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동성결합 법적 편입, 법원에 맡길 것인가?
얼마 전 동료 법조인으로부터 “대한민국 운명은 판사 펜 끝에 달려 있다”는 말을 들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도 판사 한 명이 발부 또는 기각을 결정한다. 경우의 수대로 시나리오를 써봐도 국정에 엄청난 변수를 가져올 게 분명하지 않나”는 거였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판사들이 내리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
「 동성 커플 피부양 자격 인정 판결
‘혼인은 남녀 결합’ 법체계와 배치
성적지향, 선천적이라 단정 못 해
사회적 합의 및 입법 절차 밟아야
」
올해 초엔 ‘동성결합 상대방에게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라’는 꽤 놀랄만한 하급심 판결이 나왔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동성결합이 남녀결합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고, 구체적 입법 없이 혼인의 의미를 동성결합에까지 확대해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단의 자격 불인정이 적법하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이성 관계인 사실혼 배우자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동성 관계인 동성결합 상대방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대하여 성적지향(性的指向)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위법이란 판단을 내렸다. 특히 “동성결합은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에 대한 의사의 합치 및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 관계를 전제한다. 이제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는 열변까지 토했다. 1심과 2심의 결론이 엇갈린 이 사건은 현재 최종심인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2심이 성적지향은 선택이 아닌 본성이라고 단정한 점이다. 그러나, 동성애 취향이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1900년대 연구들은 금세기 들어 과학적 근거들이 탄핵받고 있다. 2016년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팀은 200개 이상 동성애 관련 논문을 분석한 결과 성적지향이 선천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정신의학회 홈페이지에도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의 원인을 묻는 말에 ‘모른다’는 답을 달아 놓았다. 오히려 동성애 운동가들은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물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많이 한다. 선택권을 강조한 것이다.
가장 근본적 문제는 법률상 또는 사실혼 배우자가 ‘남녀 사이의 결합’인 혼인을 전제한 개념이라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조 제2항 제1호는 피부양자의 자격요건을 ‘혼인’을 전제로 한 ‘배우자’로 한정하고, 헌법재판소나 대법원도 ‘혼인’에 관하여 ‘1남 1녀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이라는 명확한 정의적 해석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녀에 한하지 않은 사회적 결합관계를 혼인에 준하는 공동체로 포섭할 것인지는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둔 ‘입법자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개별적 효력을 갖는 사법작용을 통해 뚝딱 결론을 낼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동성결합 피부양자 자격인정이 건강보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국민연금법, 군인연금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각종 사회보장 관련 법령은 ‘동성결합 상대방’에게 사회보장수급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위 법률들이 모두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에 해당한다면 전체 법질서의 체계 정합성이 적잖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가족의 개념이 혼란에 빠지고, 동성결혼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른다. 모든 법령, 조례와 규칙, 각종 제도 및 정책 전체를 유기적으로 고찰해야 할 문제다.
현재 동성결합은 대한민국의 사회적 시스템과 법률적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지 않다. 동성 관계의 여러 유형 중 어디까지 동성결합으로 볼 건지, 동성결합을 참칭하는 경우 어떤 방법으로 진위를 가릴 건지 학문적 논의조차 찾기 힘들다. 개념 정립과 편입 여부에 관한 사회적 논의들이 성숙했다고 보기 어렵고, 구성원들의 폭넓은 공감을 받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법률과 판례도 마찬가지다. 사실혼 배우자에겐 일정한 권리·의무 내지 지위를 부여하고, 법률혼에 준하는 효과를 인정한다. 그러나 동성결합 상대방에겐 어떤 법률에서도 권리·의무나 지위를 부여하고 있지 않고, 판례도 가족관계에 준하는 생활공동체로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동성결합 상대방과 사실혼 배우자를 동일하게 보고 피부양자 규정을 똑같이 적용한 건 판사들이 입법부를 대신해 법률을 창설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과연 동성결합을 사회보장제도에 편입할 것인지, 편입한다면 어떤 입법론을 선택할 것인지는 전체 법질서를 염두에 둔 열띤 토론과 치밀한 검토를 통해 ‘사회적 합의’로 해결할 문제다. 단순히 법원의 판단에 기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또는 정책적 이슈다. 판사들이 시대의 흐름을 좌우하고 국민을 선도하려는 생각은 좀 자제해 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순실 파문에도 “지소미아”…“누가 보면 제정신 아니었다” [박근혜 회고록 3] | 중앙일보
- '이사 파티 참가비'가 7000만원…中갑부들 일본행 택한 이유 [세계 한잔] | 중앙일보
- K9 80발중 3발만 北 적중? 위성이 알려준 '연평 포격전 진실’ | 중앙일보
- '가을의 전설' 58세 여배우 "28년전 성폭력 당했다"…소송 제기 | 중앙일보
- 라켓 부순 권순우, 비매너 여파? 유빈과 열애 5개월 만에 결별 | 중앙일보
- "52층서 반려견 안고 뛰었다" 타워팰리스 화재, 150명 대피소동 | 중앙일보
- 파리 '빈대' 출몰 또…이번엔 고등학교, 교사·학생 등교 거부했다 | 중앙일보
- 김신혜 누명 벗기나…재심 전문 박준영 "난 오해 받아도 돼요" [박성우의 사이드바] | 중앙일보
- "월 100만원 더 줄게, 가지마요" 전공의 붙잡는 지자체 안간힘 | 중앙일보
- "망할 일 끝냈다"…과로∙저임금에 환멸 느낀 中젊은층 '퇴직파티'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