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민주주의 파괴자, 보스정치와 공천 독재
최악… 권력이 보스 일인에게
집중되고 보스의 독재정치를
가능케 만든 원흉은 공천제도
민주적 공천제도 되려면 공천
권력 분산, 공천 방식 제도화,
당원·유권자의 공천 후보 자질
검증 등 세 가지 원칙 있어야
보스의 전횡과 패거리 정치는
민주주의와 함께할 수 없는
정치 행태… 공천제도 개혁이
보스정치 타파 위한 첫걸음
보스정치. 해방 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다. 해방 정국에서 무수히 많은 정당이 등장했으나 하나같이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 정당이었다. 당시 우리가 모방했던 서구의 정당은 대중정당이고 계급정당이었다. 정당의 핵심 기능은 부르주아 혹은 노동자의 이익과 가치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 사회는 미처 계급이 형성되지도 못한 절대빈곤의 상태였다. 대표할 계급이 없는 상황에서 정당은 보스를 대표하게 됐다. 그러면서 정당의 궁극적 목적은 자신들의 보스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대의민주주의는 정당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기능인 대표성, 책임성, 반응성, 투명성의 작동 여부는 정당 정치의 수준에 달려 있다.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대의민주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정당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조직이다. 당내 민주주의는 최악의 수준이다. 정당의 권력은 보스 일인에게 집중돼 있다. 권력은 분산돼야 하고 일상적인 감시와 견제하에 있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는다. 보스의 권력 행사는 자의적이고 즉흥적이다. 민주적 권력은 제도와 절차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
민주주의 발전은 정당 개혁에서부터 시작돼야 하고 정당 개혁의 출발점은 당내 민주주의 확립이다. 가장 시급한 일은 보스 일인에게 집중된 당내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보스 독재정치를 가능하게 만든 원흉은 공천제도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을 보면 나라마다 다른 공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모든 제도는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민주적 공천제도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은 갖추고 있다.
첫 번째 원칙은 공천 권력의 분산이다. 보스 일인이 공천권을 전횡해서는 안 된다. 보스가 독점하는 공천권이 당내 패거리 정치를 만든다. 보스 심기에 거슬리면 공천을 받을 수 없다. 예비 후보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보스에게 맹목적 충성을 하든지 반대 세력을 규합해 보스를 바꾸는 것이다. 패거리 정치에 대화와 타협은 없다. 당내 패거리 싸움이 정당 간 패거리 전쟁으로 번지고 결국에는 국민까지 진흙탕 싸움에 합세하게 된다. 공천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 2004년 총선에서 시도했던 국민경선제를 다시 한번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당시 문제가 됐던 조직 선거와 동원 선거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지만 보스정치의 폐단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부작용이다.
두 번째 원칙은 공천 방식의 제도화 혹은 법제화다. 게임의 규칙이 매번 바뀐다면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없다. 우리 선거법은 공천 방식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후보자를 추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을 뿐이다. 당연히 무엇이 민주적 절차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선거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공천 방식을 채택하기 위해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인다. 독일의 연방선거법은 당원총회나 대의원회 비밀투표를 통해 지역과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 역시 주법(州法)으로 예비선거 방식을 명문화하고 있다. 우리도 후보 공천 방식을 정당에 맡기지 말고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보스의 전횡과 패거리 정치를 줄일 수 있다.
세 번째 원칙은 당원 혹은 유권자가 공천 후보 자질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거의 모든 선거에서 현역의원 절반이 물갈이됐다. 그럼에도 우리 국회 수준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애초에 국회의원으로서 자질을 갖춘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민주적 공천 절차를 따르는 것과 별도로 후보 자질을 검증하는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시민단체 정부연구센터(Center for Governmental Studies)는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후보 공약과 이슈별 입장을 검증한다. 후보자뿐 아니라 유권자도 공약 토론에 참여한다. 미네소타주 역시 후보 검증을 위해 온라인 후보 토론회를 개최한다. 후보들은 지정된 인터넷 사이트에 의료, 경제, 도시 발전 등에 관한 공약을 올리고 상호 토론한다. 유권자들은 각 후보의 발언 내용에 대해 5점 척도로 점수를 매기고 텍스트, 동영상, 오디오 등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올린다. 이 과정에서 유권자는 후보자 능력과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다.
보스정치는 민주주의와 함께할 수 없는 정치 행태다. 공천제도 개혁이 보스정치 타파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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