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국기문란' 남발하는 나라, 정상 아니다

이충재 2023. 10. 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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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응원집계에도 '국기문란' 딱지...총선 앞두고 포털 장악 의도 의심

[이충재 기자]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등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응원집계 논란에 대해 "이런 게 방치되면 국기문란 사태가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미국의 9∙11 테러에 빗대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왜곡 조작 방지 대책을 위한 범부처 TF 구성을 지시했다. 아시안게임 한∙중 남자축구 8강전 당시 중국 응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게 국기문란이니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것이다. 이런 걸 보고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고 한다.

이미 누리꾼 사이에선 특정 온라인커뮤니티 유저의 장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 축구경기에서 다른나라 응원비율이 높았던 게 처음도 아니다. 한국∙키르기스스탄전에서 키르기스스탄 응원비율이 85%에 이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젊은 세대의 놀이문화 같은 클릭응원 조작을 엄청난 일로 만든 정부만 우스운 꼴 되기 십상이다. "동네 구멍 가게도 아니고 정부가 이런 장난에 놀아나는 게 말이 되나"는 비아냥이 넘친다.

이러니 정부의 과도한 대응에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총선을 앞둔 포털 길들이기라는 해석부터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에 대비한 명분쌓기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영장 기각 사태의 후폭풍을 줄이기 위한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그렇다면 너무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인다. 장이 본격 서기도 전에 파장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정부여당의 '국기문란' 용어 남발 

정작 주목해야할 건 따로 있다. 정부여당의 '국기문란' 용어의 남발이다. 국기문란이란, 나라의 기초(國基) 또는 기강(國紀)을 어지럽히는 행위를 말한다. 법적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내란이나 쿠데타의 경우에나 붙일 수 있는 말이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나 사용할 법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남용한 후유증은 심각하다. 사회 전체가 경직되고 불안에 떠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의 시발점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경찰의 치안감 인사 번복 과정을 두고 "아주 중대한 국기문란"이라고 경찰을 질책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대적인 진상조사 결과, 행정안전부에 파견된 경찰 간부의 단순 실수로 드러났다. 사전에 조금만 신경써서 알아봤으면 될 일을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떠들썩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권위만 실추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기문란'은 현재 윤석열 정부를 관통하는 열쇳말이 됐다.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세력을 공격하고 제압하는 지시어인 셈이다. 김만배 녹취록 의혹은 "희대의 대선 공작이자 중대한 국기문란"이고, 문재인 정부의 통계 의혹은 "상상하기도 힘든 국기문란"이며, 윤미향 의원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주최 행사 참여도 "국기문란 행위"로 지칭됐다. 일단 범죄자로 낙인찍고 사지로 몰아넣고 보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올들어 가장 많이 쓰는 '공산 전체주의' '반국가행위'는 '국기문란'이란 말과 맥을 같이한다. 야권과 시민단체를 공격할 때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기문란'이란 표현이 상시화 된 나라가 정상일 수는 없다. 국가의 기틀이 그토록 자주 흔들린다면 사회가 온전하게 유지될리 만무하다. 그것은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에 버금가는 지금의 경제위기도 사회적 긴장과 불안이 한 원인일 수 있다. 불안과 불만에 노출된 노동자와 직장인들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건 학계에서 입증된 정설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투자를 늘릴 기업도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사회를 불안과 불편함으로 내모는 이들이야말로 '국기문란' 세력이다. 집권세력이 더 이상 제 발등을 찍는 말은 그만두기 바란다. 무능과 무책임만 드러낼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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