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겐 러시안 룰렛"…노란버스 풀려도, 현장학습 취소 81%
이른바 ‘노란 버스’ 논란으로 촉발된 수학여행 등 현장체험학습 파행 사태가 관련 규제 완화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에 안전사고 책임까지 떠안으며 현장학습을 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교권 침해 이슈가 현장학습 보이콧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노란버스 규제 풀려도…“영구 보이콧”
5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관내 학교의 81%가 2학기 현장학습을 취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대부분 학교가 현장학습을 재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현장학습 파행 사태는 지난 7월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 “현장학습을 가려면 일반 전세버스가 아닌 어린이 통학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공문을 보내며 시작됐다. 앞서 지난해 10월 법제처가 만 13세 미만 어린이들의 현장학습을 위한 이동도 도로교통법상 ‘어린이의 통학 등’에 해당한다고 해석한 데 따른 조치다. 노란색의 어린이 통학버스를 당장 구하기 어려운 일선 학교에서는 현장학습을 줄줄이 취소했다.
정부가 수학여행도 못 가게 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는 어린이 현장학습에 전세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혼란을 초래했던 ‘노란 버스’ 논란이 일단락 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엔 교사들이 현장학습을 거부하고 나섰다.
초등 교사 커뮤니티 등에서는 “현장학습을 영구 보이콧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한 경찰 관계자는 “교사들로부터 ‘정부가 현장학습을 불법으로 결론 내야 우리도 마음 놓고 취소할 수 있다’는 민원도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안전 사고 나면 교사 책임…“러시안 룰렛”
안전 사고에 대한 부담도 현장학습을 꺼리는 원인이다. 지난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 초등 교원 55.9%가 “현장학습은 안전 사고와 소송 부담이 크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안전 관리·감독 의무때문에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2017년 경북 영주의 초등학교에서는 수학여행에서 친구가 쏜 장난감 화살에 맞아 학생이 실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재판부는 가해학생과 교사에게 2억27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 초등 교사는 커뮤니티에 “교사들에게 현장학습은 ‘러시안룰렛’”이라는 글을 썼다. 러시안룰렛은 회전식 연발권총에 하나의 총알만 장전하고 여러 명이 차례로 머리에 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기는 목숨을 건 게임이다. 현장에서 안전 사고가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몰라 복불복 게임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학습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돼 수학여행 등의 프로그램 자체를 보이콧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의 한 초등 교사는 “현장 안전 인력을 지원하고, 교사의 책임 범위를 정비하는 등의 제도가 우선”이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사들이 부담 없이 현장학습을 갈 수 있도록 법률 지원 등의 대안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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