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크라 지원’ 여론 악화…‘한반도 파병’ 찬성 50% 그쳐
공화당 내 소수 강경파의 주도로 이뤄진 사상 초유의 하원의장 낙마에 이어, 예산 지출 중단을 뜻하는 ‘셧다운’ 사태에 다시 직면할 위기에 빠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의회 승인을 우회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를 뚫고 추진하려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미국인 사이에선 전과 달리 부정적인 의견이 늘고 있다. 특히 해외 군사 지원이 내년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한 미국인의 가중된 피로감이 한반도 안보 상황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바이든, 우크라 ‘우회지원’ 시사
바이든 대통령은 4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학자금 채무 탕감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상ㆍ하원에 우크라이나에 대해 지원하겠다고 했던 다수의 의원이 있다는 것을 안고 있다”며 “그 현안(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조만간 중대 연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이 다수를 점한 하원이 지난달 30일 임시예산안을 승인하며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제외한 것과 관련해선 “우리는 다음 지원분에 대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다른 수단들이 있다”며 의회의 예산 승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통령령 등 우회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할 뜻을 내비쳤다. 다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CNN은 이날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가 중동에서 압수한 110만발 규모의 7.62mm 탄약을 지난 2일 우크라이나에 양도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의회의 승인이 지연되자 압수한 무기를 우선 지원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유엔은 그러나 압수된 무기는 원칙적으로 보관하거나 폐기하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이란에서 압수한 무기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계속 지원할 경우 러시아와 이란의 반발은 물론 유엔 원칙 위배에 따른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우크라 지원 여론 급속히 냉각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회지원을 모색하는 배경과 관련 “게임즈맨십(gamesmanshipㆍ게임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시도)이 지원을 방해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며 ‘프리덤 오커스’ 등 공화당 강경파에 책임을 돌렸다. 그러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다수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은 틀린 말은 아니다. 이날 공개된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63%가 우크라이나에 추가 군수 물자 제공에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같은 조사에서 기록했던 79%와 비교하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찬성 여론은 분명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별로는 민주당 지지자의 77%, 공화당 지지자도 50%가 찬성 입장을 밝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의 찬성 여론은 불과 1년여만에 80%에서 50%로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게 가치가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 53%가 ‘그렇다’고 답했다. ‘지원할 가치가 없다’는 의견은 45%였다. 이 질문에 대해서도 민주당 지지자는 69% 대 29%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의 답변은 38% 대 61%로 완전히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부정여론, 한반도에도 ‘불똥’ 튀나
이를 두고 CCGA는 “역사적으로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에 비해 미군의 해외 주둔 등에 대해 보다 찬성하는 입장을 보여왔지만, 이러한 전례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고 있다”며 “공화당 지지자들의 변화는 한국과 일본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조사에서 북한이 한국을 침공할 경우 미군을 보내 방어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찬성한 응답은 50%에 그쳤다. 같은 질문에 대한 찬성 비율은 2021년 63%에 달했지만, 지난해 55%에 이어 지속적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의 찬성 비율은 같은 기간 ‘68%→54%→46%’로 보다 가파른 하향 곡선을 나타냈다.
중국이 일본을 침공할 경우 보호해야하느냐는 질문엔 반대(55%)가 찬성(43%)을 앞섰다. 주한ㆍ주일미군의 주둔의 필요성에는 각각 63%와 65%가 찬성 의견을 냈다. 1년전 조사에 비해 각각 14%포인트와 7%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미국의 보수층을 중심으로 동맹국에 예산을 투여한 안보 제공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미국인들은 한국과 일본, 대만과의 관계 강화가 미국 안보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 각각 71%, 77%, 65%의 비율로 찬성 의견을 밝혔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한ㆍ미ㆍ일 등 자유주의 연대 강화 정책은 한국은 물론 바이든 정부에게도 실질적 성과임에 틀림없다”면서도 “동맹국에 대한 군사ㆍ경제적 지원과 관련한 미국 여론이 내년 대선을 거치며 보다 악화될 경우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미국이 한반도 안보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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