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곧 나’ 라는 잘못된 믿음을 벗어 던져라
시몬 스톨조프 지음, 노태복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04쪽, 1만8000원
“화이트칼라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직업이 종교적 정체성과 비슷해졌다. 그들에게 직업은 급여와 더불어 삶의 의미, 공동체, 나아가 목적의식까지 부여한다.”
일이 종교가 되고, 직업이 꿈이 된 시대다. 현대의 일에는 급여나 지위 외에도 꿈, 소명, 자아실현 같은 의미가 붙어 있다. 그래서 일을 사랑해야 되고,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며, 일이 삶의 바탕이자 핵심이라고, 일이 그 사람과 그의 삶에 대해서 거의 전부를 말해준다고 여긴다.
‘워킹 데드 해방일지’는 현대의 일중심주의(워키즘)를 떠받치는 이런 믿음들이 착각이라고 비판하는 책이다. 그러면서 일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일을 통해서 의미, 목적, 그리고 평생 친구들을 얻었다. 하지만 직업이 내게 준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가기에 충분한 돈이다. 결국 요점을 말하자면, 직업은 경제적 계약이다. 직업은 노동과 돈을 서로 교환하는 일이다. 그걸 똑똑히 이해할수록 더 좋다.”
미국의 1990년생 논픽션 작가인 시몬 스톨조프는 “나는 일을 거래로 보는 방식이 고용인과 피고용인 모두를 해방시킨다고 생각한다”면서 “가장 중요하게는, 피고용인이 일을 삶의 전부가 아닌 하나의 생계 수단으로 취급하게 된다”고 말한다.
일과 직업의 위상이 안정성의 원천에서 자기실현의 원천으로 바뀐 것은 우리 시대의 중대한 변화다. 우리 내면에는 주구장창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일 중심성이 덜한 존재를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줄기차게 무언가를 하지 않고서도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경제적 가치 생산을 넘어선 무언가를 하기 위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생각은 희미해지고 있다.
저자는 일중심주의가 종종 부조리의 먹잇감이 된다고 지적한다. “직업은 언제나 우선적으로 경제적 관계다”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가족 같은 회사’라는 유행어에 대해서 “그런 정서가 진짜일 수는 없다. 가족과 기업은 서로 근본적인 목적이 다르다”고 비판하면서 ‘가족 같은 회사’ 대신 ‘노조가 있는 직장’이 더 낫다고 얘기한다.
사내 복지에 대해서도 “회사가 직원의 복지를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회사에 이익이 될 때뿐”이라면서 “저녁 식사와 귀가 교통비 제공이라는 두 가지 특전이 장시간 노동의 핵심”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장시간 노동을 거부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출근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집에 가는 것이다”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또 “일을 줄이고 여유 시간이 많아지면 우리는 더 나은 친구와 이웃이 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일이 중심인 삶에는 분명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번아웃, 우울증, 과로사 등이 늘어나는 것은 일중심주의의 병증들이다. 특히 일을 잃어버렸을 때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겪게 된다. “바닥을 쳐서 사회가 기대하고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생산해내거나 세상에 기여하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고 이렇게 질문해요. 나 자신이 가치가 있나?”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직업 하나로 규정하면 위험하다고 말한다. 직업 외에 다른 정체성을 다양하게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족 구성원으로서, 이웃이나 주민으로서, 남을 돌보고 연대하는 사람으로서,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으로서, 창조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그는 “일과 가장 건강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서 “그들은 모두 일하지 않고 있을 때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이 책은 일만 하다가 죽는 존재, 일밖에 모르는 좀비처럼 살아가는 존재인 ‘워킹 데드’에서 해방될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핵심은 일과 삶, 일과 자신을 분리하고 그 둘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는 다르다. 일에 부여된 의미가 터무니 없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직업에 대한 우리의 기대 역시 지나친 게 아닌가 묻는다. 직업이란 “노동과 돈을 서로 교환하는 일”이며 인간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하러 가서, 돈을 벌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직업이란 그 정도면 괜찮다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최근 번역된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세라 자페의 책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도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 사랑, 꿈, 열정, 사명감 같은 말로 포장되는 돌봄노동, 가사노동, 교사, 판매직, 비영리단체, 예술가, 인턴, 개발자, 운동선수 등을 차례로 다루며 “좋아서 하는 일” “사랑해서 하는 일” “즐기면서 하는 일”이란 신화 이면의 노동 착취를 고발한다. 저자는 “사랑해서 하는 일이라는 ‘사랑의 노동’은 사기”라고, 일이 자기실현 같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현대의 노동 윤리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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