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다리와 동양 최대 독살 속 숭어

황호택 2023. 10. 6.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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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보석, 신안 천사섬 7] 해수욕장 9개, 해변 50개 휴양의 섬 자은도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 <기자말>

[황호택]

자은도 둔장해변 무한의 다리는 2019년 개통 후 둔장 독살과 어우려져 신안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종점 할미도까지는 정확히 1004m. 신안 천사섬의 천사(1004)에 다리의 길이를 맞추었다. 갯벌 생태와 바다 경치를 관람하며 왕복 2km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다리 옆으로는 원형이 잘 보존된 동양 최대의 둔장 독살이 펼쳐진다. 물이 찼을 때 들어온 물고기들이 물이 빠지면 바닷물 위로 솟아오른 돌담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지금은 갈매기가 원시 어로(漁撈) 유물의 주인 노릇을 한다.

독살에 갇혀 퍼덕거리는 물고기들을 낚아채 배를 채운 갈매기들은 돌 위에 앉아서 무한의 다리를 건너가는 관광객들을 바라본다. 누가 누구를 관광하는 건지 주객(主客)이 아리송하다. 무한의 다리 밑으로 숭어가 득실거린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하다. 물 빠진 독살에서도 숭어가 퍼득거린다.
 
 무한의 다리와 나란히 뻗은 둔장 독살. 썰물 때 물이 빠지고 나면 촘촘한독살에 물고기들이 갇힌다.
ⓒ 신안군
 
무한의 다리는 8월 8일 섬의 날을 기념해 건립했다. '8'이라는 숫자를 옆으로 누이면 무한대(無限大)를 의미하는 '∞'가 된다. 섬과 섬이 빙빙 돌며 끝없이 이어지는 연속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조각가 박은선과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협업으로 2024년에는 '인피니또 뮤지엄'(무한의 박물관)이 문을 연다. 신안군은 전시 작품으로 1000여 점 이상의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김환기 유족에게서 받은 기증품과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사진 작품, 전남 출신으로 세계적인 활동을 하는 박은선의 조각 등이다.

자은도의 생태박물관, 양산해변
 
 자은도 ‘무한의 다리’ 전경. 다리의 중간에 있는 작은 섬이 구리도, 종점은 할미도. 만조 때라 독살이 보이지 않는다.
ⓒ 신안군
자은도는 거센 파도와 바람의 힘으로 모래가 밀려오고 쌓이면서 바다가 메워져 육지가 된 곳이 많다. 자은도의 지형을 바꿔놓은 것은 대규모 간척사업. 일제 강점기인 1920년경부터 한국전쟁 후까지 주민들은 자연퇴적으로 얕아진 곳을 둑으로 막아 논과 밭을 만들었다.
양산 해변에 가면 뮤지엄파크 경내에 심어놓은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나무 바람막이를 설치해 놓았다. 그냥 두면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나무들을 묻어버린다. 바람막이가 없는 쪽에는 모래가 쌓여 언덕이 생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양산 사구(沙丘)라고 부른다. 뮤지엄파크에 붙어 있는 양산해변은 자은도의 생성 과정을 실제 상황으로 보여주는 생태박물관이다.
  
 바람이 쌓아 올린 모래언덕과 그 앞에 눌러앉은 소라 조형물.
ⓒ 황호택
 
자은도는 갯벌 모래땅에 어울리지 않게 한자 이름이 우아하다. 사랑할 자(慈), 은혜 은(恩).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742~764) 시절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인재들을 시켜 마한 백제의 옛 지명을 중국식 한자 지명(地名)으로 바꾸었다.
어원(語源)은 <삼국지>에서 유염이 제갈량에게 "제가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커다란 실수를 했음에도 승상께서 '너그러운 마음'(慈恩)으로 용서해주셔서 생명을 부지할 수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했다. 마한 백제의 순 우리말 이름이 사라졌지만 자은도란 지명을 1300년이나 써오면서 굳은살이 박히고 정이 들었다.
  
