍게 무시하자.

길었던 만큼 행복했던 추석 연휴 동안 종이책을 읽었다. 주로 모니터로 소설을 보다가 오랜만에 마음을 내어 잡은 책이었다. 초기작인 ‘세상에서 한아뿐’과 드라마로 만들어진 ‘보건교사 안은영’ 정도를 봤던 정세랑 작가의 최근 작품들을 몰아서 읽었다.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골프장에도 책을 들고 갔다. 더 젊고 발칙한 신진 작가들의 소설도 책장을 넘기며 읽고 싶어졌다. K-팝과 힙합 장르에 귀를 빼앗겨 한동안 챙겨 듣지 못했던 인디 음악도 장거리 운전을 하는 김에 챙겨 들어보았다. 김이불의 목소리는 가을 햇살과 함께 부서지고 나히의 노래는 반쯤 열린 차장으로 넘실대는 바람에 뒤섞였다. 차에서 내리기 아쉬울 정도로 좋았다. 장르와 유행을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있는 인디 뮤지션들에게 감사의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이번 주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가 있었다. 예전 정권에서 같은 부처 장관을 지냈다는 점과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질의가 핵심이었다.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자격이 그런 정치적 질문들로 검증될 수 있을까? 현직 피디인 나조차도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기 버겁고 이번처럼 긴 연휴가 아니었다면 놓쳐버렸을 콘텐츠도 많은데, 일흔이 훌쩍 넘은 노배우가 이 시대의 대중문화와 스포츠를 어느 정도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장관이 현장의 상황을 시시콜콜 다 알 필요는 없으나 최소한의 이해는 필요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 공무원, 교수, 원로에게 장관 자리를 맡기는 틀에 박힌 행태는 이제 바뀌었으면 한다. 문화체육부만이라도 제발. 정세랑 작가가 문화체육부 장관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라도 후보로 강력히 추천한다.

유인촌 후보가 장관이 될지 낙마할지 아직 알 수 없는 지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될 분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대중문화의 대세이자 거대한 비즈니스가 된 K-팝과 드라마와 웹툰 등등을 더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켜온 것들도 신경 써주셨으면 한다. 큰돈 들이지 않고 멋진 이미지를 얻을 좋은 기회랍니다.

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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