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출근하는 책들<5>-끝과 시작, 다시 일

조인경 2023. 10. 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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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출근길은 늘 변함없는 루틴인데도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껄끄럽고, 요원하다.

<출근하는 책들>의 저자는 그 외롭고도 지난한 출근길에 좋아하는 책 한 권을 탐독하며 또 하루를 살아낼 힘과 위로를 얻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을 헐어'서 직업노동을 극기의 자세로 해내야 신의 교리에 충성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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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출근길은 늘 변함없는 루틴인데도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껄끄럽고, 요원하다. <출근하는 책들>의 저자는 그 외롭고도 지난한 출근길에 좋아하는 책 한 권을 탐독하며 또 하루를 살아낼 힘과 위로를 얻었다. 이 책의 5부는 일의 시작과 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일보다 더 중요한 삶의 가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집요하게 묻고,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사회적 산물로서 일을 바라보게 한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와 <단식광대>는 일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고 묵직하게 사색할 수 있게 해준다. 글자 수 953자.

직업을 뜻하는 독일어 'beruf'나 영어의 'calling'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란 뜻을 내포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을 헐어'서 직업노동을 극기의 자세로 해내야 신의 교리에 충성한 것이 된다. 천당에 가고 구원받기 위해서다. '삶의 종교화'다. 베버는 이같은 칼뱅주의의 청교도적 직업윤리가 자본주의 사회와 맞물리면서 오늘날의 직업 개념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리고 이건 현대 일터를 지배하는 강력한 종교가 된다. 일을 잘해야 아름다워 보이고, 일을 못하면 못생겨 보인다. 하물며 일을 안하는 사람은 그림자가 없는 존재다. 낙인찍히고 배제당하고 경멸을 받기 쉽다. 모든 드라마나 영화 콘텐츠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그린다. 마치 미디어가 사회가 세계가 워커홀릭교, 능력주의교, 프로페셔널 교를 선교하는 것만 같다. 이 종교의 교주는 시스템 그 자체일 수도 있을텐데, 교리(유능해야 덕이 있다) 자체가 매력적인 것인지 만국의 신도들을 다 끌어당겼다.

하지만 의문은 든다. 단지 생계형 '일'일 뿐인 직업에 지나친 금욕·욕망·구원·성공 신화를 투영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16세기에 생겨난 종교를 아직도 철석같이, 신실하게 믿으며, 과도하게 착취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인간은 태어난 시대의 조류와 세태에 영향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지만, 가끔은 그 시대 전체를 조망하며 자신의 신념 체계 또한 원거리에서 바라봐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가끔 일이 지긋지긋할 때, 태업하고 싶을 때, 농땡이 치고 싶을 때, 그런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하고 싶을 때 내 그림자를 바라본다. 언젠간 그림자가 없어질 나의 모습도 상상한다. 그리곤 생각한다.

이 세태가 갈망하는 종교만을 믿으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착취하게 하는, 옥죄는 모든 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회의하고 관조하는 삶을 살아도 된다고. 그 시기는 아마도 '자본주의'라는 종교에서 개종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구채은, <출근하는 책들>, 파지트, 1만68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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