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예인 출신 사장, 또 성추행 감형…'꼼수감형' 루트된 형사공탁

이창훈 2023. 10. 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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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출신으로 수백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A(38)씨. 지난해부터 직원들에게 재떨이에 담긴 액체를 마시게 하는 등 직원들을 수차례 폭행하고 성추행한 혐의로 3차례 기소됐지만, 번번이 감형을 받았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도 공탁금을 낼 수 있는 형사특례공탁(형사공탁)으로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1000만원씩 낸 공탁금이 A씨의 감형 사유로 참작됐기 때문이다.

폭행 장면. 사진 연합뉴스TV 캡처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이종민 판사는 지난달 5일 A씨의 근로기준법 8조(폭행 금지)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2021년 7월 밤 11시경 자신의 사무실에서 술판을 벌이다 자신의 회사 직원인 남성 B씨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이 자리에서 B씨가 사내 연애를 하는 것에 시비를 걸고 B씨가 부인하자, 돌연 왼손 손등으로 B씨의 코와 인중 부근을 가격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B씨를 위해 500만원을 법원에 공탁한 점을 감안해, 벌금형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근로기준법 8조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지만 동종 전과가 없는 점과 공탁금을 낸 점이 주요한 감형 사유로 반영됐다.

A씨는 성추행 사건에서도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지만 공탁금을 내 감형을 받기도 했다. A씨는 노래방에서 여성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7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재판에서도 A씨가 피해자에게 1000만원을 공탁한 점이 참작됐다. 형법상 강제추행은 법정형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또 지난 2월엔 부하 직원과 술을 마시던 중 팔굽혀펴기를 시킨 뒤 재떨이에 담긴 액체를 마시라고 시켰고, 이를 부하직원이 거부하자 머리를 가격한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때에도 A씨는 1000만원을 공탁했다.

세 차례 재판에서 피해자들은 모두 A씨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럼에도 A씨가 피해자 동의 없이 법원을 통해 ‘기습 공탁’한 게 감형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형사공탁 급증…3명 중 2명 수령 거부


피해자 개인정보를 몰라도, 피해자 동의가 없어도 공탁금을 낼 수 있는 형사공탁제도가 지난 5일 도입 300일을 맞았다. 절차 진행과정에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알려지거나 그로 인해 합의를 강요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2차 피해의 소지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온 변제공탁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도입된 제도다. 기존의 변제공탁은 피공탁인인 피해자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아야 법원에 공탁금을 낼 수 있지만 형사공탁은 피해자의 이름과 사건번호, 관할 검찰청·법원 정보만으로도 공탁금을 신청할 수 있다.
차준홍 기자

그러나 성범죄와 폭행 사건 등에서 엄벌을 원하는 피해자의 의사와 달리 감형을 위한 ‘기습공탁’이 반복되면서 꼼수 감형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형사공탁제도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확인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9일 형사공탁제 도입 후 지난달까지 법원에 1만8964건(1151억8782만원)의 형사공탁이 접수됐다. 월 평균 1896건으로 지난 6월에는 가장 많은 2369건이 접수되기도 했다. 같은 기간 형사 사건에서 접수된 변제공탁은 2143건(430억7726만원)으로 형사공탁의 11.3%에 불과했다.

공탁 접수는 늘었지만 정작 같은 기간 공탁금을 찾아가는 비율은 대폭 감소했다. 형사공탁 지급 건수는 6828건(475억4906만원)으로 신청 대비 36.0%에 불과했다. 피해자가 찾아가지 않는 경우가 3건 당 2건 꼴이라는 의미다. 반면 변제공탁은 2271건(304억3526만원)이 지급돼 105.9%의 지급률을 보였다. 형사공탁제가 도입돼 과거보다 피고인들이 공탁금을 내기는 쉬워졌지만 진정한 반성이나 피해자와 합의 없는 ‘기습공탁’이 빈번해 피해자들이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생긴 현상이다.

지난해 8월 경북 구미시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여중생의 허벅지를 만진 혐의(청소년성보호법상 강제추행)로 기소된 A씨는 지난 2월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엄벌을 원하고 있다”라고 밝혔지만 “500만원의 형사공탁을 한 점은 실질적 회복을 위해 일정 부분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벌금 1000만은 처단형의 최하한이다. A씨는 선고 보름 전 법원에 공탁금을 냈다.

1심 때 공탁금을 내고 감형 받은 뒤 2심에서 또 공탁금 내 이중의 감형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 SNS로 알게된 여중생을 상대로 나체 사진과 영상을 찍게 하고 전달받은 혐의로 기소된 B씨는 지난 1월 1심에서 양향기준상 권고형인 5년형보다 낮은 3년형을 선고 받았다. 공탁금 2000만원이 주요 감형 요인이었다. B씨는 하며 공탁금 1000만원을 추가로 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모친이 공탁과 관계 없이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 피고인이 임의으로 형사공탁을 했다는 사정만을 고려해 형을 감경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檢, ‘꼼수 감형’ 악용에 ’피해자 의사 고려해 판단해야”


검찰은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동의 없는 형사공탁이 감형 요인으로 반영되자 적극적으로 항소를 제기하거나 변론재개를 요청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장애인인 청소년을 강제추행한 사건에서 피고인이 변론종결 후 공탁금을 낸 사건에서 검찰은 피해자 모친에게 수령 의사가 없고 엄벌을 탄원한다는 확인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해 맞대응해 감형을 막은 사례가 있다.

법무부는 “변론종결 후 기습적인 형사공탁이 이루어진 경우 검찰이 피해자 의사를 신속히 확인해 재판부에 변론재개를 신청하거나, ‘공탁 경위, 금액, 피해 법익, 피해자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달라는 양형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세심하게 대응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창훈·윤지원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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