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부르도그, 탄빵, 아프로켄... 2000년대의 괴짜들

박유정 2023. 10. 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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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남은 세 달, 저마다의 괴상함으로 채워나가기를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유정 기자]

▲ 부르부르도그 우산 부르부르도그 우산
ⓒ 박유정
 
올해의 달력이 딱 3장 남았다. 찾아간 지 오래 되어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본가의 달력은 2장 또는 1장 남아 있을 것이다. 서로 먼저 달력을 떼고 싶어 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주 강력한 문화라 한 달이 다 가기도 전에 달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모른다. 우리집이 연말을 살고 있을지 아니면 연초를 살고 있을지.

이처럼 사람은 저마다 조금씩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면이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보라색 곱슬머리, 가진 옷의 9할이 빈티지, 깨어 있는 동안은 계속 상상을 하고, 문구점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어른이다.

누군가가 보기엔 평범하겠지만 여전히 동네 버스를 타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씩 머물곤 한다. 어릴 때부터 괴상하고 오묘한 점에 끌리는 것이 고민이자 자랑이다. 요즈음 대단한 산리오 열풍에 굴하지 않고 20여 년 전 산엑스의 캐릭터를 사랑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산리오와 산엑스는 모두 자체 제작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일본의 기업 이름이다. 산리오의 대표작은 헬로키티, 폼폼푸린, 마이멜로디, 시나모롤 등이 있다. 한 번이라도 이 캐릭터들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하나같이 보드랍고 사랑스럽고 말하자면 구김살 없는 캐릭터들이다(산리오는 과거 영아트사와 협약을 맺어 생산되었던 문구들에 대한 기사로 추후 다루도록 하겠다).

그리고 20여 년 전 산엑스의 대표적인 캐릭터에는 부르부르도그, 코게빵(아래 탄빵), 아프로켄, 타래팬더 등이 있었다. 나는 압도적으로 산엑스의 캐릭터들을 더 사랑했다. 그렇다는 건 산엑스의 캐릭터들이 어딘가 삐딱선을 타는 애들이라는 의미인데 정말 그렇다.
 
▲ 산엑스 탄빵 집게 산엑스 탄빵 집게
ⓒ 박유정
 
먼저 탄빵은 원래 좋은 빵이 될 예정이다가 화덕에 갇혀 탄빵이 되자 충격으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캐릭터이다. 아프로켄은 수십 가지 헤어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는 강아지이다(생김새가 너무 어이없게 생겼다).
타래팬더는 최선을 다해서 늘어져 있는 팬더로 얼굴까지 양 옆으로 늘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부르부르도그는 부들부들도그라는 이름으로도 판매되었었는데 이름대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들부들 떨고 있는 눈물 맺힌 강아지이다.
  
▲ 아프로켄 인형 아프로켄 인형
ⓒ 박유정
 
설정은 어이가 없지만 당시 산엑스 캐릭터의 국내 인기는 대단했고, 캐릭터에 인색했던 우리 집안에도 부르부르도그 이불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2000년대 초중반은 괴짜들의 시대였다. 더구나 국내에서 '엽기' 코드가 유행하면서 90년대에 이어 그와는 또 다른 개성이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이 때를 지나오면서 내 머릿속에 '괴짜=멋진 것'이라는 공식이 새겨진 걸지도 모른다. 사실 사람이 어떻게 멋지고, 밝고, 예쁘고, 귀여운 면만 있겠는가. 게으른 모습도 있고, 허무하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멍해진 모습도 있고, 이유없이 울게 되는 겁쟁이같은 모습도 있는 법이다. 시트콤의 조연들처럼 그런 점들이 애잔하고 웃기면서 공감되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 타래팬더 파일 타래팬더 파일
ⓒ 박유정
 
많은 사람들이 사회 생활을 할 때 자기가 가진 이상한 면을 깨끗이 숨긴다. 하지만 2000년대의 사람들이 산엑스를 사랑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 어딘가는 내 이상한 면을 개성으로, 재능으로 봐 줄 사람이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모두가 그것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달력을 떼고 싶어한다는 것은 날짜 감각에 있어 똑똑하다는 것이고, 절망할 줄 안다는 것은 감정을 느낌에 있어, 상황을 파악함에 있어 똑똑하다는 것이다. 괴상한 머리를 한다는 것은 멋을 잘 안다는 것이고, 맘껏 늘어져 있다는 것은 쉴 때를  안다는 것이다.

요즈음 대학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y2k스타일, 스트릿패션 등으로 개성있게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띈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고 신기하다. 내가 바라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니 영화 속 같기도 하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개성적 패션, MZ세대의 독특한 감성, 삐딱한 시선들이 세상 한 구석에라도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은 반드시 찾아갈 테니, 이상한 것을 찾는 불나방처럼.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이상하다. 그래서 세상은 돌아가고 인생은 재밌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해준 우리 괴짜 가족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기사를 접하는 독자분들도 남은 3장의 올해를 저마다의 괴상함으로 채워나가기를, 자기 개성에게 조금씩 너그러워지기를, 남은 2023년을 더 재밌고 웃기게 굴려주기를 부탁드려본다. 끝으로 노래 한 곡을 올리며 모두의 개성을 응원한다.
 
용기를내 부끄러워하지마 사람은 저마다 똑똑 하니까 마음껏 웃어슬퍼할 필요없어 내일은 또다시 태양이 뜰테니까
- <박상민>내 친구 우비소년 주제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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