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 안된다더니…외교·통일부, 위헌 결정에도 과거 모른척
" “표현의 자유도 헌법상 권리이지만 접경 지역 국민의 생명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
통일부가 국회에서 대북전단살포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 이하 전단법)이 처리된 직후인 2020년 12월 15일 배포한 ‘대북전단 규제 관련 설명자료’의 일부다. 지난달 26일 전단법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본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는 정반대의 논리다. 당시 외교부 역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인권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강경화 장관 2020년 12월 17일 미 CNN 인터뷰)라며 힘을 보탰다.
북한의 대북 전단 반발에 따른 당시 여당의 속전속결 입법 뒤 이처럼 후속조치를 도맡은 외교부와 통일부가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 보인 태도는 자기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불과 2년 10개월 전 전단법 홍보에 열을 올렸던 과거는 모르는 척하며 위헌을 “환영한다”고 180도 입장을 바꿨을 뿐이다. 위헌법을 옹호하기 위해 낭비한 행정력과 외교력에 대한 유감 표명조차 없다.
돌변한 외교·통일부, 딴소리에 모른 척
외교부는 위헌 결정 이후 줄곧 침묵했다. 중앙일보가 지난 4일 관련 입장을 문의하자 하루 지나서야 “위헌 결정을 환영한다”며 “관련 부처와 협력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과거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며 전단법을 옹호한 데 따른 반성이나 사과는 없었다.
통일부는 헌재 결정 직후인 지난달 26일 “지난 정부에서 남북관계발전법을 졸속으로 개정해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되고 북한 주민의 알 권리도 침해되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라며 전 정부 탓부터 했다. 중앙일보가 4일 ‘유감 표명을 할 계획이 있느냐’고 질의하자 5일 “헌재의 판결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겸허한 수용’이란 소극적 표현으로 유감 표명조차 피해갔다.
가짜뉴스 유포, 유엔과 각 세운 통일부
사실 전단법 위헌 결정의 핵심 근거인 표현의 자유 침해는 입법 당시부터 미국과 영국 등 각국 의회와 인권단체 등 국제사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우려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외교부와 통일부는 이런 우려를 인지하면서도 전단법 ‘전도사’를 자처했다.
2020년 12월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표현의 자유 침해를 우려하며 법 재고를 권고하자, 통일부는 그를 저격했다. 입장 자료를 통해 “유감”을 표명하며 “다수의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안전 보호를 위해 소수의 표현 방식을 최소한으로 제한했다는 점을 균형 있게 보라”고 훈계까지 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전직 당국자는 “지난해 11월 통일부가 헌법재판소에 이전과 달라진 입장문을 보낼 때라도 통일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한 번 짚었어야 했다”며 “과거에 잘못이 있었더라도 그 과정을 되짚고 바로 잡는다면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앞으로 윗선에서 계속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제 여론전 나선 외교부
2021년 4월 미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전단법에 대한 청문회를 열자 외교부 당국자는 출입기자들에게 연락해 “(톰 랜토스 인권위는)일부 의원만 참여하며, 결정권도 없다. 미 의회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오도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통일부도 톰 랜토스 인권위를 “정책연구모임”에 비유하며 사실상 폄훼했다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다.
태생부터 北 눈치만
이런 ‘위헌적 무리수’는 북한의 하명 성격이 강했던 전단법의 태생과도 직결된다. 2020년 6월 4일 당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쓰레기 광대놀음”에 비유하며 “이를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는 김 부부장 담화 4시간 만에 현안 브리핑을 자처해 “(전단 살포로 인한) 접경 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오히려 도발 수위를 높였다. 통일부 입장 발표 닷새만인 2020년 6월 9일 북한은 남북 통신연락선을 차단했고, 6월 16일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당·정·청은 한 뜻으로 전단법을 밀어붙였다. 청와대 주도로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로 인한 문제점을 취합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승리 후 핵심 입법 과제로 전단법을 추진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당시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전단 살포를 “한 탈북자의 객기와 그 단체의 모금 활동을 위한 이벤트 사업”으로 표현, 전단 살포 자체를 죄악시하는 여당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줬다.
당시 당·정·청 간 대북전단 문제를 조율했던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긴장과 접경지역 주민 피해 등 모든 걸 무시하고 표현의 자유만 보장할 순 없다는 게 청와대의 결론이었고 당연히 통일부와 외교부에도 가이드라인으로 이같은 입장이 내려갔다”며 “구체적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통일부·외교부엔 국내·외 여론 관리 및 제도 개선 검토를, 당에는 총선 이후 핵심 입법 과제로 대북전단살포금지법 통과를 당부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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