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버드라이트’…인플루언서가 독 됐다 [경영칼럼]
1위 자리 잃고 주가 뚝…브랜드 정합성 중요
미국을 상징하는 맥주 브랜드 버드라이트(Bud Light)는 2001년부터 20년이 넘도록 미국 시장 판매량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왔다. 라거 맥주 시장에서는 5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기록이 2023년 5월 깨졌다. 버드라이트의 5월 소매점 매출은 전월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점유율에서도 정상 자리를 뺏겼다. 버드라이트 제조사 AB인베브의 2분기 매출은 14%, 주가는 17% 폭락했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Dylan Mulvaney)와의 협업이 화근이었다. 아역 배우 출신인 멀바니는 2022년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임을 밝혀 주목받았다. 이후 여성처럼 보이기 위한 수차례 수술 과정을 공개해 1000만명 이상 팔로워를 갖게 됐다. 2023년 3월, 버드라이트는 멀바니의 팟캐스트 1주년을 축하하며 멀바니 얼굴이 그려진 캔맥주를 특별 제작했다. 멀바니는 이 맥주를 홍보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으로 공개했다. 영상이 빠르게 퍼지며 불편함을 느낀 소비자 반발이 거세졌다.
정치인, 운동 선수, 뮤지션 등 유명 인사를 비롯한 보수 성향 소비자들은 불매 의사를 강하게 표현했다. 가수 키드 록(Kid Rock)은 버드라이트를 쌓아두고 라이플총을 난사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멀바니의 성 인식을 문제 삼았던 여성 인권 운동가들이 합세하고, 멀바니를 지켜야 한다는 ‘LGBTQ+’ 단체의 목소리까지 커지면서 그야말로 시장은 분열과 비난으로 들끓었다. 버드라이트는 담당 임원 2명을 휴직 처분했다. 아울러 온 가족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전형적인 광고를 내보내며 사태를 무마시켰다.
버드라이트 사태는 흔히 활용되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유명인을 내세우면 주목받기는 쉽지만, 브랜드와의 정합성이 부족하면 정체성이 희석되고 기존 고객이 이질감과 반감을 느낄 수 있다. 소비자는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보의 원천이 자신과 유사하거나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람일 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브랜드와 정보 원천 간 개성과 이미지의 일관성, 정합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지난 10여년간 맥주 시장은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개성 강한 지역 브랜드 강세가 이어졌다. 주 고객층이 중장년층인 버드라이트는 1위 자리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판매나 점유율은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젊은 층을 유인하기 위해 탄산이 강한 버드라이트 셀처(Seltzer), 라임, 오렌지 향 버드라이트 등을 내놨고, 멀바니 협찬도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대중성 강한 브랜드가 인구의 2%가 채 안 되는 트랜스젠더 세그먼트를 중심으로 캠페인을 벌인 것은 무리였다. 평소 버드라이트를 즐기는 평균적인 미국인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을 내세운 셈이다. 눈길을 끌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공감하거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소비자는 드물었다. 버드라이트의 멀바니 협찬은 돌발 행동과 같았다. 오랜 기간 관계를 이어온 충성 고객에 대한 기본 예의가 부족하다는 비난도 나왔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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