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이 무너진다면

이상렬 2023. 10. 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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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논설위원

2023년은 대기업이 휘청이면 한국 경제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가늠해 보기 좋은 해다.

지난달 기획재정부는 올해 국세 수입이 예산(400조5000억원) 대비 59조1000억원 부족할 것이라는 세수 재추계 결과를 내놓았다. 애초 잡아놓은 세수에 한참 모자라는 항목이 양도소득세(12조2000억원, -41.2%)와 법인세(25조4000억원, -24.2%)다. 양도세 수입 감소는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이다. 한편으론 부동산 가격 하락의 결과물이기도 하니 전적으로 나쁘다고만 할 것도 아니다.

법인세 감소는 얘기가 다르다. 한국 경제에 울리는 경고음이다. 기업들이 돈을 벌지 못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2년 상장사 영업이익은 81조7000억원으로 2021년(119조7000억원)보다 31.8% 줄었다. 상황은 내년에 훨씬 심각해진다. 시가총액 100대 비금융 기업의 올해 상반기 영업익은 작년보다 63.5% 감소했다. ‘법인세 절벽’이 불가피해 보인다. 법인세 납부액 부동의 1위였던 삼성전자만 해도 반도체 불황으로 상반기 영업익이 1조3100억원에 불과했다. 작년보다 약 95% 급감했다. 이 회사가 상반기 재무제표에 법인세 비용으로 책정한 금액은 2412억원, 작년 같은 기간(7조1071억원)보다 96.6% 줄었다.

「 세수 부족해지고 고용시장 한파
대기업 부진에 한국 경제 휘청
반감 접고 대기업 성장 지원해야

1년 전 윤석열 정부의 1호 경제정책이었던 법인세 감세는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크게 굴절됐다. 애초 정부 계획은 최고세율을 3%포인트 인하(25%→22%)하는 것이었으나, 결국 1%포인트 인하에 그쳤다.
민주당의 논리는 ‘초부자 감세 반대’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원칙에도 어긋나고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비난이 있는 ‘초부자 감세’를 포기하는 게 합당하지 않느냐”고 했다.

2021년 최고세율 대상은 법인세 신고 기업의 0.01%인 103곳. 민주당이 초부자라고 막아선 0.01%의 대기업이 그해 법인세수의 41%를 담당했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 대기업들이 침체에 빠지자 곧바로 세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12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를 접견한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어디 세수뿐일까. 대기업 부진은 고용시장에 한파를 몰고 온다. 제조업과 건설업 취업자는 각각 8개월, 9개월 연속 줄고 있다. 청년층 취업자 수는 10개월째 감소 중이다. 인구 감소 탓만은 아니다. 급여와 복지혜택 좋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도 큰 이유다. 그런데 대기업 신규 채용문은 되레 좁아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500대 기업 조사에서 응답 기업 3곳 중 2곳(64.6%)은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았거나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마저 채용을 꺼리면 고용 시장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 불황은 상당수 중소기업도 위기에 빠뜨린다. 많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하나의 생태계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 5개사의 1차 협력사만 740여 곳이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속에 글로벌 경제전쟁은 한층 격렬해지고 있다. 그 전쟁은 실상 각국 대표 기업의 정면 승부이기도 하다. 파운드리 반도체는 삼성과 대만 TSMC, 전기차는 현대차·기아와 테슬라, 스마트폰은 삼성과 애플, 2차전지는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와 중국 CATL의 대결이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한국 경제의 명운도 위태로워진다. 비정한 경제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 대기업들이 과연 애플, TSMC, 테슬라, CATL만큼의 지원을 받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대기업을 초부자 프레임에 가두고 ‘반(反)대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이들이 상당하다. 그들은 대기업이 고용을 창출하고 투자를 일으키며 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대기업의 수많은 소액주주가 일반 국민이라는 점도 무시한다. 대기업 지원은 특혜라며 반대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수많은 규제는 옹호한다. 정치가 정말로 민생을 위한다면 그런 시대착오적인 일부터 멈춰야 한다.

이상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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