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환율·가계부채 삼중고에 고민 커지는 한은
환율 변동성에 가계부채도 최대폭 상승
고공행진하는 환율과 다시 오름세에 들어선 물가상승률, 가파르게 불어나는 가계부채 탓에 이달 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강달러에 물가 불안까지 더해지며 기준금리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으나, 이미 시장금리가 많이 오른 상황이라 기준금리까지 올릴 경우 금융불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하락세를 이어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두 달째 고공행진하며 반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월 2%대까지 떨어졌던 물가상승률은 8월 3.4%, 9월 3.7%까지 뛰면서 두 달째 상승 폭이 확대됐다. 한국은행은 이달부터 다시 둔화 흐름을 이어가면서 연말에 3% 내외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으나, 둔화를 낙관하기에는 일러 보인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상반기에 떨어졌던 물가상승률은 기저효과에 많이 의존한 측면이 있다"며 "대외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물가 상방 리스크가 큰 편"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 상방 요소로는 최근 대내외적 원인으로 오름세에 놓인 주요 식료품 가격이 꼽힌다. 인도·태국 등 주요 설탕 생산국들의 수확량이 가뭄과 이상기후 탓에 급감하며 '슈거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과 우윳값 인상으로 인한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변동성도 변수다. 지난 7월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7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국제유가는 9월 94달러대로 치솟았다. 이달 들어서는 약간 진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연말까지는 글로벌 원유 공급 부족으로 가격 강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하 교수는 "에너지 공급 관련 변수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며 "달러 강세가 유가 하락에 잠깐 영향을 줬지만, 하락세가 유지될 거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겨울철 난방 수요 같은 요인을 고려했을 때 유가는 우리나라 물가 안정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더해 전기요금·지하철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도 상방 압력에 영향을 주고 있다. 앞서 정부는 올해 필요한 전기요금 인상 폭을 kWh당 51.6원으로 산정한 바 있으나, 지난 1·2분기 누적 요금 인상 폭은 kWh당 21.1원에 그친 상황이다. 3분기에는 동결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4분기 인상은 불가피하다. 오는 7일부터는 수도권 지하철 기본요금이 기존 1250원에서 1400원으로 150원 인상되면서 물가 상승 부담을 보태게 됐다.
고금리 장기화 우려로 급등한 미국 장기물 수익률이 시차를 두고 국내 대출금리에 영향을 준다는 점도 한은의 고민 지점이다. 지난 3일 4.8%를 돌파하며 16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미국 고용지표 발표 후 약간 하락했으나 여전히 4.7%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장기물의 경우 우리나라는 미국을 따라가는 경향이 크다. 국채금리 상승은 은행채 금리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시차를 두고 대출금리를 밀어 올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이미 GDP를 웃도는 가계부채 증가 우려마저 더해지며 고민을 키우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P)의 '세계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92%에서 지난해 108.1%로 5년간 16.2%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가능한 26개국 가운데 최고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지난 5일 추경호 부총리마저 “상당히 경각심을 갖고 봐야 할 수준”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강달러 기조에 놓인 원·달러 환율도 문제다. 미국 고용지표 둔화 영향으로 6일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4.9원 내린 1345.6원에 개장했으나, 지속적인 하락세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미 연방준비제도에서 금리를 한 번 더 올릴 가능성이 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한미 금리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5회 연속 금리를 동결한 한은 입장에서는 연내 남은 2번(10월19일, 11월30일)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앞두고 주름살이 짙어질 수밖에 없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달러 강세로 인한 원·달러 환율 상승이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는 데다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한 기대인플레이션 자극이 예상된다"면서도 "다만 지금 경기가 너무 안좋기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4~5%에 달하지 않는 이상 우리만 금리인상을 결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한은 입장에서는 물가안정만큼 금융안정도 중요한 목표"라며 "기준금리를 올리면 물가가 더 빠르게 잡힐 수는 있으나, 국채금리 상승에 영향을 받은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인상으로 또 오르면 가계·기업 이자 부담 확대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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