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너는 늦게 피는 꽃" 류승룡은 만개했다
디즈니+ 시리즈 '무빙' 주원役
20회차 긴 콘텐츠, 시리즈계 '토지'
"젊은세대 열띤 호응에 놀라"
"승룡아, 너는 늦게 피는 꽃이야."
"땅을 깊이 파면 손가락은 아프지만 맑고 깨끗한 물이 나온다."
배우 류승룡(52)을 일으킨 말이다. 한 사람의 영향력, 한마디 말의 힘을 은사들 덕분에 알았다. 20대 후반 김효경 교수는 그의 불안한 눈빛을 바라보며 '꽃'에 비유했다. 이준익 감독은 '물'에 빗댔다. '좋은 배우'가 될 그를 알아보고 건넨 따뜻한 조언이었다. 출연작마다 대중에게 '인생작'이라는 호평을 듣는 그는 "나를 붙잡은 한마디"라고 회상했다.
류승룡은 최근 공개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 시리즈 '무빙'(감독 박인제·극본 강풀)에서 무한 재생 능력을 가진 주원을 연기했다. 강렬한 액션부터 투박하고도 먹먹한 로맨스, 애틋한 가족애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오가며 호평을 이끌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룡은 "매 작품 한계를 두지 않고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끝까지 파보자, 그 벽은 얇을지도 모른다. 한계를 두지 말자. '무빙'에도 그렇게 접근했다"고 했다.
류승룡은 "재생하지만 고통을 느끼고, 치유되지만 상처받고 어린아이 같다"고 배역을 설명했다. 이어 "목적 없이 거친 삶을 살다가 누군가를 만나 배우면서 얼마나 쓸모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배워간다. 누구나 그런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선한 위로를 전하는 주원을 통해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타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다시 느꼈다"고 했다.
류승룡은 강풀 작가의 동명 원작을 재밌게 봤다고. 그는 "많은 등장인물이 있고 각자 서사와 희로애락이 있다. 짧은 시간 내 단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지만, 긴 시간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출연 배경을 전했다.
"대사 중에 '못 보면 죽을 거 같아서요' 처럼 툭툭 던지는 말들을 건강하게 봐주셔서 놀랍고, 감사해요. 강풀 작가가 내일모레 오십이잖아요. 클래식한 코드를 젊은 세대가 이해 못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공감, 이해하고 오히려 더 좋아하더라고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거 같아서 보람을 느껴요."
류승룡은 젊은 세대의 시청 기호를 우려했다며 "끝까지 조마조마했다"고 떠올렸다. OTT 시리즈 콘텐츠는 평균 6~8부로 제작된다. 이와 달리 '무빙'은 20부작으로 2~3배 길고, 드라마처럼 격주 단위로 공개됐다. 더군다나 디즈니+ 플랫폼에서는 N배속 빨리보기 기능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는 "전체 시리즈를 정주행할 수도 없고, 배속도 없으니 금단현상처럼 불만도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물 간 서사나 선택을 이해해주지 않았나"라고 바라봤다.
"짧은 콘텐츠, '빨리빨리' 선호하는 요즘, 20회차 진중한 이야기가 공감을 얻을까, 지겨워하면 어쩌나 우려도 했다. 마치 옛날 '토지'(1981)처럼. '무빙'이 시리즈물의 '토지'라고 생각했어요."
류승룡에게도 '무빙'은 도전이었다. '토지'처럼 긴 호흡 작품에서 처음 연기한 그는 굉장히 만족했다. "시대와 세대를 오간 작품도 처음이고요. 인간의 감정 변화를 한 작품에 다 쏟아낸 것도 처음이죠.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현장 가는 게 설레고 행복했어요. 배우들끼리 호흡도 좋았죠. 이런 작품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서 특히 애정이 가요."
'평생 할 액션을 다 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류승룡은 고난도 액션 연기를 소화했다. 격렬한 액션이 연이어 이어지는 까닭에 가족의 마음은 미어졌다. 고3, 중3 두 아들은 '무빙'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이를 본 류승룡은 "평생 처음 봤다"고 말을 꺼냈다. 이내 "아이들이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며 "애들이 착해졌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도장깨기'처럼 퀘스트를 하나 깨면 또 나오고 또 나왔죠.(웃음) 육해공마다 액션 콘셉트가 다르고 대상도 달라서 재밌었어요.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연기하며 재밌었어요. 나중에 보는 분들에게 행복을 주겠구나, 설레기도 했죠."
2004년 '아는 여자'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내년이면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 지 20년이 된다. 연기를 시작한 건 꽤 오래전이다. 연극 무대에 오르며 숱하게 관객과 만나오다 1997년 '난타' 멤버로 활동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그에게 소회를 물으니 "얼굴을 보면 한 40주년 될 거 같지 않냐"고 말해 웃음을 줬다.
"비교적 늦게 매체 연기를 시작했는데, 장진 감독에게 감사해요. 연극하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프로필사진 한번 안 찍고 영화 자체가 오디션이 됐죠. 우리나라에서 배우를 한다는 게 감사한 일이라고 느껴요. 하지만 연기는 여전히 어려워요. 혹자는 감정을 세공하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감정이 맞는지 어떻게, 누가 알겠어요. 적절한 지점,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하죠. 요즘 화두예요. 연기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과유불급 되지 않는 삶.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적절한 지점을 찾아가는 게 인생 아닐까요."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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