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빠진 독에 '탄약' 붓기…3억발 받은 우크라 "러에 밀린다" 왜
미국이 압수한 이란 탄약까지 우크라이나에 보낼 정도로 탄약 고갈이 심각한 상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7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수억발의 탄약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소모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품질 수준을 낮추는 대신 생산량을 크게 늘리는 한편 북한으로부터 탄약을 지원받아 우크라이나보다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일(현지시간) CNN·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해상에서 압수한 이란의 7.62㎜ 탄약 110만발을 지난 2일 우크라이나 군대에 양도했다. 이 탄약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에서 널리 사용되는 돌격소총 AK-47에 쓰인다. 중동 지역의 군사작전을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는 지난해 12월 미 해군 병력이 무국적 선박에 실린 채 이란혁명수비대(IRGC)로부터 예멘 후티 반군(시아파 무장단체)에게로 이송되고 있던 물량을 압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서방 진영이 심각한 탄약 부족 상황에 직면했다고 밝힌데 이어 미국이 압수한 이란 탄약까지 지원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앞서 전날 롭 바우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사위원장은 폴란드에서 열린 바르샤바 안보 포럼에서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제 (탄약) 창고의 바닥이 보인다"고 한탄했다.
탄약 3억발 지원도 부족
미국 국무부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소형 탄약 3억발과 155㎜ 포탄 200만발, 105㎜ 포탄 50만발 등 대략 3억510만발의 탄약을 제공했다. 그 외 유럽연합(EU) 등 동맹국에선 약 35만발의 탄약을 지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여름부터 동부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만 포탄 수십만 발을 사용하는 등 소모전을 이어가면서 올 초부터 탄약 부족을 호소했다. 지난 6월 초 남부 전선에서 대반격을 시작하면서 포탄, 총탄 등 다량의 탄약이 한층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대반격 이후 방어선을 뚫기 위한 근접전을 벌이면서 하루 최대 7000~8000발의 탄약을 쓰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군사 전문가인 프레드릭 W. 케이건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우크라이나는 남쪽으로 진격하기 위해 보병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란 탄약과 같은 소총 탄약도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탄약은 더욱 중요해졌지만 서방의 생산 능력은 달리고 있다. 타임지에 따르면 미국은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전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군용 탄약공장 86개를 보유했지만 현재는 5개에 불과하다. 유럽도 1990년대 탈냉전 이후 군수산업이 축소돼 탄약 생산량이 줄었다.
미국은 올 초부터 탄약 생산량을 2배 이상으로 늘리고, EU에선 지난 6월 방산업계에 EU 기금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탄약 생산 지원법'을 추진하는 등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의 수요를 충당할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BBC는 지적했다. 아울러 최근 탄약 가격이 급등하면서 점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라 서방의 지원 여력에 한계가 온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러, 탄약 생산량 7배 많아
반면 러시아는 지난해 중반부터 하루에 최대 6만발의 포탄을 쓰는 등 어마어마한 탄약을 소모했는데도 여전히 우크라이나보다 많은 탄약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스티 삼 에스토니아 국방부 차관은 "현재 러시아의 탄약 생산량은 서방보다 7배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탄약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품질을 희생하면서 가격을 낮췄다. NYT에 따르면 서방의 155㎜ 포탄 제조 비용은 5000~6000달러(675만~810만원)인데, 러시아의 152㎜ 포탄 제조 비용은 600달러(81만원)에 불과하다. 또 아르메니아, 튀르키예 등 제3국을 거치는 방식으로 군수 물자를 조달하고, 북한으로부터 탄약을 공급받는 등 서방 제재를 우회하고 있다.
대경대 부설 한국군사연구소 김기원 교수는 "우크라이나는 향후 러시아와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 탄약을 계속 소모하면서 버텨야 하는지라 서방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탄약 비축 물량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탄약 지원 압박이 한층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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