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PF시장]①'레고랜드 사태' 1년…부동산PF대출 최소 47兆는 '이자로 연명'
정부가 내놓은 PF 지원책 제대로 작동할지 여부도 미지수
잠재 부실 쌓여 9월, 내년 3·6월 등 주기적 위기설 되풀이 우려
국내외 부동산 금융발(發) 위기설과 시장금리 상승이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위기설의 진원지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연체율 상승 추세가 둔화하는 등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본다. 또 부실이 일부 발생하더라도 국내 금융시스템 내에서 충분히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좀 다르다.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PF대출 만기만 연장하는 사업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만기가 연장되면 금융회사의 연체율이나 부실비율은 올라가지 않는다.
해외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만기 도래하는 해외 투자 물량의 90%가 손실을 재무제표에 인식하지 않은 채로 만기를 연장하고 있다. 국내외 부동산 경기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부실이 우려되는 ‘잠재 부실’이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 9월에 위기가 촉발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만기 연장한 국내외 부동산 금융의 대규모 만기가 반복적으로 돌아오면서 올해 연말, 내년 3월, 내년 6월 등 위기설이 주기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 PF 대출 133조…만기만 계속 연장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부동산 PF대출 잔액은 총 133조1000억원 규모다. 올해 1분기 말 대비 1조5000억원 늘어났다. 은행과 보험사의 PF 대출이 각각 43조~44조원 규모로 가장 많고, 캐피탈사를 포함한 여신전문금융회사가 26조원으로 뒤를 이었다. 저축은행과 증권사는 각각 10조원, 5조5000억원의 PF 대출을 보유하고 있다.
PF 대출을 포함한 PF 실질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증권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PF 대출, 우발채무, 지분투자, 펀드 및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을 포함하는 증권 업계 PF 익스포저는 47조6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전인 6월 말 47조9000억원에서 소폭 줄어드는 데 그쳤다. 최근 1년간 신규 PF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만기 도래한 기존 PF 대출이 대부분 정상 회수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는 뜻이다.
이 중 시행사 지급보증, 채무인수, 유동화증권 매입 약정 등의 우발채무가 28조7000억원으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발채무는 시행사가 자금력이 바닥나는 경우 증권사가 시행사 대신 채무를 갚거나 PF 유동화증권을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당장 갚아야 할 채무는 아니지만, 시행사가 어려워지는 경우 직접적인 채무가 되기 때문에 우발채무라고 한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 하락과 공사비 상승으로 대부분의 시행사가 자금난에 처해 있다"면서 "PF 사업의 사업성이 떨어져 시간이 지날수록 우발채무의 상당 부분이 증권사의 채무상환 부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우발채무 외에 증권사의 PF 관련 직접대출과 지분투자도 8조3000억원에 이른다. 공·사모 펀드나 리츠를 통한 투자는 10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증권사의 PF 직접대출 중에서는 손실 가능성이 큰 중·후순위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직접대출의 연체율도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개발사업의 사업성 악화로 지분투자의 손실 위험도 확대됐다. 우발채무, 펀드, 리츠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다.
PF 사업성 악화로 올해 상반기에 만기 도래한 국내 PF 사업장 중 70% 이상이 대출 만기만 연장해 놓은 상태다. 본PF로 전환되지 않은 브리지론의 80%가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브리지론 그대로 만기를 연장했다. 브리지론은 개발 사업 인허가를 받기 전에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단기로 빌리는 대출이다. 브리지론은 본PF로 넘어가지 못하면 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
본PF도 50~60%가량의 대출이 만기 연장됐다. PF업계 관계자는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시행사들이 공사비 급증과 이자부담 증가 등으로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면서 "상당수의 PF 사업들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PF대출의 만기만 연장하는 상황에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내놓은 PF 지원책이 제대로 작동할지 여부도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PF 사업에 일부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은 금융회사의 디폴트 위험을 다소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개발 사업의 사업성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 등의 민간 자금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이상 부실 우려는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 부동산 투자도 잠재부실 확대
PF 우려에 더해 해외 부동산 투자도 잠재부실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부동산 펀드(공·사모 합산) 잔액은 74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투자액이 가장 많은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는 14조원 규모다. 해외 부동산에도 직접대출, 우발채무, 지분투자 등이 포함돼 있다.
IB업계에 따르면 상반기 말 국내 증권사가 보유한 해외 부동산금융 익스포저 중 미국과 유럽 비중이 11조700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중 물류시설, 호텔, 인프라, 주거용 등을 제외한 미국과 유럽 오피스 부문 투자액은 6조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비율이 늘면서 미국과 유럽의 오피스 공실률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글로벌 IT나 유통 기업과 15년 이상 장기임대차(마스터리스) 계약을 맺고 있는 오피스조차 계약 해지가 잇따르면서 공실률이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특히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모여 있는 미국 서부와 프랑스 라데팡스 지역, 영국 런던 등 국내 기관 투자자들이 집중적으로 투자한 영미권 주요 지역 오피스들이 대부분 손실 우려에 처한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미국 오피스의 평균 공실률은 20.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의 오피스 공실률도 상승 추세를 보인다. 투자 때 빌린 담보부대출의 금리 상승도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출 차환 비용이 커지면서 상업용 부동산의 수익성이 악화한 탓이다.
증권사 대체투자 부문 관계자는 "증권사를 포함한 국내 기관 투자자들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이 대부분 펀드 형태로 돼 있다"면서 "특히 증권사의 경우 선순위 대출보다는 지분 출자나 후순위 투자가 많아, 오피스 가격 하락 때 손실액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의 재택근무가 증가하면서 기존 해외 부동산 투자처의 오피스 가격이 계속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해외 부동산 투자 부문이 국내 PF 사업과 함께 금융권의 부실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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