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의 퍼스펙티브] 당내 통합과 사법 리스크 방어…두 마리 토끼 잡아야

이정민 2023. 10. 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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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생한 이재명 체제와 4·10 총선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재명 체제는 내년 4·10 총선의 상수가 됐다. 이 대표의 리더십과 명예에 큰 상처를 입긴 했지만, 이변이 없는 한 친명계 주도로 총선을 치르게 됐다.

추석 연휴를 전후해 쏟아지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쪽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대혼전 양상이다. 0.73%의 초박빙 승부를 벌였던 대선 연장전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 이 대표, 난제 넘어야 총선 승리
반대파 숙청 강행땐 분당 가능성
여당, 이념전쟁·야당심판 탈피
민생과 정책, 비전으로 승부를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에 의존하는 여권의 권력 운영으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2년 넘게 계속되는 강대강의 극한 대결과 양극단 정치에 대한 혐오가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중도 지지층의 이탈이 가속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40%를 넘지 못하는 박스권 지지율에 갇혀 있는 이유다. 이대로라면 총선은 거대 양당의 정권심판론과 야당심판론이 격돌하는 격투장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제3세력 등장 가능성도 상존한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세력으론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고 나라의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국민의 실망이 커지고 있다”며 “이대론 안 된다는 여론이 폭발하면 새로운 정치 세력이 힘을 받게 될 것”이라고 봤다. 추석 전 ‘새로운 선택’ 창당을 공식 선언한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과 ‘한국의 희망’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최근 연대를 논의하며 본격적으로 세 불리기에 나섰다. 내년 총선판을 흔들 변수를 짚어봤다.

통합과 ‘개딸’ 사이의 딜레마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등 당직자들이 이재명 대표를 찾아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표 앞에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우선 내분을 수습해 통합과 협력의 리더십으로 당을 재건해야 한다. 단일대오를 유지, 정권심판론이 먹혀들면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한편으론 줄줄이 이어질 재판과 검찰 수사 등 사법 리스크를 방어해야 한다.

둘 다 녹록지 않다. 온건파 박광온 전 원내대표의 사퇴로 친명계 홍익표 원내대표가 당선되는 등 당은 오히려 친명 색채가 강화됐다. 당장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정청래 최고위원)거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야무야 넘어가는 데 반대한다”(서은숙 최고위원)는 강경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체포동의안 가결파를 색출해야 한다는 압박도 높아지고 있다. 강성파의 요구는 이 대표의 통합 행보를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다.

이와 관련, 서영교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당내 분열을 막고 민주당이 한 팀이 될 수 있도록 통합과 결속 행보를 본격화할 거로 본다”며 “분당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수도권 출신의 민주당 중진 의원은 “겉으론 대동단결하는 통합 이미지로 가면서 물밑으론 강성 당원을 동원해 친문재인·친이낙연계와 (체포동의안) 가결파 등 이 대표에게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을 솎아내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 선출직평가위원회가 현역의원 평가 기준을 확정한 데 이어 원외 친명계를 중심으로 ‘중진 의원 험지 출마’ 요구가 나오는 것이 징후라고 봤다.

3선 이상 중진 의원은 비명계가 다수다. 개혁 명분을 내세워 반대파를 숙청, 친명계로 물갈이하기 위한 포석이란 주장이다. 당 안팎에선 일부의 이탈이냐, 아니면 상당수가 떨어져 나가는 분당 수준으로 갈 것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분열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퍼지고 있다.

민주당의 핵심 기둥인 호남 여론이 예전과 달리 미지근한 관망세라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전북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법원의 영장 기각엔 환호하는 분위기지만 아직 재판이 남아있으니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라고 호남의 추석 민심을 전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에게 압도적 몰표(광주 84.8%)를 줬던 호남은 작년 8월 당 대표 경선에선 35%의 저조한 투표율(전남·북,광주)을 보였다. 이 대표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6·1 지방선거의 광주 투표율은 전국 최저(37.7%)였다. 전폭적으로 밀었던 대선에서 패배한 데 대한 실망감도 있지만 ‘개딸’ 등 강성 팬덤에 대한 반감이 복잡하게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물밑 분당설…연말 가시화할 것”

