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혜 누명 벗기나…재심 전문 박준영 "난 오해 받아도 돼요" [박성우의 사이드바]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전문이다. 이미 형이 확정된 사람에게서 ‘범죄자’ 낙인을 지워내려 발버둥치는 게 그의 일이다. 흔적들을 뒤져 오래 전 재판의 중대한 하자를 찾아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경찰, 검찰 수사를 거쳐 대법원까지 들여다보고 확정된 사건을 ‘잘못 됐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지만, 수십년 전 일의 유·무죄를 다시 다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도전하는 일이다.
박 변호사는 ‘재심 전문’ 타이틀을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재심 사건은 속성 상 오래 걸리고 이미 맡은 사건들을 그만하겠다고 할 수도 없어 계속 하게 된다고 했다. 그가 맡은 10여 건은 이미 국내 다른 변호사들과 비교할 수 없는 기록이다.
박 변호사는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오는 12일 제15회 영산법률문화상을 수상한다. 민간 분야 법조 관련 상 중에 최고 권위의 상으로, 직전 2021년 수상자는 고(故) 이홍훈 대법관이었다. 박 변호사는 “재심 사건을 많이 맡았지만 이 분야 연구 업적은 없는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영광”이라고 말했다.
Q : 현재 재심 진행 중인 ‘무기수 김신혜’ 사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법원이 재심을 허락한 이유가 경찰의 강압 수사와 영장 없는 압수수색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데, 실은 그것 외에도 절차적 불법 행위가 있었습니다. 주거지 수색 뿐 아니라 차량 수색도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이뤄졌고, 폭행과 가혹 행위도 있었습니다. 또 당시(2000년)는 검찰 조서가 그 자체로 증거 능력이 있던 시절입니다. 법정에 와서 부인하면 증거 능력이 없어지는 지금과 달라요.
사실 조서 상의 진술이란 건 실제 진술을 온전히 담았다고 보기도 어려운데, 특히 재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 조서의 진술에는 왜곡되고 때로는 조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인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23년 전 작성된 조서의 증거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유죄냐, 무죄냐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당사자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어요.
무기수 김신혜 사건은 지난 2000년 전남 완도의 외딴 버스정류장에서 김신혜(당시 23세)씨의 아버지(당시 52세)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김씨 고모부가 “김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했다”고 신고해 김씨가 체포됐고, 이듬해 김씨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부검 결과 아버지 혈액에서 다량의 수면제 성분과 알코올이 검출돼, 법원은 김씨가 아버지에게 약을 먹여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고모부가 ‘남동생이 죽인 것 같다’고 말해 동생 대신 감옥에 갈 생각으로 거짓 자백을 했다”며 경찰에서 한 진술을 뒤집었다. 2015년 영장 없는 압수수색 등 경찰의 위법 행위가 인정돼 재심의 길이 열렸다.
Q : 절차상 위법행위는 법률적으로 중요하지만, 세간의 관심은 ‘그래서 실제로 살인을 했는가’에 있는 것 같아요.
A : 16일 재판에 부검의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 원장이 출석할 예정인데 저는 그날 재판이 이 사건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봅니다. 부검의는 김씨 아버지의 위(胃)에서 사망 1~2시간 전에 다량의 약을 복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입장이거든요. 법의학자들의 의견도 김씨 아버지가 사망에 이를 정도였다면 알약을 100알 넘게 복용했어야 한다고 합니다. 공소사실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것이죠. 또 김씨를 신고한 고모부도 법정에서 “정확히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증언했습니다.
Q : 김신혜 사건 외에 주요하게 보는 재심 사건은 어떤 게 있나요.
A : 모든 사건을 주요하게 보지만, 2009년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에서 수사기관의 행태가 유독 악랄했다고 봅니다. (※부녀자 4명이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마시다가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치명상을 입은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백모씨 부녀는 각각 무기징역, 징역 20년이 확정돼 복역 중) 청산가리 생김새를 설명하지 못하는, 지적능력 평균 이하의 딸 백씨에게 답변을 알려주고 강요하기도 했거든요.
Q : 2009년에도 그런 일이 있었군요.
A : 중앙아시아 출신 여성 사건의 재심 청구도 준비 중인데, 진술 과정에서 통역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외국어를 잘 하는 것과 통·번역은 또 다르고, 법률용어나 법적 고지 등도 세밀하게 해야하는데 그 과정에서 피의자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고요. 굳이 순천 청산가리 사건처럼 심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조사 과정에서 억울한 일이 생길 소지가 있어보입니다. 수사기관이 꼭 나빠서가 아니라 시스템적인 문제죠. 꼭 옛날처럼 폭력을 써야 허위 자백을 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Q : 김웅 의원(전 해남지청장)이 ‘김신혜 사건’의 증거가 충분하다며 변호사님을 ‘야심가’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A : 김 의원과 검찰개혁위에서 함께 활동했습니다. 능력 있는 검사, 일 잘하는 검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도 확신에 차서 그런 글을 썼을텐데요. 저는 그걸 비판하려고 한 게 아니라 사건과 사람에 대한 판단이 정말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이 사건을 통해서 한번 살펴봐달라는 그런 목적으로 글을 올린 겁니다. 저도 100% 확신하니까 한 번 두고 보시라고… 그 분을 공격하려고 한 건 전혀 아닙니다.
Q :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도 합류 제의가 왔는데 안 가셨어요.
A : 저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에 대해서 객관적인 얘기를 한 것 뿐입니다. 저는 재심 사건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나중에 모든 게 드러난다는 걸 경험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의혹을 확산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과용하는데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어떤 정치적 생각을 갖고 한 얘기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인수위나 어떤 한 쪽 진영에 합류하면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오해받게 되죠.
Q : 세상이 변호사님을 어떻게 바라봐주길 바라세요.
A : 언제부턴가 오해도 좀 받고, 억울한 일도 좀 겪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변호하는 분들은 정말 사람도 안 죽였는데 사람 죽였다는 누명 쓰고 수십 년 동안 억울하게 아주 큰 오해를 받고 사셨잖아요. 검찰개혁,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있었던 일을 외부에 발언할 때 참 많은 관계가 정리되더라고요. 제 책을 불태워버렸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돌이켜보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오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시간을 갖고 진정성을 평가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얘기라고, 겁내면서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가급적 주의하려고 해요. ‘박준영은 그래도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서 말과 행동을 한 친구구나’ 하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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