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 없는 종신형...효과 없고 위헌 소지도 있어[김대근이 소리내다]
엄벌주의와 중형주의라는 유령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잇따른 범죄에 대해 정부가 형벌 강화를 시작으로 경찰 면책규정을 확대하고 불심검문을 강화하며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는 대책 등을 내놓고 있다.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형 집행 시설을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가석방 없는 무기형, 이른바 절대적 종신형의 도입은 지금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다.
법무부 입법예고와 이를 거의 그대로 발의한 의원의 개정 법률안(이하 입법예고 등)에 따르면 현행법상 사형제와 별도로 형법 제42조제2항에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근거를 둔다. 조문을 신설하여 법관이 무기형 선고 시, 가석방 허용 여부를 함께 선고하도록 한다. 사형 미집행으로 인한 공백과 가석방 가능성에 따른 국민 불안을 막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이 적극 도입하고 있다는 명분과 함께 범죄를 예방하고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사형 폐지 이후 대체 형벌의 하나로서 논의됐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사형과 함께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두는 제안은 낯설다. 입법예고 등에서 제시한 조문 상의 체계와 형식도 이례적이다. 무엇보다도 가석방 없는 무기형 그 자체가 효과성을 검증할 수 없고 법 이념과 교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단 입법예고 등은 사형을 유지하면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어느 범죄가 사형과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받게 될까. 죄형법정주의 이념에 따라 범죄와 형벌은 국회의 고유한 권한이며 행위 시에 미리 정해져야 한다. 법정형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을 규정하고 있는 범죄 구성요건을 일일이 검토해서 어느 범죄를 사형, 가석방 가능 무기형, 가석방 없는 무기형으로 처벌할지를 미리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치국가적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결국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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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 가능성 원천적으로 봉쇄
정작 문제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 그 자체에 있다. 가석방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종신형은 교화 및 개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수형자의 사회 복귀라는 교정 이념에 반한다. 희망이 없고 더 이상의 최고형이 존재하지 않은 교정시설에서 수형자가 규칙을 준수하고 바르게 생활할 동기가 있을까.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인간의 자유를 영구적이고 절대적으로 박탈한다는 점에서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 침해를 금지하는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과 충돌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문제점을 상쇄할 만큼의 범죄예방 효과가 가석방 없는 무기형에 있을지 의문이다. 먼저 사형의 효과성은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 국내외 학계의 통설이다. 대개 살인범죄자들이 범행 시에 사형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사형 미집행에도 불구하고 최근 살인 사건이 10년 전에 비해 거의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는 점(2022년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서 사형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형보다 가벼운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어떨까. 이 또한 효과를 검증할 수 없거나 특별한 효과는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같은 맥락에서 1977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종신형의 수형자도 다시금 자유를 부분적으로 향유할 기회를 받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어울리는 행형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2013년 유럽인권재판소(Vinter 사건)는 “감형이 금지되는 영국의 종신형이 유럽인권보호협약 제3조를 위반하여 수형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점을 들어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비판한다. 우리 헌법재판소(2008헌가23) 또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자연사할 때까지 수용자를 구금한다는 점에서 사형에 못지않은 형벌이고, 수형자와 공동체의 연대성을 영원히 단절시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대체형벌의 거대한 실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에서는 사형을 전면적으로 폐지한 결과 고작 4개국만이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대체형벌로 규정하고 대부분의 국가는 가석방이 가능한 무기형을 운용한다. 심지어 무기형이 아닌 유기징역을 최고형으로 두는 나라가 9개국이다. 법무부가 예시로 든 미국은 선진국에선 찾기 힘든 엄벌주의와 중형주의로 일관된 형사사법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물론 중국과 북한도 빈번한 사형 등으로 중형주의를 고수한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강력범죄는 끊이지 않으며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행 무기형으로도 영구적 격리 가능
물론 어느 수형자(무기수)가 교화 불가능하고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면 사회로부터 영구적인 격리가 필요할 수 있다. 이 경우 가석방을 불허하면 된다. 형법은 무기형은 20년이 지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을 ‘할 수 있다’(제72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한이 된 모든 무기수형자에게 가석방을 허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무기수형자들에게 가석방신청권을 부여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현행 무기징역형제도의 형집행 실무는 사실상 절대적 종신형을 본위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이 앞서 언급한 헌법재판소의 지적이다. 요컨대 흉악하고 위험한 범죄자를 사회로부터의 격리하는 일은 현행 법체계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기에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불필요하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비판하면 “가해자의 인권보다 피해자와 유족의 인권을 먼저 생각할 때”라는 반박이 나온다. 전형적인 허수아비의 오류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폐해와 부작용, 그리고 무용성과 불필요함을 지적하는 주장을 가해자 인권과 피해자 인권의 대립이라는 프레임으로 대체하고, 가해자 인권만 옹호한다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공격하는 셈이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비판하는 이유는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사회를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엄벌주의와 중형주의는 모두로부터 비난 받기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수용자를 재물 삼아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려고 한다. 법의 보호가 유보되고 권리가 박탈 당하는 지점이 주권의 예외 상태고, 누군가는 그 속에서 벌거벗은 생명으로 다루어지면서 권력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해 주는 장치로 전락할 뿐이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가석방 없는 무기형과 관련해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다른 시각을 ‘중앙일보 소리내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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