 기암괴석, 나무와 분재, 시내가 어우러진 수석정원
ⓒ 황호택
자은도의 뮤지엄파크는 평일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석미술관 수석정원 세계조개박물관 신안자생식물원 등으로 구성됐다. 수석정원은 7천㎡ 부지에 3천 톤에 이르는 기암괴석과 200여 종의 야생화, 100여 종의 분재(盆栽)들로 경이로운 비원(祕苑)을 만들어놓았다. 우아하고 깔끔하고 품격을 갖춘 정원이다.

고인돌 같은 커다란 돌을 얹은 석문(石門)을 지나면 눈부신 세계가 펼쳐진다. 기암괴석으로 정원석을 만들고 나무와 분재가 어우러져 구분이 힘들다. 그 사이로 시내가 흐른다. 2층 구조의 정원을 건너는 다리는 들어올 때 지났던 석문의 고인돌이다. 돌고 돌아서 같은 돌을 만난다.

수석미술관은 파도와 바람, 물이 수천 년에 걸쳐 조각한 수석 260여 점을 최신 IT 기술로 흥미롭게 안내한다. 뮤지엄파크에서는 분재유리공원 땅콩랜드 등도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유산 신안 갯벌에 들어선 조개박물관

세계 조개·고둥박물관은 환경의 지표가 된 조개와 고둥을 종과 계통별로 모은 1만1천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조개류는 물 위에 떠 있을 수 없고, 갯벌이 있어야 서식할 수 있는 생물. 갯벌에서 정화작용을 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껍데기를 만든다. 조개가 정상적으로 자란다는 것은 건강한 갯벌이 있다는 증거.
  
 뮤지엄파크 박물관에 전시된 조개와 고둥.
ⓒ 황호택
2020년 전시품을 기증한 임양수씨는 전남 완도 출신으로 완도 수산고등학교와 여수 수산대를 졸업하고, 2등 항해사가 되어 원양어선을 탔다. 호주 인근 해상에서 조업하면서 조개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선원들이 배 한쪽에 던져놓은 고둥이나 조개들은 생물도감에서도 못 본 것들이었다. 후배 선장들에게도 부탁해 남극바다의 조개·고둥류들까지 수만 점을 모았다. 생태계의 보고 신안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임씨가 평생 모은 조개들을 전시할 최적의 장소를 찾아낸 것이다.
 
 여인이 물구나무 선 모습을 한 여인송. 배꼽이 뚜렷하게 보인다.
ⓒ 황호택
  
해넘이길 12km '대한민국 해안누리길'

뮤지엄파크 인근에는 백길해수욕장, 씨원리조트와 5성급 호텔 라마다호텔이 있다. 자은도는 해수욕장 9개와 50여 개에 이르는 해변을 지녀 '휴양의 섬'으로 불린다.

둔장해수욕장은 일몰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 자은도의 땅끝마을 한운리에서 둔장해수욕장을 거쳐 사월포까지 이어지는 길을 해넘이길이라고 불린다. 해양수산부는 2013년 자은도 해넘이길(송산-해운-둔장-두보) 12km를 '대한민국 해안누리길'로 지정했다.

백산리 분계해수욕장에는 울창한 해송군락으로 이뤄진 산책로가 해변을 따라 이어져 해수욕과 산림욕을 함께 즐길 수 있다. 해송 숲은 200여 년 전에 방풍림으로 조성됐다.

해송 숲길을 걷다 보면 물구나무 선 여인송(松)의 미끈한 각선미를 만나게 된다. 여인송은 연리목(連理木)이다. 얇은 껍질을 가진 동종의 두 나무가 물리적으로 마찰을 일으킬 만큼 가깝게 붙어 있으면 마찰과 압력을 통해 서로의 껍질이 벗겨져 접붙이가 된다.

