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마켓 나우] 대중국 ‘디리스킹’ 전략의 이면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은 유럽연합(EU)에 가능한 정책대안이 아니다. ‘디리스킹(de-risking)’해야 한다.”
지난 3월 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앞두고 EU의 대중국 정책을 이렇게 표현했다. EU 27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 중국이기에 경제관계 단절은 불가능하고, 지나친 의존에 따른 리스크를 차차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5월 중순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서방선진 7개국(G7) 정상회담 공동성명도 중국과 ‘디리스킹’하겠다는 문구가 그대로 나온다. 이를 두고 유럽 일각에서는 유럽의 의견을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반영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정책은 반도체·인공지능 같은 첨단 분야에서 엄격한 대중국 수출 규제를 자국 업체뿐만 아니라 동맹국 기업으로 확대해 중국의 미국 따라잡기 속도를 늦추겠다는 것이다. 교역을 끊겠다는 게 아니다. 미·중 교역량도 이를 확인한다. 2022년 미·중 교역량이 6906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토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는 미 의회에서조차 민주·공화 양당은 대중 강경정책에서 초당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지만 정치적 수사와 경제적 현실의 격차는 어쩔 수 없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은 디리스킹을 서서히 시행 중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을 놓지 않으려 한다. 미국의 애플과 인텔은 위험분산 전략인 ‘차이나 플러스 원(C+1)’을 채택했다. 중국 제조공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베트남·인도 등지에 신규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차이나 포 차이나’(China for China) 전략을 고안해낸 기업들도 있다. 중국에서 거의 모든 원자재를 조달해 중국에서만 판매한다. 중국 법인을 전체 법인에서 분리해 운영한다. 지난 7월 개정된 중국의 ‘반간첩법’은 간첩 행위의 정의와 적용 범위를 넓히고, 안보 기관의 단속 권한을 확대했다. 새 법에 저촉되지 않으려고 다국적 기업들은 생존 방안을 강구했다.
베이징 소재 유럽상공회의소가 회원사 중 57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6월 설문조사 결과 11%만이 중국의 생산시설을 이전했다. 지난해 미국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12%만이 중국 이외의 나라로 공급망 이전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도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과 비슷한 처지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7월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 시장을 다 잃어버리고 갑자기 대체 시장을 찾아내긴 힘들다”라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중 교역이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이래저래 기업들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였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교수(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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