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의 시선] “기각이 면죄부 될 수 없다” 누가 한 말인가

강찬호 2023. 10. 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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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

“기각 결정문이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가장 황당해하고 분노한 지점은(…) 기각이 됐다고 마치 면죄부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던 태도입니다. 형식적, 법률적 책임이 부정됐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각 결정은 잘했다고 칭찬하는 게 아닙니다. 뭘 그리 잘했습니까. 기각되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기각됐지만 죄송합니다. 책임지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생기게 노력하겠습니다. 우리가 부족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습니까’ 이렇게 해야 정상 아닙니까. 적반하장과 후안무치가 정도껏이어야 합니다.”

「 “기각돼도 ‘죄송, 책임지겠다’ 해야”
이상민 탄핵 기각 때 이재명 발언
“판사는 유죄 말한 것” 지적 새겨야

구속 영장이 기각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국민의힘 의원들이 쏟아낸 발언으로 들렸을 테지만 틀렸다. 이 말은 지난 7월 25일 헌법재판소가 민주당이 제기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을 기각한 직후 이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에서 한 공개 발언이다. ‘기각’ 앞에 ‘구속영장’ 대신 ‘탄핵’이 들어가고, 주어가 민주당 아닌 현 정부란 것만 빼면 국민의힘이 이 대표를 맹공하는 내용 그대로를 이 대표 스스로 주장한 셈이다.

탄핵 기각은 사실상 헌재의 ‘무죄 판결’에 해당한다. 그러나 영장 기각은 다르다. 유무죄 아닌 구속의 적절성 여부만 따진 거다. 즉 이 대표의 혐의는 사라진 게 아니라 재판 때까지 미뤄진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탄핵 기각은 면죄부가 아니다”란 이 대표의 발언은 본인의 영장 기각에도 그대로, 아니 더 강도 높게 적용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기각 이후 이 대표와 친명계의 행태를 보면 “기각으로 완전 무죄가 된 것처럼 (행동)한다”는 민주당 신경민 전 의원의 지적이 과하지 않아 보인다. 신 전 의원은 한 발 더 나가 “기각 결정문을 살펴보면 판사는 ‘유죄’란 얘기를 한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도 그 주장에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선 결정문은 이 대표의 세 가지 혐의 중 위증 교사에 대해선 “소명됐다”고 결론 내렸다. 백현동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결정문은 “상당한 의심이 든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상당한’ 의심이 있을 경우 소명이 됐다고 보고, 영장 발부 사유로 판단한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신경민 전 의원이 “위증 교사는 완전히 유죄, 백현동에 대해서도 60~70% 유죄”라고 한 이유가 이것이다. 결정문은 “직접 증거 자체는 부족한 현시점에서 (중략) 피의자의 방어권이 배척될 정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짓긴 했다. 그러나 이를 바꿔쓰면 “직접 증거는 부족할 수 있으나 상당한 의심이 듦으로 영장을 발부한다”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판사 출신 법조인은 결정문 내용이 “소극적인 판사라면 기각이지만, 적극적인 판사라면 영장을 발부하기 충분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영장 기각만으로 안심하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영장이 기각되고도 유죄가 선고돼 실형을 산 이들이 민주당에 차고 넘쳐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됐는데도 성범죄 혐의가 확정돼 꼬박 3년 6개월 징역을 살아야 했다. 역시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직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도 영장이 기각됐지만, 실형을 면치 못했다. 친문 핵심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영장 기각 뒤 댓글 공작 공모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영장이 기각됐지만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민주당은 이 대표 영장 기각이 무죄 판결이라도 되는 양 정부와 검찰을 맹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장 발부는 유죄 판결과 다름없지 않냐는 논리도 성립할 법한데, 민주당 인사에게 영장이 발부되면 그런 논리가 작동하지 않으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 대표의 측근인 정진상 전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은 지난해 11월 대장동 일당과 유착해 뇌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 직후 이 대표는 “(검찰이) 조작의 칼날을 아무리 휘둘러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음을 믿는다. 유검무죄, 무검유죄”란 글을 올렸다. 역시 이 대표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문재인 정부 인사인 서욱 전 국방부 장관·김홍희 전 해경청장이 구속됐을 때도 민주당은 “검찰이 진실을 조작하고 있다. 조작 정권과의 법정 대결이 시작됐다”고 했다. 이중잣대의 전형 아닌가. 다만 당시 김의겸 당 대변인은 “법원의 판단인 만큼 존중하지만, 영장이 최종 판단은 아니다. 마지막 진실은 재판 과정을 통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지금 이 대표와 민주당이 견지해야 할 입장 아닐까.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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