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 정의선 취임 3년… 위기 극복이 체질

편은지 2023. 10.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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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4일, 2020년 회장 취임 이후 3년
美 IRA·테슬라 위협에도… 뚝심 지키고 美 영향력 '확장'
중국·러시아 위기, 인도·인니로 글로벌 시장 재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2020년 10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에게서 바톤을 이어받은 정의선 회장을 향해 시장의 우려와 기대가 쏟아졌다. 정 명예회장이 겨우 글로벌 플레이어를 따라잡은 상황이었지만, 전례없던 코로나19 팬데믹에 불확실성이 산재한 상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긴축경영에 들어갔고, 변수를 최소화 하기 위해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수많은 계열사와 협력업체를 거느린 대기업의 새 수장에게 정중동은 없었다. 아끼고 졸라매야할 시기에 공격적인 투자와 시장확대에 나선 것.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주력 차종의 모델 체인지를 지연 없이 진행하고,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는 라인업 강화와 해외 시장 진출까지 강행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이달 14일이면 정의선 현대차그룹이 '회장' 자리에 오른지 만 3년이 된다. 정 명예회장이 구축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현대차는 아들의 손에서 더 높아졌다.

정 회장이 지휘한 3년 사이 현대차는 전 세계에서 3번째로 자동차를 많이 판매하는 기업이 됐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총 684만5000대를 판매해 일본 토요타그룹, 독일 폭스바겐그룹에 이어 3위에 오른 것. 글로벌 자동차 격전지로 꼽히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진행되는 각종 어워즈에서는 전통 완성차 업체들을 제치고 내연기관차부터 전기차까지 수상 명단에 밥먹듯 이름을 올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국내외 언론 스피치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취임 직후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극복하는 첫 시험대였다면, 2023년은 코로나19 위기로 증명해보인 위기 관리 능력이 빛을 발한 해였다. 엔데믹 전환으로 잠시 숨은 돌렸으나 지난해 말 미중 패권 전쟁이 격화되며 다시 한 번 위기에 내몰리면서다.

중국의 전기차 고속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내놓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던 정 회장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당시 현대차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전동화 전환에 주춤하는 사이 아이오닉5, 기아 EV6 등을 빠르게 내놓으면서 미국 시장에선 테슬라에 이어 전기차 업체 2위로 올라선 상태였다.

IRA는 북미에서 자동차를 최종 조립하고, 북미에서 제조한 배터리와 부품을 절반 이상 사용한 전기차에만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이 골자다. 한국에서 전기차를 전량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현대차 입장에선 최대 판매국인 미국에서 전기차 경쟁력을 단숨에 잃을 수 있는 최대 위기였다.

현대차 미국 전기차 공장 조감도 ⓒ현대차그룹

IRA 법안 발표 직후 정 회장은 굵직한 과제부터 해결해갔다. 5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조지아에 연간 30만대의 전기차를 양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기 시작했고, 기존 2025년이었던 완공 시점을 2024년 하반기로 당겼다.

보조금을 적용받기 위해선 미국에서 생산한 배터리가 탑재돼야하는 만큼 국내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합작공장 구축에도 착수했다. SK온과의 합작공장은 2025년 상반기,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공장은 같은해 하반기부터 생산이 시작될 예정이다.

완공까지 남은 시간은 IRA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리스로 돌파구를 찾았다. 리스차량에 대해서는 법안 요건과 관계없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미국 내 리스 판매 비율을 4%에서 30~40% 수준까지 늘렸고, 그 결과 올해 7월까지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미국 수출량은 3만948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2% 급증했다. 미국 전기차 브랜드 순위는 2위에서 3위로 내려앉았지만, 미국의 발목 잡기에도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기공식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현대차그룹

승부사 정 회장의 위기 돌파 능력은 IRA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전략 측면에서도 두드러진다. 러시아와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면서 시장 재편의 필요성이 커지자 과감하게 아세안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 경쟁이 치열한 유럽·미국 시장과 비교해 불확실성이 적고 성장세가 확실한 시장에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중국을 누르고 세계 최대 인구 대국으로 떠오른 인도와 인구수 4위 국가인 인도네시아를 낙점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이미 생산공장을 갖고 있는 데다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판매국이다. 현대차는 인도에선 현지 판매 점유율 2위, 인도네시아에선 6위를 차지하고 있다.