추석 연휴 중 경기도 연천의 전방부대 장병들을 격려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구속을 면했다곤 하나 이 대표의 리더십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구속 기각 결정을 한 유창훈 판사조차 ▶이 대표의 혐의 일부는 소명됐고 ▶상당한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명시한 건,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헤쳐나가기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영장 기각 이후 민주당이 윤 대통령 사과, 한동훈 법무장관 사퇴(혹은 탄핵), 영수회담 제의 등 정치적 공세에 집중하고 있는 데는 이 대표의 희생양 이미지를 부각함으로써 사법 리스크를 무력화하고 정치적 부활을 꾀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런 만큼 이재명 친정체제 강화와 열성 지지파의 지원 사격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신당설’이 확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남의 한 중진은 “이 대표로선 친정체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고 차기 대선 후보가 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에 반대 세력을 잘라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수가 40여 명에 이른다. 반대파로 낙인찍힌 의원들 입장에선 싸워나 보고 죽자는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물밑에서 벌써 움직임이 시작됐는데 연말께면 수면 위로 가시화할 것”이라고 봤다.

역대 선거에서 보듯 간판스타 없는 신당의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구축했던 3김이나 대중적 돌풍을 일으켰던 안철수 신당 정도가 그나마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사법 리스크와 통합이라는 두 개의 전선을 마주해야 할 이 대표엔 정치적 부담이다. 상처 입은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을지 이 대표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지지층 결집이냐 vs 중도 확장이냐

이재명 대표의 기사회생을 보는 국민의힘의 관측은 엇갈린다. “이 대표가 구속됐다면 오히려 야당이 똘똘 뭉치게 하는 빌미가 됐을 것”이라는 쪽과 “이재명이 정국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총선이 정권심판론으로 갈 가능성이 커져 여당에 더 불리해졌다”는 정반대의 전망이 나온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총선은 정권 심판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여당이 고전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야당 심판론으로 대응한다면 여당 필패”라며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민생과 정책,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 제시로 선거의 과녁을 바꿔야 한다”(서울의 원외 위원장)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장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주시하고 있다. 김태우 전 구청장을 재공천하며 적격성 논란이 일고 있는 데다 판이 커지면서 수도권, 특히 서울 민심을 측정할 바로미터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김태우 후보가 낙선할 경우 총선을 6개월 앞둔 여당은 후폭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책임 공방이 거세질 경우 지도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

당 일각에선 “집권 1년 5개월이 넘도록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에 의존, 이념·역사전쟁에 몰두하면서 국민 눈에 무능한 반공 보수주의 정권으로 비치고 있다”며 “국정운영 기조의 대 전환이 시급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추석 연휴 전인 지난달 22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32%, 부정 평가는 59%였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중도파의 이탈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33%였다.

윤 대통령이 신당을 만들까

여권 일각에선 중도 확장을 위해, 승부사 기질이 있는 윤 대통령이 모종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국민의힘 간판을 내리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대거 영입해 중도층을 공략하는 신당 창당 시나리오다.

역대 대통령들도 신당 카드로 난국을 돌파하곤 했다. 3당 합당으로 집권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15대 총선을 4개월여 앞둔 1995년 12월 민주자유당 간판을 내리고 신한국당을 창당했다. 명망가들을 영입하고 대선 후보 경선제를 도입하는 등 개혁 이미지로 임기 말 치러진 총선인데도 승리로 이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1월 운동권 출신 ‘젊은 피’ 수혈과 전문가 영입으로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해 선전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초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승부수로 총선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의 중진 의원은 “국민의힘이 강성 보수세력 공략에서 중도 확장으로 기조를 바꿔 신당 창당 같은 승부수를 띄운다면 민주당은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며 “현역 의원들이 재선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민주당이 내홍에 휩싸일 것”이라고 했다.

탄핵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지난 총선 때 180석을 차지하고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적폐 청산’을 앞세워 시스템 개혁이 아닌 인적 청산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정권심판론’이나 ‘야당심판론’ 구호 역시 양날의 칼이다.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지 못하는 선동적 구호는 언제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 모른다. 역대 선거의 교훈이다.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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