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의 한반도평화워치] 한·미·일 협력 강화하되 한·중 관계도 발전시켜야

2023. 10. 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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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 전 베트남 대사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는 무엇보다 미·중 경쟁 격화의 산물이다. 미국이 중국을 의식해 안보·기술·경제를 포함한 전방위적 한·미·일 협력 체제의 형성을 주도했다.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외교의 근간으로 하는 우리 정부가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과감히 결단한 것도 이 체제 발족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 한·미·일 체제는 우리 외교의 새 지평을 열어 국익을 극대화하는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다만 자칫 진영 외교의 수단이 되어 버리면 국익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 양날의 칼이라는 측면도 있다.

「 경제위축 땐 우리 발언권 약화
성장 위해선 한·중 협력 필수적
중국도 한·일과 관계 개선 추진
한중일 회의에 외교력 발휘를

캠프 데이비드 이후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활발하게 진행되는 한·중·일 정상회의 준비다. 한·미·일 정상회의는 중국이 2019년 개최 이후 중단한 한·중·일 정상회의 재개에 적극적 자세를 보이는 자극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북·중·러 협력 구도 강화보다는 한·중·일 정상회의 복원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군사·안보와 가치·체제의 면에서 미국·서방 진영에 대항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인해 북·러와의 관계에 중요성을 두고 있다. 그러나 경제 발전을 통한 ‘중국몽’ 실현을 위해서는 압도적인 무역·투자 파트너인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을 수 없다.

‘불량 국가’ 낙인 피하고 싶은 중국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부터).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9월 김정은·푸틴 회동을 통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에 식량·에너지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반면 중국은 ‘불량 국가’로 낙인 찍힌 러시아·북한과 달리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해 러시아가 전쟁을 장기화한다면 미국·서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비 지원 부담이 커져 ‘지원 피로’ 현상이 생기는 게 중국에 이로울 수 있다. 또 러시아가 북한에 식량·에너지를 제공하면 중국의 대북 지원 부담이 줄어 중국이 내심 환영하고 있을지 모른다. 중국은 군사·안보 면에서 한·미·일에 대항하는 북·중·러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보면 북·중·러 협력은 중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보적으로도 부담이 될 수 있고 불량 국가들과 동렬에 놓여 이미지를 손상하는 측면이 크다.

중국에 북·중·러 연대는 일종의 지정학적 ‘필요악’이다. 하지만 군사력 증강과 함께 서방 진영과의 경제적 파트너십을 증대시켜 미국을 누르고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이 됨으로써 경제·군사 면에서 명실공히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실현하는 것이 중국의 지상 목표이다. 중국은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한·중·일 정상회의를 재개하여 한·일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한·중·일 협의·협력 체제를 강화함으로써 한·미·일 체제를 약화하고 나아가 미국과의 관계 회복의 활로를 찾으려 할 것이다.

미·일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

한국은 중국의 이런 속내를 파악해 현명한 외교 전략이 요구된다. 첫째, 한·미·일 체제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한·미·일에 갇히지 말고 우리 외교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먼저 중국이 한·미·일 체제 탄생으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이 더욱 커졌음을 활용하여 중국과 당당하면서 안정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은 지역 평화와 안정 유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이 평화·안정의 저해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한·중·일 정상회의를 통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한·미·일 체제 정신과 충돌하지 않고 부합한다.

또 한국으로서는 경제가 쇠락하면 한·미·일 체제 내 역할과 위상이 축소돼 왜소한 파트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한·미·일 체제에서 우리가 중요한 일원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몸집을 계속 키워야 한다. 경제·안보적 제약 아래에서도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경제 관계 증대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참석하게 하기 위한 미·중 협의나 일본의 치밀한 대중 관계 개선 행보 등을 보면 미·일에도 중국은 경쟁자일 뿐 아니라 파트너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이 대국인 미·일과의 관계를 우선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대중 관계에서 미·일에 뒤처지지 않도록 세심한 대응이 필요하다.

일본의 대 북·러 접근 동향 주시해야

그런 점에서 올해 한국에서 개최될 한·중·일 정상회의 성공을 위해 한국이 외교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또 미·중·일, 특히 일본이 러시아·북한에 대해 어떤 접근을 하는지 늘 주시하고, 북·러와의 관계 추진 방향에 대해 깊은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 한·미·일 협력을 지속가능한 체제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내외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에 따라 외교정책의 지속성이 흔들리기 쉽다.

일본은 한·미·일 협력에 적극적인 자민당 독주 체제가 당분간 변하지 않겠지만, 미국은 동맹 강화에 적극적이지 않은 트럼프 같은 인물이 집권하면 한·미·일 협력 체제가 손상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친미·친중을 두고 여야 간 상당한 전략적·정서적 괴리가 존재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이 한·미·일 체제를 공고히 해나감과 동시에 한·중·일 협력 증진과 안정적 한·중 관계를 추구해 나가면 여·야 간 간격이 좁혀지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또 정부가 정치적 유혹에 끌리지 말고 일관되게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기조를 견지하는 것이 한·미·일 체제 강화에 불가결하다.

끝으로 우리에게 사활적 핵심 외교 문제를 위하여 학계·언론계 등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이 수렴되는 것이 절실하다. 자칫 진영 논리적 분열을 촉발하기 쉬운 ‘집단 지성’보다는 통합적·의견수렴적 ‘집단 지혜’를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좌우를 초월하여 국익만이 영원함을 되새겨 볼 시점이다.

이혁 전 베트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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