빠른 투자와 공격적인 시장 확대는 정 회장의 특기라도 된 모양이다. 시장에 대한 판단이 선 정 회장은 현지 생산 공장을 확대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라인업도 함께 확대해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리기로 했다.

현대자동차의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전기 스포츠실용차(SUV) 모델인 아이오닉5가 생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일본 업체들이 50년간 장악한 인도네시아 시장에서는 일본 업체의 약점으로 꼽히는 전기차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아이오닉5를 현지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올해 전기차 시장 점유율 독보적 1위로 올라선 것.

올해는 아이오닉 6를 출시하면서 전기차 라인업을 확충했다. 미국에 테슬라가 있었다면 인도네시아에선 현대차가 전기차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인도에서는 기존 첸나이에서 가동 중인 공장에 올해 GM 탈레가온 공장까지 인수하기로 하면서 생산능력을 늘렸다. 기아 아난타푸르 공장까지 포함하면 현대차그룹 전체로는 134만대의 생산능력을 인도에서 갖추게 된다. 전세계 3대 자동차 시장인 데다 세계 최대 인구 보유국인 만큼 생산 능력을 최대치로 확보해 점유율 1위로 올라서겠다는 복안이다.

슈퍼널이 공개한 UAM 인테리어 콘셉트 모델의 모습 ⓒ 현대차그룹

공식 석상에 오를 때마다 '인류를 향한 진보'를 외치는 만큼 완성차를 넘어선 다양한 모빌리티 시장 진출은 정 회장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정 회장은 항공우주국(NASA) 출신 신재원 사장을 영입해 UAM 개발 전담 조직을 만들었고, AAM(미래항공모빌리티)으로 개념을 확장한 2021년에는 미국에 AAM 독립법인 ‘슈퍼널’을 설립하기도 했다.

불과 10년 전 가장 우수한 연료로 평가받던 디젤 엔진의 시대, 전통 깊은 독일 브랜드를 바짝 쫓아가기 바빴던 현대차는 이제 정 회장의 손에서 선두에서 영역을 확장해가는 퍼스트무버(분야를 개척하는 선도자)로 나아가고 있다. 배터리로 가는 전기차 시장에선 그 어떤 브랜드보다 빠르게 기술력을 확대했고, 이제 달리는 것 뿐 아니라 하늘로까지 영역을 넓힌다. 정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비단 위기 상황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대차

3년 간 분주하게 달려왔지만, 그의 손에는 해결해야할 과제도 산적해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확실한 우위를 쥐기 위해서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시장 선점이 필수적인 요소로 꼽히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파워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최상위권 업체와의 격차는 아직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DV는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판가름할 핵심 요소로 꼽히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사활을 거는 분야다. 과거 정 명예회장의 ‘패스트 팔로어(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 정신만으론 최상위권 업체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상 정 회장의 ‘퍼스트 무버’ 전략이 가장 빛나야하는 분야인 셈이다.

글로벌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시장에서의 재도약도 중요한 시험대 중 하나로 꼽힌다. 정 회장이 글로벌 시장에 각인시킨 품질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 가격경쟁력도 확보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과거 명성 되찾겠다는 정 회장의 의지는 중국 시장 행보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미 현대차는 중국 현지 생산시설 최적화와 효율화, 현지 맞춤형 제품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전세계 시장에서 전동화가 가장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장인 만큼 차별화된 전기차 모델과 고부가 가치 차량 생산을 늘려 과거 판매량을 회복해내겠다는 목표다. 중국 시장에서 재도약을 이뤄낸다면 정 회장의 리더십과 위기 관리 능력은 또 한 차례 입증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문화 혁신도 필수 과제다. 최근 수년간 현대차그룹의 기업문화는 극적으로 변화해 왔지만, 성과를 내는 기업문화로의 변혁이 요구되고 있어서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기존의 관성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능동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을 임직원들에게 당부한 바 있다. 정 회장 역시 충분히 파악하고 공감하고 있는 만큼, 과제 극복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는 현대차그룹의 움직임 또한 분주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위기의 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남다른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의 위상을 꾸준히 높여왔다"며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글로벌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앞으로의 시장 상황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정 회장의 리더십과 위기 관리 능력이 앞으로의 위기 상황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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