자연적 접붙이를 통해 가지가 붙으면 연리지(枝), 줄기가 붙으면 연리목(木), 뿌리가 붙으면 연리근(根).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나무들을 부부애, 형제애 등 길조로 해석하는 풍습이 있다.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자연호수 용소

분계해수욕장 못 미쳐 백산마을 뒤편에는 1만 평가량의 호수 용소(龍沼)가 있다. 섬에서는 드물게 너른 자연호수. 이곳에는 승천을 앞둔 한 쌍의 용이 살았는데 칠 산 앞바다에서 모래가 계속 밀려와 못이 자꾸만 좁아졌다. 암용이 다른 곳으로 옮기자며 계속 졸랐지만 숫용은 승천을 기다리며 버텼다.

암용은 견디다 못해 이웃에 있는 비금도 용소로 혼자 떠나가 버렸다. 아무리 가물어도 이 용소는 마르지 않고 계속 물이 나온다. 승천한 용이 못의 물을 마르지 않게 하려고 비를 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섬을 떠나지 않고 모래바람을 견디며 땅을 넓히고 가꾼 자은도의 역사를 상징하는 설화.

용소는 1년 내내 바닥을 드러내지 않아 주변 대파, 땅콩 단지의 농업 용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해군기지가 설치돼 급수장으로 활용했다. 
  
 대파 땅콩 단지의 젖줄 용소.
ⓒ 황호택
    
간척으로 생긴 갯벌 땅에서는 대파가 잘 자란다. 신안군 자은도와 임자도를 중심으로 비금도 암태도 증도까지 합해 5개 섬에서 전국 대파의 20~30%가 나온다. 신안은 2017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시금치와 함께 대파 산업 특구로 지정됐다.

대파는 6월에 심어 12월부터 수확을 한다. 대파는 생물로 판매하기 때문에 다음 해 5월까지 밭에서 뽑아 출하한다. 강원도 경기도 같은 곳에서는 겨울에 땅이 얼어 줄기를 잡아당기면 대파가 끊어진다. 자은도는 겨울철 기온이 따뜻하고 대파밭은 모래 성분이 많은 사질토(沙質土)여서 쑥쑥 뽑힌다.

자은도 임자도에 가면 겨울에도 너른 들녘이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신안의 대파는 잎을 꺾으면 진한 향기가 스며 나온다. 대파의 흰 부분(연백부)이 길고 탐스러워 시장에서 주부들에게 인기다.

바닷바람 받은 대파, 마늘, 땅콩이 뜬다

1kg 대파 한 단에 2천~3천 원 이상이면 자은도 농민들은 살림이 포실해지고 1천 원대 이하로 떨어지면 한 해 농사를 망친다. 작년에 100평 한 마지기에 밭떼기로 160만 원을 받았다.

나를 안내한 자은면사무소 직원은 아버지가 대파 80마지기를 짓는다고 했다. 한 마지기 당 160만 원씩 작년에 1억28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농약 비료값 자재비 인건비 등 농비로 4천만 원이 들어갔다. 얼추 8천만 원 이문이 남았으니 농가 수입으로는 쏠쏠한 편이다.

섬 문화는 가끔 독특한 데가 있다. 이웃 임자도에서는 200평이 한 마지기인데 자은도에서는 100평이 한 마지기다. 자은도에서 100마지기 부자가 임자도에 가면 50마지기밖에 안 되니 수학(數學)의 상실감이 생길 것이다.

자은도는 대파밭에서 인심이 난다. 대파값이 폭락해 인건비 운송비도 건지기 어려울 해는 수확을 안 하고 밭을 갈아엎어야 한다.

바닷바람을 받으며 갯벌 땅에서 자란 마늘, 대파, 땅콩은 자은도의 3대 농산물이다. 1950년대부터 자은도 일대에서 재배된 토종 땅콩은 일반 땅콩에 비해 알이 작지만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식품. 바닷바람을 받으며 좋은 토질에서 자라 맛이 고소하고 담백해 소비자들의 인기를 끈다. 신안군은 땅콩랜드 조성사업과 연계해 땅콩을 전략 관광자원으로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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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재언, 《한국의 섬-신안군 2》, 이어도, 2021 최성환, 《신안여행을 위한 문화관광 가이드북》, 신안군, 2023 《신안소식》 2020년 봄호, <명예 신안사람 임양수 씨>,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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