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떠난 여성, 그가 뉴질랜드에서 만난 현실

조영준 2023. 10. 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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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07]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개막작 <한국이 싫어서>

[조영준 기자]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장강명 작가가 2015년 써낸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는 학력, 재력, 외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평균 이하인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등장한다. 한국에서의 불행한 현재와 미래를 온몸으로 견디기보다 호주라는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삶을 선택한 주인공 계나의 삶이 대화 형식으로 그려지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현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폐부와 개인의 삶을 제한하는 수많은 족쇄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더 이상 견디고 버티는 삶이 아닌 스스로의 행복을 찾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를 대신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장건재 감독이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출간이 되던 그해였다고 한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듬해의 일이다. 시기적으로 여러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사회적으로도 많은 아픔이 있었던 때. 이 작품과의 만남은 감독에게도 공명하는 부분을 만들었고, 이를 영화화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은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프로젝트 마켓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빨리 행동에 옮긴 셈이다. 하지만 오랜 팬데믹 시간이 발목을 잡았고, 영화는 만으로 7년이나 흐른 후에야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상영작으로 선정되면서다.

02.
영화는 한국이 싫어서 뉴질랜드로 떠나고자 하는 계나(고아성 분)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대학 시절부터 7년이 넘게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 지명(김우겸 분), 넉넉하진 않지만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부모님, 그리고 나름 대기업으로 평가받는 번듯한 직장까지. 현재 자신의 자리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전혀 없는 상황도 아니다. 다만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학벌이 남들보다 뛰어난 것도 아닌데 까다롭기는 누구보다 까다로운 자신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서 여기에서는 더 이상 못 살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가볍지 않은 부분도 있다. 출근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지옥 같은 출퇴근길에 규칙과 공정의 틀까지 무너뜨리며 서로를 딛고 오르는 데만 여념이 없는 사람들.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납득할 수 없는 매일매일을 지나고 나면 마음은 금세 허탈해지고 만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도 몇 년이나 시험공부만 하며 쪽방에서 청춘을 소비하는 친구 경원의 모습과 낙후된 재개발 동네의 불안한 미래 역시 이 영화가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이 문제가 개인만의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는 장면들이다.

이처럼 영화는 시작부터 원작이 표현하고 있는 현시대의 여러 문제들, 특히 청년 계층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여러 병폐와 부조리함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계나가 한국을 떠나 향하게 되는 곳이라던가 영화의 결말의 부분처럼 소설과 다르게 각색이 된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영화라는 매체 위에서도 원작이 지적했던 사회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던 모든 이유의 장면들을 지나고 난 후에 집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지친 몸을 던지는 그녀.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는 듯이 멍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 눈동자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 이 땅을 떠나고야 말겠다던 그 결심을 결코 반대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허물어져 가기만 하는 듯하다던 계나의 결심을 영화는 그렇게 지지한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이 영화의 연출상 가장 큰 특징은 중심인물 계나가 서울을 떠나 뉴질랜드로 향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와 1년 전 아직 한국을 떠나기 직전의 시간이 교차되면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교차가 시작되고 난 이후 영화는 한국에서의 이야기와 뉴질랜드에서의 이야기에 의도적으로 대비의 장치들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따뜻한 분위기의 톤을 가진 한국을 떠난 이후의 삶과 차가운 분위기의 톤을 가진 한국을 떠나기 이전의 삶의 대비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북반구와 남반구라는 지리적 위치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계절적 요인도 영향을 주지만, 각각의 시간 속에서 계나가 느끼는 심리적 반향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야기의 마지막 자리에 놓이는 이미지에도 차이는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의 시퀀스가 끝나는 자리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뉴질랜드에서의 시퀀스 마지막에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놓이는 모습. 다만 이런 서로 다른 이미지의 교환이 의미하는 바가 단순히 공간의 의미적 분할에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교차 진행으로 이루어지는 양쪽의 이야기를 서로 더 밀접한 자리에, 계나의 심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시키는 부분이 있다. 현재의 계나(뉴질랜드)를 형성하고 있는 많은 부분이 과거의 계나(한국)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이 지금 말하는 이미지의 교환으로부터 획득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차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의 구성이 어느 한쪽을 절대적인 선(善)의 공간으로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 상의 계나가 마주하게 되는 뉴질랜드라는 공간 역시 처음에 뜻했던 대로 성공하고자 했던 바를 모두 쉽게 이룰 수 있는 곳으로는 그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곳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삶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여러 개의 직업을 전전해야 하고, 인종차별주의자를 만나게 되기도 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쌓이기도 하는 공간. 조금 옅은 농도이기는 하지만 어느 곳에나 그 삶을 짊어지기 위한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영화는 잊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다.

04.
"참고 기다리면서 이 악물고 살다 보면 결국 다 보상받게 되어 있어. 그게 인생이야."

엄마와 계나가 서로 마주 앉아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계나라는 인물이 어떤 계층을 대변하고 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이야기 위에서 왜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하는지 역시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장면이다. 시대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모두 끊임없이 일만 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담보해야 했던 부모 세대와 올지 안 올지 알 수도 없는 보상을 기다리며 현재의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현재 세대의 차이가 이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그런 세대 간의 간극 사이에서 여러 문제를 껴안고 있다.

극 중에서 등장하는 펭귄 파블로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 그리고 자신이 싫어하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이야기 속 펭귄 파블로의 모습은 그래서 계나의 모습과 온전히 닮아 있는 듯 보인다. 자신이 싫어하는 현재의 한국을 피하기 위해 다시 나아가고자 하는 그녀. 그래서일까? 두 번째 출국에 해당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원작과 다른 느낌이지만, 그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환경을 바꾸고자 노력하고 끝까지 모험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고자 하는지 그 기저의 심리만큼은 유사한 결을 느낄 수 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5.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건재 감독은 "영화의 제목이 강렬한 메시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극 중 계나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에서 표현되고 있듯이, 이 이야기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나누어야 할 실재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아마 이 영화를 마주한 관객이라면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고민은 이 작품의 타이틀 앞에 '왜'라는 부사 하나를 놓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계나가 왜 한국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이 사회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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