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일상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2023. 10. 6. 04:0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얼마 전 과거의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일상적인 폭력이 한 세대 만에 전반적으로 사라진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태도도 문제지만, 폭력의 논리에 순응해 힘이 없으면 알아서 굴복하고 정의롭고도 정상적인 절차를 기대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우선 과거의 폭력이 초래한 결과를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할 일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손화철(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


얼마 전 과거의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인기 비결에는 중년층의 공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기억의 상당 부분은 체벌과 폭력이다. 좋은 선생님과 친구도 많았지만, ‘사랑의 매’와 싸움이 너무 흔해서 나중엔 익숙해지고 말았다. 체벌과 좀 거친 친구들이 생산하는 불안과 공포는 학교의 공기 같은 것이었는데, 그 와중에 어떻게 웃고 떠들고 친구를 사귀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직접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니어도 지금 50대 이상인 이들에게 폭력은 일상이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한테 맞고 군대에서는 선임에게 맞고 불심검문을 받다가 경찰한테 맞았다. 선배는 후배를 때리고 부모는 자식을, 남편은 아내를 때렸다. 폭력은 일종의 문화여서 심지어 교회 중고등부나 신학교에서도 선배의 ‘집합’이 있었다. 지금 기준으론 어처구니없지만,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일상적인 폭력이 한 세대 만에 전반적으로 사라진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폭력을 자행하거나 당하고, 거기 익숙해진 이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 시절 학생과 후임을 때리던 선생과 선임, 방패를 내리찍던 전경과 그의 상사, 그리고 그 폭력의 피해자와 방관자가 오늘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가 됐다. 옛날 우리가 자연스레 내재화했던 폭력의 뿌리는 다시 새로운 방식의 다양한 폭력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물리적 폭력은 줄었으나 그 여파에서까지 자유롭지는 못한 셈이다.

극복하지 못한 일상적 폭력의 흔적과 트라우마는 갈수록 심해져만 가는 사회적 갈등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정상적 대화와 토론의 부재, 그리고 뒤틀린 의사소통이다. 토론은 이견을 가진 이들이 논리로 경쟁하고 이해득실을 조정하는 과정인데, 폭력에 일찍 노출된 사람에겐 낯선 일이다. 이견과 갈등을 물리적 싸움처럼 인식하기 때문에 그 상황을 직면하기보다 가능한 피하고, 피하지 못하면 막말과 위협, 억지로 대처한다. 협상, 타협, 상생보다 일방적 승리와 패배 사이의 양자택일만 생각하니 대립이 격해지는 건 당연하다. 의견 차이를 이념 투쟁으로 치환하고, 사소한 권력관계에서 갑질을 하고, 힘이 있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식의 논리가 통용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태도도 문제지만, 폭력의 논리에 순응해 힘이 없으면 알아서 굴복하고 정의롭고도 정상적인 절차를 기대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자신이 강자가 되는 상황에서는 마음껏 뻔뻔하게 행동하고,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면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전횡에 알아서 입을 다문다. 오랜 노력 끝에 민주적 법과 제도를 확립해 뒀지만, 이번에는 법과 제도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새로운 강자로 등장해 군림한다.

과거에 일상적이었던 폭력이 다른 방식으로 자꾸 재생산되는 상황을 극복할 방안은 무엇일까. 우선 과거의 폭력이 초래한 결과를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할 일이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채운 전쟁, 국가 권력, 차별과 혐오가 초래한 폭력,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경험한 크고 작은 폭력이 기성세대에 남긴 상처를 직시해야 한다. 그 자각에 기대어 무의식적으로 장착된 폭력의 논리를 의식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폭력에서의 해방이 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에 기독교회의 역할이 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시 나타나는 폭력의 악순환을 과감하게 끊어내는 힘이 사랑과 평화, 정의의 복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한다고 하신 그리스도, 약한 자와 병든 자를 치료하고 고아와 과부를 먼저 돌아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것은 세상을 섬길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오래 자란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다.

손화철(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